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조카가 조용히 다가와 옆에 앉습니다. 무슨 일인지 조금 슬퍼보이는 듯해 조심스레 이유를 물었더니, 음악대학 입학을 꿈꾸는 고등학생 언니가 치던 노래가 슬퍼서라며 "쇼팽이래~", 한 마디 덧붙입니다. 올해로 탄생 200주년을 맞이한 쇼팽. 그는 자신의 음악이 2010년 그가 태어난 곳에서는 너무나 머나먼 아시아, 그 중 한국의 일곱살박이 꼬마의 작은 머리에, 귀에, 가슴에 잊혀지지 않는 여운을 남기며 꼭꼭 눌러 담길거라 짐작이나 했을까요? 



수많은 세월 속 국적, 인종, 문화를 초월해 끝없는 사랑을 받으며 인간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음악을 만든 쇼팽. 그가 이번 생일을 맞이해 새로운, 콕 집어 재즈라는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우리 앞에 섰습니다. < Chopin in Jazz >와의 만남. 그 속의 200살이나 된 쇼팽이 새내기같은 풋풋함을 뽐내며 옆에 앉아 자신의 노래를 들어보라고 손짓합니다.

필수 과정처럼 어머니 손에 이끌려 갔던 피아노 학원과 학교의 정규 교과 과정에 의해 어려서부터 음으로 양으로 접할 기회가 많은 클래식. 반면 한국에서는 아직 대중적이기 보다 매니아층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는 재즈. 사람들에게 낯설든 낯설지 않든 어렵게만 느껴지는 두 장르의 결합은 어떤 모습일까요? 다행스럽게도 두 장르의 음악을 처음 접하는 것은 아니었음에도 은근히 이해하지 못할까봐 CD를 올려 놓는 손에 긴장감이 느껴졌지만 이내 이는 가슴 두근거리는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변했습니다. 그 사이 1번 트랙이 방안의 공기의 흐름을 타고 스피커 밖으로 흘러나옵니다.

Track 1: 야상곡 E플랫 장조 Op.9-2, 영화 "러브 스토리" (Nocturne in E-flat Major, Op. 9-2, Film "Love Story")
곡의 여유가 느껴지는, 미디엄 템포에 무척 가볍고 경쾌한 느낌이 드는 곡입니다. 중반부에 한껏 소리가 작아진 피아노와 함께 연주되는 베이스의 읖조리는 듯한 소리가 유난히 매력적입니다. 가벼운 발걸음이 연상되며 어디론가 이 곡을 들으며 마음껏 걷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Track 2: 즉흥곡 4번 C샤프 단조 Op.66 ’즉흥환상곡’ (Impromptu No. 4 in S-sharp Minor, Op. 66 "Fantasie-impromptu)
원곡을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 속도의 변화와 베이스와 드럼의 비트만 삽입만으로도 초반, 매우 신이 나는 느낌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서정적인 느낌을 듬뿍 담으며 템포가 느려지는데,  베이스와 피아노가 함께 연주되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베이스 연주가 어울리는 원곡의 부분을 매우 잘 찾아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후반, 초반과는 달리 피아노가 재즈의 느낌대로 연주하지만 다시 초입부분의 템포와 느낌을 되찾으면서 피아노만의 노래로 마무리가 됩니다.

Track 3: 연습곡 E장조 Op.10-3 (Etude in E Major, Op. 10-3).
원곡을 느낌을 많이 살리며 시작하다가 재즈의 느낌을 더합니다. 재즈와 클래식의 어울림이 매우 유연하게 느껴지는 곡입니다. 더해진 재즈 템포로, 한결 완화되긴 했지만 애잔한 느낌만은 여전합니다.

Track 4: 발라드 1번 G단조 Op.23 (Ballade No. 1 in G Minor, Op. 23)
다른 곡들과 달리 초반부터 재즈 느낌과 개성이 살아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재즈화되어 쇼팽의 느낌이 많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무척 분위기 있는 곡입니다. 한 여름밤에 들으면 분위기가 멋질 듯 합니다. 가볍게 어깨가 들썩이는 기분 좋은 느낌을 더해줍니다.

Track 5: 마주르카 A단조 Op.17-4 (Mazurka No. 13 in A Minor, Op. 17-4)
전체 트랙 중 베이스가 돋보이는 곡입니다. 다른 곡들에 비해 베이스에 자리를 많이 내어줌으로서 베이스의 특별한 매력이 느껴집니다. 가벼운 터치와 재즈의 느낌을 가미했으나 원곡의 서정성을 잃지 않고 끝까지 살려 이어나갑니다.

Track 6: 왈츠 D플랫 장조 Op4-1 ’강아지 왈츠’ (Waltz No. 6 in D-flat Major, Op. 64-1 "Minute")
본연의 발랄함이 느껴지다가 신나는 스윙으로 변화합니다. 박자감이 마음에 드는 곡으로서 익살스럽고 장난기 어린 느낌에 슬며시 미소가 그려집니다. 피아노의 기교와 함께 드럼의 신나는 연주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Track 7: 연습곡 C단조 Op.10-2 ’혁명’ (Etude in C Minor, Op. 10-12, "Revolutionary")
베이스와 드럼 없이 피아노만의 연주입니다. 원곡과 로사노의 매력의 균형이 돋보이는 곡으로서  줄곧 원곡의 느낌을 한껏 살리다가 중반부 로사노만의 개성을 마음껏 뽐냅니다. 클래식과 재즈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로사노의 피아노 연주가 왜 그가 주목받는 연주자인지 그 명성의 이유를 알게 해줍니다.

Track 8: 전주곡 G장조 Op.28-3 (Prelude in G Major, Op. 28-3)
초반의 느낌은 가볍고 상큼하게, 피아노의 강한 터치와 함께 분위기가 바뀌는 중반부는 경쾌한 재즈 감각으로 해석했습니다. 돋보이는 밝은 느낌의 재즈 편곡이 원곡을 색다르게 합니다.  베이스, 드럼에 이어 초반과 같은 느낌의 후반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무척 매끄럽습니다.

Track 9: 야상곡 C샤프 단조 유작, 영화 "피아니스트" (Nocturne in C-sharp Minor, Op. posth, Film "The Pianist")
언제 들어도 마음을 움켜쥐었다 놓은 듯 슬픈 곡이지만, 원곡의 묵직한 슬픔에 가벼운 터치를 가함으로서 그 무게를 조금 덜어낸 듯해 신선한 느낌이 듭니다. 피아노만의 연주가 원곡의 서정성과 감수성을 보여주며 마무리하는데  이 부분이 깨끗하고 청아하게 느껴집니다.

Track 10: 전주곡 A 장조 Op.28-7 (Prelude in A Major, Op. 28-7)
상큼, 발랄한 재즈의 느낌이 물씬 나는 곡으로서 강조되는 피아노의 강약 터치가 곡의 개성을 더합니다.

Track 11: 전주곡 D플랫 장조 Op.28-15 ’빗방울 전주곡’ (Prelude in D-flat Major, Op. 28-15, "Raindrop")
서정적으로 시작되다가 중반부 저음의 피아노와 함께 드럼의 비트가 결합해 독특한 재즈의 향기를 풍깁니다. 드럼과 피아노가 박자와 비트를 이용해 장난을 치는 듯하다가 베이스가 소리가 살아나면서 재즈 느낌이 고조되나 후반부 다시 원곡의 서정성을 되찾으면서 깔끔하게 마무리 됩니다.

Track 12: 전주곡 C단조 Op.28-20 (Prelude in C Minor, Op. 28-20)
원곡의 웅장함을 따르며 시작하지만  드럼 소리와 함께 원곡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보여주는 재해석의 감각을 감탄하게 되는 곡입니다. 피아노의 화려한 기교와 재즈의 박자감이 매우 돋보입니다. 발랄한 베이스와 한바탕 신나게 즐기는 듯한 드럼 소리도 놓치면 안되는 감상 포인트입니다.

Track 13: 발라드 2번 F장조 Op.38 (Ballade No. 2 in F, Op. 38)
박자의 밀고 당김이 눈에 띄는, 봄비 같은 클래식의 깨끗함과 재즈의 끈적한 느낌이 무척 잘 조화된 곡입니다. 베이스와 드럼의 역할이 새삼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특히나 재즈식의 마무리가 인상적입니다.

Track 14: 전주곡 E단조 Op.28-4 (Prelude in E Minor, Op. 28-4)
마음에 슬픔이 차오르게 하는 원곡의 느낌에 우수 어린 재즈의 감성을 더해 애잔한 느낌을 색다르게 배가 시킨 곡으로서 가장 마음에 드는 트랙입니다. 특히 연신 피아노 연주와 함께하는 저음의 베이스가 묵직한 여운을 더해줍니다. 군더더기 없이 억지스럽지 않으면서도 너무나 아름답게 재탄생된 곡이라 생각됩니다.

이 CD 1과 함께 특별히 한정으로 더해진 두 번째 CD, 2010 KANG & MUSIC Sampler Vol.1 : The Touch of Magic Sound (For Audiophile)에는 CD1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지는 엄선된 총 15개의 음악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4번 트랙, 멋진 음색의 재즈 보컬리스트 니콜 헨리의 "At Last" 와 13번 트랙, 트럼펫터 도미니크 파리나치의 "Ne Me Quitte Pas"는 자꾸만 반복해서 듣게 됩니다. 이 앨범을 소장함으로서 얻게 된 CD 2의 주옥같은 곡들을 듣게 된 행운에 감사하게 됩니다.

재즈와 결합했다고는 하나 원곡의 느낌을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 재즈적인 터치를 가미한 점이 특히나 마음에 드는 < Chopin in Jazz>!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가느라 메마르고 딱딱해져버린 감수성이 음악을 감상하는 동안 신선한 공기와 따뜻한 온기를 더해  말랑말랑해지는 최고의 음반입니다. 로사노 스포르티엘로라는 이름을 확실하게 기억하게 될 이 음반을 통해 클래식과 재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두 장르를 한꺼번에 맛볼 기회를, 클래식 특히 쇼팽 매니아는 별미의 매력과 로사노 스포르티엘로 트리오와 처음 만날 기회를, 재즈 매니아는 자신의 감성의 눈높이에 맞춰진 쇼팽과 친해질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200살 생일에 < Chopin in Jazz>라는 특별한 선물을 받은 쇼팽. 그의 만족스러운 미소가 느껴지는 이 특별하고도 특별한 기회를 꼭 잡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