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았다>로 2011녀 맨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의 시작 <시대의 소음>을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를 꽤나 재미나게 읽은 편이라서 이번 작품도 매우 기대했는 데요, 생각보다 읽기가 너무 힘들었던 책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시대의 소음>은 스탈린 치하에서 활동했던 러시아 음악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삶과 거대한 권력 앞에 선 용기와 비겁함이 가득한 인생의 아이러니함에 대해 그려낸 소설입니다.

실제 있던 인물의 삶을 조명하고 거기에 줄리언 반스가 살을 붙인 작품이라 꽤나 기대했는 데요. 그러나 기대감에 비해서 가독성이 너무 떨어지더군요. 줄리언 반스의 필력이라기보다는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이름 구조, 음악과 음악사, 그리고 소련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 등의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한장 한장 넘기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중간 중간 다시 앞으로 넘어와 사람의 이름을 재확인하면서도 가물가물하더군요. 니나인지 니타인지 뭔가 묘하게 같은 사람 같은데 부르는 게 달라서 머리가 띵, 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이런 요인과 별개로 유명 음악가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가 어떤 삶을 살았는 지 조금도 알지 못했기에  그의 인생 뒤를 쫓아가는 게 버거웠습니다. 묘하게 문장이 파편화(?)된 느낌이고 단어가 어려운 편이라서 골치가 아프기도 했고요.

그러나 한편으론 줄리언 반스가 참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존하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두 가지 상반된, 비겁함과 용기를 보여주는 점이 색달랐습니다.

주인공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어느 시대냐에 따라 추앙을 받다가 또 금지곡이 되었다를 반복하고, 그를 내리누르는 거대한 권력의 뜻에 좌지우지됩니다. 그 권력의 뜻을 혐오하지만 살기 위해, 혹은 음악을 하기 위해 인내하고 권력이 바뀌었을 때 그동안 꼭꼭 숨겨놓은 불만을 토로해보기도 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음악에 정치색을 입히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기도 합니다. 기회주의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시대의 사람으로써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용감한 행동과 비겁한 행동을 동시에 보여준 거라고 생각되더군요. 그리고 결국 그토록 사랑했던 자신의 음악에 스스로 정치색을 입혀야만 했던 그의 모습이 우울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주인공이 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전혀 달라, 그 아이러니함에 독재 정권과 그 시대의 지식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었는 지 잘 느껴졌던 소설이었습니다. ─줄리언 반스가 이를 의도했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이 책은 꽤나 어려운 편이었던 지라 이렇게나마 해석하고 받아들였다는 게 즐겁기도 합니다.

소설 전반에 깔려있는 짙은 우울함과 자조는 이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계속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이 감정들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다지 우울함을 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왜 이리도 주인공의 감정에 동화가 되던지요. 초반에는 사건을 이해하기보다는 따라가기에 급급했지만 이후 나름대로 음악가로써 자리를 잡은 주인공에게 불어닥치는 외부의 힘, 권력에 따라 좌지우지되어가는 모습을 이해하는 데 수월했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책이 읽기 쉬운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 번쯤 읽어보라고는 권해드리고 싶은 책이기도 한데, 읽기 전에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삶과 음악에 대해 조금이나마 지식을 쌓으시고 읽으신다면 저처럼 힘들게 읽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단 생각도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