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스치고 지나가버리는 바람살이 아니다. 빗물이 고이듯 생각이 고이면 궁리가 생기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에 각이 허물리며 둥글고 휘어지고 곁가지가 생기게 마련이다. - p.62

 

여자의 정조가 그처럼 완강하게 보호받고 지켜지기를 바라는 만큼 여자의 심성이나 마음도 소중하게 가꾸어지고 갈무리되는가, 그건 저버리고 있는 세상이 아닌가, 마음이나 감정보다 귀하고 중히 여기는 정절이라는 괴물이 가슴을 물어뜯었다. - p.93

 

첫 페이지의 비에 대한 설명이 지루해서 빨리 읽히지가 않는다. 첫 페이지가 빨리 읽히지 않으면 책에 대한 흥미가 반감된다. 즉 읽기가 싫어진다. 아니나 다를까 끝까지 읽어내는데 인내가 필요했다. 처음 삼분의 일 정도는 지루해서 멘탈붕괴될 뻔 했다.

 

전체적으로 장황한 묘사와 설명들, 낯선 단어들의 끝없는 나열들, 얼마되지 않는 사건들도 서로 이어지지가 않아서 지루하고 몰입하기 힘들었다. 반 정도 지나야 그나마 책장이 무겁지 않게 넘어간다.

 

남동생 균과 함께 스승을 두고 시를 쓸 수 있었던 총명한 여인 초희는 스스로 난설헌이라는 자호를 짓는다. 그 당시에 스승을 두고 글을 배울 수 있었으니 타고난 복은 있었던 것인데,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함이 들어오는 날 비가 오고, 누군가 시댁에서 보내온 녹의홍상을 갈가리 찢어 놓더니, 결국 독한 시어머니를 만나 한 많은 시집살이를 시작하게 된다.

 

남편은 대화도 통하지 않고 배려심도 남자다운 모습도 없는데다 과거에는 번번이 낙방만 하는 처지에 기생집이나 들락날락하는 졸장부이다. 서책도 시도 절대 가까이 하지 말라는 독한 시어머니의 서슬퍼런 명에도 불구하고 죽는 날까지 꿋꿋하게 시를 쓰셨던 난설헌님~누가 더 독한걸까?

 

끝부분에는 사건들이 좀 나와서 읽을만 했는데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름 지성인이었던 분이 그렇게 가시면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독한 시집살이 이겨내고 열녀문 받고, 정경부인 되신 다른 여인네들은 어쩌라고...... . 그 다른 여인네들은 머릿속에 든게 없어서 그 세월들을 참고 사신건가? 작가분이 뭘 말하고 싶었던건지 모르겠다. 이 글의 주제는 '허난설헌'이 아니라 '시집살이'가 아닌가 싶다.

 

우리 친할머니의 동서인 큰할머니는 시어머니 등쌀에 아이를 낳고도 젖 한번 물려보기는 커녕 밭일만 하다가 아기를 잘 돌보지를 못해서, 아이 열셋을 모두 세살도 되기 전에 먼저 보내셨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아이 낳고 아이 안고 있으면 시어머니가 일은 안하고 애만 보고 있다고 그렇게 시집살이를 시키던 때라고 한다. 불과 백 년도 채 안 된 이야기이다. 다들 그 세월을 견디고 살았는데, 작가님은 난설헌님을 꼭 그렇게 보냈어야 했을까? 시로 현실을 승화시키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면 안되었던 걸까?

 

간간이 나오는 시들도 별로 와닿지가 않았고, 재미도 감동도 그저 그런데다가 너무 지루해서 혼불 문학상이라는 게 지루한 작품에 주는 상이라는 각인이 머릿속에 새겨졌다.

 

난설헌, 최문희, 혼불, 문학상, 시집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