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예전에 한번 읽었는데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그 후 영화로도 봤는데 내용이 책하고 약간 다르다는 기억만 있고, 역시 내용은 기억이 안 나고 영화도 책도 재미있었다는 기억 밖에는 없었다.

이제 다시 읽어보니 앞부분은 그저 그런 연애소설 느낌이 나는데 점점 책속에 빠져들면서 몰입을 하게 되고 탁월한 인물묘사와 심리묘사로 인해 단순한 연애소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아시의 편지를 읽고 자신의 편견을 깨닫는 엘리자베스가 인상적이었고 왜 책 제목이 오만과 편견인지를 알 것 같았다.

시니컬하고 역설적인 유머감각을 가진 베넷씨와 경박스러운 베넷부인, 착하고 예쁘고 상냥한 첫째 딸 제인, 주관이 뚜렷한 현대적인 여성인 둘째딸 엘리자베스(리지, 일라이자), 책벌레인 셋째 딸 메리, 우유부단한 넷째 딸 케서린(키티), 허영심에 들뜨고 망나니 같은 막내 리디아까지 베넷 가족은 일곱 식구이다.

집안의 남자에게만 재산이 상속되게 되어 있는 한정상속 때문에 베넷씨가 돌아가시면 이 가족들이 살고 있는 롱본 저택은 친척인 콜린스 목사에게 돌아가게 되어있다. 콜린스는 자신이 상속받는 것을 포기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베푼답시고 베넷가의 딸 중 하나와 결혼하겠다고 하는데 그 과정도 어이없고, 편협하고, 우둔하고, 우쭐대는 아첨쟁이 케릭터이다.

자기 친구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사람에게 사랑도 존경심도 없이, 그의 적절한 재산과 지위 때문에 시집가서 애정은 없지만 그럭저럭 만족하면 살아가는 엘리자베스의 친구 샬럿을 보고 참 씁쓸했다. 평생 노처녀로 늙어 죽더라도 사랑 없는 결혼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신 한번 굳게 결심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렇게는 못산다.

제인을 좋아하는 빙리와 엘리자베스를 좋아하는 다아시는 친구 사이이다. 빙리는 미남에다 싹싹한 호감형인데 약간 부자이고, 다아시는 거만하고 무뚝뚝하고 완전 부자다. 그러나 이 다아시에게는 반전이라는 게 있다.

“......그러나 그 호감이 전혀 북돋워지지 않는데도 진정한 사랑을 키울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우리 가운데 별로 없을 거야. 열에 아홉은, 여자는 자기가 느끼는 감정 이상을 보여주는 게 나아. 빙리가 네 언니를 좋아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그렇지만 그 사람이 계속 좋아하도록 언니 쪽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그저 좋아하기만 하고 말지도 몰라.”

- pp.34-35

저 대목을 읽고 내가 왜 노처녀인지 알게 되었다. 그동안의 연애사를 돌아보니 참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을 보면 결혼은 운명적인 요소가 가장 크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커플들을 봐도 각자의 사랑과 관심, 표현, 노력 외에 우연적인 요소가 많이 개입되어 있다. 결혼에 있어서 운명과 노력의 비율은 내 생각에 구대일 정도 되는 것 같다.

아무튼 참 재미있게 읽었다.

 

오만과편견, 제인오스틴, 민음사, 세계문학, 전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