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상의 절반을 굶주리는가?"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성장의 한계"를 읽고 이어서 "탐욕의 시대"를 읽고 나니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에게 있어서 '수치심' 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화두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수많은 철학자들, 사상가들, 작가들,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다루어 온 주제,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와 같은 질문들은 평범한 일상을 사는 나에게도 여전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일상에서 부딪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하려 하는가는 결국 내가 삶을 대해 고민하고 답을 찾으려 하는 노력과 그 성찰의 깊이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들에서 시작해 우리 인류는 지구상 곳곳에 펼쳐진 위대한 문화 유산과 유물들을 축적해 왔으며 거듭 눈부신 성장을 해 오고 있다. 놀라운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지난 100년간 인간이 이루어 온 발전을 생각해 보면 앞으로 50년, 100년 후에는 또 우리의 후손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살게 될 지가 여간 궁금해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책들을 읽고 나니 전세계를 아우르게 된 현대 문명의 발전에도 불구하고자연과 다른 인간에 대한 수치심을 점점 잃어 가는 인류에게 과연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수치심에 대해 강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자신이 직접 상처를 받거나 배가 고프거나 궁핍함으로 인한 모욕감으로 고통받을 때 수치심을 느낀다고 말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수치심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가해진 고통을 바라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혹은 변화를 가져 오지 못할 때 갖게 되는 마음의 고통을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낄 줄 아는 존재로서 인간이 가져야 하는 마음, 즉 타인이 수치심을 갖는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해 함께 아파하고 분노하고 그를 돕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겠다는 결단과 의지를 갖게 하는 원동력이 바로 수치심이지 않을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견디기 힘든 열등감과 무력감으로 똘똘 뭉쳐 수치심을 안고 살아가는 제 3세계의 주민들의 고통을 바르게 인식하고, 그들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하는 기아나 부채가 사실은 불가피하거나 불가항력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하려는 데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듯 했다.  고통받고 있는 그들이 수치스러워 하듯 그들의 고통과 부조리한 약육강식의 질서에 분노를 느끼는 저자 역시 자신의 수치심에 맞서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 진실을 알려 주려는 것이리다.

 

냉전 체제에서의 적이 사라진 오늘 저자가 맞서고 있는 거대한 적은 수치심을 모르는, 전세계 국경을 넘나들며 자본이라는 절대 권력을 지구 전체 대상으로 휘두르고 있는 신흥 봉건 지배 세력이다. 그들은 거대 다국적 자본주의 민간 기업들로, 저자는 그들을 코스모크라트(세계화 지상주의자)라고 부른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코스모크라트들은 제국주의자들과 결탁하여 '전 세계적인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 하에 입으로는 세계 정의와 평화를 확립하기 위해 싸운다고 하면서 사실은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익을 확대시켜 나가고 있다.

사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모든 테러와 전쟁 뒤에는 거대 자본주의 다국적 기업의 금전적인 이익이 도사리고 있음은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들 모두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이 쌓여만 가는 부채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제 3세계 국가들에게 영원히 벗어 날 수 없는 끔찍한 기아와 질병, 가난의 굴레를 계속 강요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런 구조적인 상황에서 제 3세계 국가들의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것조차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인권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법은 힘 있고 돈 있는 국가들에게는 아무런 권위도 없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깊은 바닷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상황을 읽다 보면 정말 분노가 치밀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결코 헤어나올 수 없고 끊어 낼 수 없는 것 같은 제 3세계의 국가들의 부채와 가난과 기아, 질병의 고리들이 자연적인 것이 아닌 매우 인위적이고 부당하게 강요된 조건들이라는 점이었다.

무능하고 게으른 사람들과 척박한 자연환경 때문에 구제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편견은 사실은 코스모크라트들이 만들어 낸 거짓이라는 것이 책의 곳곳에서 증명되고 있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밝히려고 있는 모든 실례와 수치들은 그가 말하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가난'의 배후가 과거보다 휠씬 강력하고 휠씬 야만적이고 교활한 봉건 지배 세력, 즉 어느 국가나, 지배 체제에서도 통제 받지 않는 거대 자본주의 다국적 기업임을 분명히 가리키고 있었다.

그가 유엔 특별식량조사관으로서 전세계에서 생생하게 목도한 신흥 봉건 세력들이 어떻게 그들만의 제국을 통치하고 확대해 나가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전율을 금할 수가 없다. 

특히 거대 자본주의 다국적 기업이라는 자신들만의 제국을 건설한 신흥 봉건 제후들이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국가나 주민들을 상대로 어떻게 그들을 위협하고 억압하고 좌절시키면서 그들 제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는 지를 구체적인 실례들을 동해 알게 되었을 때는 정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그들이 유엔을 상대로 하고 있는 이중적이고 교활한 태도, -유엔에게 지극히 호의적이고 관대한 척하는 그들은 사실 인권이 그들의 이익에 반할 때는 절대 약속을 실행할 의사가 없으며 유엔과의 협약 또는 친밀한듯 보이는 태도는 그것이 그들에게는 전세계를 상대로 한 천문학적인 광고 가치를 갖기 때문이었다. - 는 우리도 목도하고 있는 재벌 기업들의 이중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저자가 세세하게 밝히고 있는 매우 복잡하고 참담한 현실은 너무나 방대하고 구체적이어서 꽤 양이 많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하나 놓칠 것이 없었다.

제 3세대 국가들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던 나로서는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해 암살당한 정치가들이나 실패로 끝난 혁명들이 너무나 안타까웠지만 8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존경받는 지도자로 남게 된 전 브라질 대통령 룰라의 이야기가 몹시 반가웠다. 

그리고 '끝맺는 말'의 저자의 강렬한 웅변이 마음에 파고 들었다.

 "여론은 무지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무지는 독재를 부추긴다."라는 마라의 말을 인용하며 정보를 제공하고 봉건제후들의 관행을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지식인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 나는 노동조합 지도자가 아니며, 인민해방전선을 이끄는 리더도 아니다. 그저 제한적인 영향력을 가진 한 명의 지식인일 뿐이다. 나의 책은 내가 돌아다니며 목격한 세계에 대한  나의 진단을 제시한다.  현재 이 세계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은 시민들의 몫이다. 전 지구적인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은 이제 시작될 것이다. 이 투쟁의 승리를 무엇을 의미하는가?  패배는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투쟁의 결말은 어떻게 날 것인가? 현재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아는 사람을 아무도 없다. "
페이지 : 332

 

 

그리고 그는 1797년 5월 27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 간 그라쿠스 바뵈프의 말을 빌어 우리 사회가 지향해 온 목표가 무엇인지, 인류 공동의 행복과 평화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시민들의 연대를 시작해야 한다는 말로 그가 하고 싶은 말을 맺는다.

그의 이러한 의견은 묘하게도 '성장의 한계'를 마치며 저자들이 제안했던 방안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결국 평범한 이들의 연대와 노력만이 이 세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희망이라는 점에 인류의 평안과 미래를 걱정하는 지식인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대목에서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이고 그를 견제하고 약자들의 편에 서서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이성과 힘은 결국 아무런 권력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평범한 이들의 연대에서만이 발휘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다가올 불의와 고통을 두려워하는 개개인들이 함께 힘을 모아 목소리를 내고 나가기 전까지 그 힘은 아무 효력도 발휘될 수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렇게 군중들의 깨어 있는 의식, 연대의 힘이 두려운 세력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 가능성을 제거하려고 여론을 호도하고 압박을 가하고 진실을 음폐하고 있는 것이 우리가 겪는 현실이 아닌가 말이다.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이다. 깨어 있으려 하나, 바로 알려고 하나, 그 모든 흐름을 끊고 차단하는 힘은 기존의 자본 또는 자본과 결탁한 정치 권력에 있고 우리 개개인은 평범한 일상의 안위와 행복을 잃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

새삼 장 지글러가 그 어떤 위협과 회유에도 굴복하지 않은 채 그와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힘을 모으고 그들의 연대 속에서 보호받으며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아무쪼록 많은 이들이 그의 책을 읽고 매력적이고 귀족적이며 세련된 겉모습 속에 숨어 있는 현대의 자본이라는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신흥 봉건 제후들의 실체를 깨닫고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책을 덮고 마음이 참 착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