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재밌다. 긴 이야기 중에 단 한 문장도 지루하거나, 불필요하거나, 재미없는 문장이 없었다. 정말 밤새워서 단숨에 읽었다. 50부작 드라마를 한 번에 다 본 것 같은 느낌이다.

 

60년대 말의 시대상황을 어쩜 이리도 생생하게 잘 그려 놓았을까?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맛깔스러운 우리말과 함께 한 시대를 기록한 소중한 자료로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예전에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를 읽고 그 현란한 말솜씨에 '이 작가는 천재인가 보다' 하며 감탄했었는데......, 그런 재주는 타고나는 걸까? 은희경 작가는 정말 타고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데, 내 생각에는 그 1%가 결정적인 것 같다. 1%의 재능이 없다면, 99%의 노력을 하기도 전에 한계가 온다. 그 1%가 있어야 한계를 뛰어넘으며 99%의 노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노력한 만큼은 내 실력이 되는 거니까 꿈이 있다면 미리 포기할 필요는 없겠지...... .

 

나는 사랑이란 것은

기질과 필요가 계기를 만나서 생겨났다가

암시 혹은 자기최면에 의해 변형되고,

그리고 결국은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 p.11

 

불행한 날에 행복한 지난날을 떠올리는 것은 이중의 고통이다. - p. 226

 

성숙한 어른이 슬퍼하는 것보다는 철없는 아이의 슬픔은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므로 철없는 사람은 마음껏 철없이 행동하면서도

슬픔에 닥치면 불공평하게도 더 많은 사랑과 배려를 받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으레 슬픔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그같은 배려를 받지 못한다. 성숙한 사람은 언제나 손해이다.

나는 너무 일찍 성숙했고 그러기에 일찍부터 삶을 알게 된 만큼 빨리 밑지기 시작했다.

-p.365

 

12살 이후로 성장할 필요를 못느꼈다는 조숙하고 똑똑한 주인공, 진희의 눈을 통해 보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직접 겪은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든 것처럼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삶의 군상들이 작가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통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전개된다.

 

내가 싫어하는 쥐 이야기나, 성적인 묘사, 그리고 조숙한 소녀의 삶에 대한 냉소적인 견해들이 나오는데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아마도 개연성 있게 글을 쓸 수 있는 작가의 능력 때문일 것이다. 

 

새의선물, 은희경, 문학동네,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