쉬운 말로 감동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참 괜찮고도 멋진은 능력이다.

이래저래 해서 요래 됐는데 고래 됐다고 기승전결, 도입 전개 절정 결말, 구성도 치밀 순서도 반듯.

이런 스토리는 지천에 깔렸지만 오래 기억되고 사랑받는 작품은 드물다. 

장 자끄 상뻬의 이야기가 구별되어 기억되어지는 이유는 단순한 선으로 그려진 친근한 그림, 내 경우도 그랬어..싶은 진솔한 공감이 있어 세계적인 인기작가의 반열에 오른 비결이 아닌가 싶다.

 

장 자끄 상뻬의 책이 많이 소개 되긴 했지만, 얼굴 빨개지는 아이가 제일 좋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를 읽고 나면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열등감을 '그건 열등감이 아니야, 그냥 남과 조금 다른 너의 한 부분이고 특징일 뿐이지.' 하고 토닥토닥 위로해 주는 손길을 느낀다.

부끄러워 할 일도 아니고 숨길일도 아니다. 틀린게 아니라 다를 뿐이다. 편안한 위로와 미소를 준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에게도 있었고 지금도 있(을 수 있)는...아득한 어릴적 친구를 떠올리게 한다.

추억의 한 부분에서 빠져버리면 그림이 완성되지 않는 하지만, 언제부턴가 연락이 닿지 않는 그 친구는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마르슬랭이 할아버지네 놀러 간 사이 이사를 가 버린 르네네 집을 바라보는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문을 열면 반가운 얼굴이 있던 곳이 낯선 사람의 집이 되어 버린 후, 그 집 앞을 지날 때 마다 얼마나 발걸음이 무겁고 마음이 허했을지를.

(어릴적 친구가 전학을 가고 나서 내 마음이 그랬었다...ㅠ)

 

 

살다보면,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기적같은 일들이 펼쳐지기도 한다.

 

비오는 날,

약속이 총총히 잡혀 초조한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리던 중에 우연히 듣게 된 르네 라토의 재채기 소리!

마르슬랭의 마음이 어땠을지 또 알겠다!

헤어져 있던 긴 시간은 압축파일로 납작해지고 헤어졌던 그때의 몸과 마음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 아이 빼고는 배경 모두가 하얗게 지워져 버리는 신기한 순간!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오로지 그 아이만 보이는 신기한 체험.

나도 그런 적 있으니.  

이 책이 끝까지 마음을 따뜻하게 붙잡는 것은 마르슬랭도 르네도 중년이 되어 각자의 삶이 너무 바쁘게 진행되고 있음에도 그들이 바쁜 현실을 핑계로 친구를 다시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릴적처럼 높이뛰기 시합을 하고 달리기를 하고 둘이 말없이 아무 얘기 하지 않고도 오래오래 앉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럽고 부끄러웠다.

어릴적 추억과 친구가 소중하고 반가운 건 누구나 그러하지만, 한 동안 연락이 끊겼다 다시 만난 친구는 처음에는 환장할 만큼 반갑지만, 어릴적 추억 외엔 삶의 공통분모가 서로 없음을 알고 차츰 멀어지기 마련이다.

어릴적 추억이 덜 소중해서도 아니고 사람이 달라져서도 아닌데...그렇게 되더라.

추억만 파먹으며 어릴적 친구와 만나기엔 삶이 너무 복잡해졌고 생계를 위한 만남도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알아서다.

 

마르슬랭과 르네의 이야기가 오래 감동으로 남는 이유는 이 마지막 장에 있다.

어릴적 친구를 다시 만나 반가웠지만, 그 이후로도 순수한 만남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아무얘기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결코 지루하지 않고, 조바심 나지도 않으며 불편하지 않은 만남이 흔하지 않은 까닭이다.

 

마르슬랭과 르네가 아무 말없이 오래오래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언제까지나 높이 뛰기 시합을 하고 달리기를 하며 할아버지가 되어가기를 바란다.  

 

아이와 함께 보아도 참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