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게 흘러가는 일상 속 이야기.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

큰 사건 하나 터지지 않고, 조용히 전개되는 스토리는 마음의 평온함을 안겨준다.

극적인 사건들의 전개는 독자까지 불안함 마음을 유발시키곤 하는 데, 읽는데 참 편하다.

 

주인공 오리이군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교회근처로 이사를 오게 된다.

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샌드위치집을 매일 들락거리다, 그곳에서 일하기를 권유 받는다.

우연한 기회지만 어쩌면 이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트르와 샌드위치 가게의 주인 안도씨와 주인공이 무언가로 연결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만날 수 밖에 없는 그런...

 

"저는 오로지 옛날 것만 좋아해요. 그리고 같은 영화를 여러번 보는 걸 좋아하죠."

주인공의 취향은 이렇다. 시대에 뒤떨어질지 모르지만 느긋하게 흘러가는 것. 그것이 참 맘에 들었다.

 

"생각해보면 회사에 다닐 때는 이런 일이 없었다. 아니, 미소가 있긴 있었지만, 그것이 누구의 어떤 미소였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트르와에서 일하기 시작하고 손님과 직접 얼굴을 마주하면서, 일이라는 것은 누군가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 '누군가'를 가능한 한 웃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일의 정체가 아닐까, 어떤 직종이든 그것이 일이라고 불리면, 그것은 언제나 사람의 미소를 목표로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샌드위치와 수프를 만들어 건네는 것은 여러 사람의 미소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게 되는 귀중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새 일자리에서 깨닫게 된 일의 새로운 목표 '미소'. 우리가 생산해내는 것은 단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닌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은 그 무엇인가가 함께 만들어 지기 때문에 더 갚진 게 아닐까. 보람같은 거 말이다.

 

샌드위치 가게와 수프란 어쩜 궁합이 맞을지도 아닐지도 모르지만, 주인공은 샌드위치와 어울릴만한 수프 개발에 몰두하게 된다.

이 수프 하나에서 생기는 에피소드는 소박하지만 작은 깨달음도 준다.

"우리는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작운 행운을 날마다 조금씩 맛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설에선 그것이 수프를 대변하지만 우리가 맛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무언가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레시피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조합하여 맛있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그게 다다. 다른 비결은 없다.

 

끊임없이 변해가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종종 길을 잃는다.

우회로라 할지라도 목적지만 있다만 그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을까.

" 모두, 말씀드렸듯이, 한동안 잊고 있던 것을 말해요. 분명 수프의 맛이 음악처럼 마음을 울리나 봅니다."

여기서의 수프는 기억이기도 추억이기도한 우리 마음 속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무엇이었다.

수프 하나만으로 이런 소설이 가능하다니.. 모두들 각자의 레시피로 따뜻하고 맛있는 수프를 만들어 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