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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고갱은 고흐보다는 조금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타히티의 여인들이 생각나고, 우리 딸이 너무나 좋아하는 <황색의 그리스도>를 그린 사람이기도 하다. 몇해전엔 고갱이 고흐의 귀를 잘랐을수도 있다는 설을 뉴스에서 듣기도 했지만, 그건 아닐듯 하다. 그런 고갱을 만났다.

마로니에에서 나온 <고갱 : 원시를 향한 순수한 열망>, 가슴 두근거리면서 기다리던 책이다. 강렬한 고갱의 자하상과같은 <레미제라블> 함께, <해변에서>,<설교 후의 환영>, <망고를 든 여인>이 앞장을 채우고 있다. 심장이 뛰기 시작하는 것을 진정시키고, 한줄 한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가슴이 쿵쾅거리는 걸 멈출 수 없을 때가 가끔있다. 뮤지컬을 볼때, 음악회에서 멋진 음악을 들을때, 좋은 책을 만날때, 그리고 그림속에 빠질때이다. 이 책은, 그림과 책이 함께 만났으니, 쿵쾅거림이 멈추질 않는다. 읽어내리고, 그림을 보면서, 어려운 타히티어로된 제목을 되내이기도하고, 고갱=나쁜 사람이라고 소리도 질러보고, 뒤끝 대마왕이라고 혼자서 중얼거리기도 해본다. 올해 열두살이 다연이는 그림을 좋아한다. 책을 보고는 고갱은 왜 이리 이름이 짧냐고 한다. ’외젠 앙리 폴 고갱’, ’고갱’으로만 알았나 보다. 사실 나도 ’폴 고갱’으로만 알고 있었으니 할말은 없다. 책이 오자마자 나 보다는 딸아이가 먼저 그림을 본다. 다연양은 <황색의 그리스도>를 좋아한다. 결국 그림을 찾고 환호를 한다. 인터넷으로 검색만 하면 나오는 그림임에도, 인쇄되어진 그림에 환호를 한다. 인쇄되어진 그림은 직접 본 그림과의 차이가 확연하게 남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 그림이 보고 싶었나 보다. 그리고 따라서 그리고, 행복해한다. 그림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그리고 그 그림을 보는 엄마와 딸은 동질감을 느낀다.

1848년에 태어난 고갱은 1873년에 메테소피 가드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네명이나 낳는다. 하지만, 그의 결혼생활은 그리 행복하지않았다. 그림만을 원하는 남편과, 경제활동을 책임지기 원하는 아내사이의 불화는 고갱을 원시세계로 향하게 만든다. 돈은 없고, 그림은 그리고 싶으니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고갱은 브르타뉴로, 타히티로, 마르케사스 제도로 향한다. 이 남자, 고갱, 그곳에서 혼자 있질 못한다. 43세의 나이의 13세의 부인을 얻고, 60이 넘는 나이에도 13세의 부인을 만나서 아이들을 낳고 그림을 그린다. 이런... 이남자.. 너무하다. 그래도 그 어린 부인들에게서 받은 영감으로, 근사한 그림들이 나온다. 남편이 화가가 아님에 감사해야할듯하다. 미치도록 근사하고 가슴을 뛰게하는 작품들, 남들을 우습게 보듯이 <노아노아>를 시작으로 타히티어를 쓰면서 그림을 그려낸다. 아~ 사진으로만, 인쇄된 그림만으로도 사람이 미칠 수 있나보다. 원화를 보고싶어서 어떻게 할 수가 없고, 가슴은 쿵쾅쿵쾅 방망이 질을 한다. 언제 고갱전이 서울에서 열릴까?

이 남자, 고갱, 요즘말로 완전 뒤끝 대마왕이다. 고갱이나 고흐나 똑같다. 그러니 친구였겠지만 말이다. 고흐가 그린 <고갱의 의자>를 보면서, 이 친구들 대단하다고 느낀다. 떠남을 받아들일 수 없는 고흐나, 다시는 안보겠다는 고갱이나, 그렇다고 귀를 잘라버리는 고흐나. 그래도, 한때는 우리 우정 영원히 하면서 신나게 둘다<지누 부인>을 그리고 좋아했겠지. 거기에, 쉬프네케르의 아내를 형상화한 <여인 형상의 병>, 대단하다. 자신에게 적대감이 있었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앙갚음을 하기 위해, 동물에게나 어울린 뾰족한 귀에 머리에는 모자처럼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을 만들어 버린 고갱. 그녀는 알까? 100년이 지난 지금도 고갱의 뒤끝은 끝이 없다는 것을... 나도 그녀의 괴기스러운 모습을 보아 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괴기스러움과, 고갱다움으로 고갱은 회화뿐 아니라, 목공예에서도 두드러지는 성과를 보여준다. 다만, 그 당시에 사람들이 못 알아보아서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옛날 옛적에>, <어디로 가니?>, <너 왜 화났니?>,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의 그림들은 너무나 순수하다. 원시를 향한 열망이라는 표현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그리고 계속해서 몇번이나 나오는 <마나오 투파파오> 자신의 작품을 자신의 자화성에 한점이상을 보여주는 고갱, 고맙다. 한 그림으로 두개의 그림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예전 마로니에 북스 책중에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시리즈가 있었다. 처음엔 아트북을 그 책으로 착각을 했다. 그런데, 이책 너무나 가볍고, 쉽다. 보여주고자 하는 열망이 고갱의 열망 못지 않다. 그 열망이 너무 강해서 그림들이 책의 갈림으로 잘리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많은 그림들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심지어, 소장색인과 인명색인에 까지 그림을 넣어줘서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자 한다. 행복하다. 좋아하는 그림속에 빠질 수 있어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p.125에 나온 뒤러의 <기사, 죽음과 악마>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고등학교 시절, 어디선가 흉내냈던 판화, 여전히 집에 걸려있다. 누구 작품인지 몰랐는데, 이제야 알았다. 울 딸이 그림하고 엄마 판화가 똑같단다... 고등학교때 그림으로 나갈 것 그랬나 보다. 행복했다. 책을 읽는 동안, 그림속에 빠지고, 그림 해설에 빠졌다. 이 쿵쾅거림의 여운이 오래갈 듯하다. 얼마간 다연이가 고갱그림에 빠질듯하니, 그 그림들이 끝나는 순간에 좀 잠잠해 지려나...

고갱, 뒤끝대마왕고갱을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