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원제목은 The sense of an ending!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은 순간, 한 권의 책을 읽고 나서 이처럼 어이없고 황당하고 불쾌한 기분이 들기는 처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무엇을 놓친 걸까? 내가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제껏 어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도 내가 무엇을 읽었는지 감이 전혀 잡히지 않는 이런 종류의 황당함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납득이 가지 않았다. 

절로 거친 단어 몇 개가 입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 책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고 싶지 않아 다시 주욱 읽어 내려 갔다. 내가 혹시 놓쳤을 지도 모르는 단서를 찾아 내려고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제자리였다. 

그래서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 지 알고 싶어 리뷰 몇개를 읽었다. 그 중의 몇 개는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애매하고 허접한 내용의 것들이었고 또 몇 몇은 엇비슷한 내용이었는데 그 어떤 것들에도 공감은 가지 않았다. 

다소 절맣적이고 짜증스러운 마음으로 도대체 부커 상은 뭐길래, 책 광고에 실린 그 화려한 감상들은 도대체 어떻게 나온 것일까 하는 원망을 해 보았지만 이 책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저 포기했다. 불쾌하지만 나로서는 여전히 감도 잡지 못하는, 이해할 수 없는 책 한 권이 앞으로 얼마든지 있을텐데... 이 책을 그 첫번째 책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뭐 그리 자존심 상하는 일이겠냐 하는 마음으로 그냥 덮어 두었다.

혹시 나중에라도 이 불쾌함이 사라진 후에 이 책의 숨은 매력과 뜻을 읽어 낼 수 있게 되기를 다만 희망할 뿐이다. 누가 알겠는가? 언젠가 아하 하면서 무릎을 칠지도.....

하지만 150 페이지의 책을 두 번 읽었다고 말하는 독자가 많았다며 따라서 자신의 책은 300 페이 짜리라고 말하며 웃었다는 작가의 말에 헛웃음이 나온다.

난 그런 의미인 줄도 모르고 어쩌면 이 책 안에서 말하는 진실 혹은 스캔들 자체보다 말하지 않는 숨은 진실에 대해 독자들의 상상력과 사유에 맡겨진 이야기들이 그 만큼 많은 부분을 차지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면 1인칭 서술자인 토니의 입으로 말해진 이야기들 이면에 숨겨진, 토니라는 사람이 왜 에이드리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지를 이해하기 위해 내가 스스로 채워넣어야 하는 부분이 오히려 이 책의 진정한 가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깐 했었다.

그런 가정이 타당한 것이라면, 과연 토니의 지루하고 장황한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베로니카는? 나는 토니 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 베로니카라고 생각한다. 그 이해할 수 없는 베로니카라는 인물과 그녀의 인생, 역할을 납득하려면 토니의 입을 통해 내가 알게 된 이야기 전부를, 나는 전혀 다른 입장에서 낱낱이 파헤쳐 보고 다시 배열하는 작업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 때 누구의 시선에서 바라보느냐도 중요한 관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어쨌든 몇 몇 리뷰을 읽어 보면 대부분, 두 번의 반전이 있었고 - 토니의 악의적인 편지와 에이드리언의 아들이 누구에게서 얻은 아들인지에 관한 진실-, 또 하나는 이 책을 읽고 얻은 일종의 교훈에 대해 비슷한 의견이 모아 지고 있었다.

그것은 '올드보이'식의 <악의적인 의도는 없었으되 자신의 섣부른 말 한마디가 불러올 수도 있는 파국 또는 재앙을 예상 또는 배려하지 못했던 무지와 무사유, 무관심>이 어떤 경우에도 자기 변명거리가 될 수 없다는 식의 의견이었다. 

그 의견에 동의를 한다 해도 여러 가지 의문이 든다.

첫째 그 모든 비극이 단지 토니의 악의적인 편지에서 비롯되었다는 의미인가? 토니의 별 생각없이 그저 못난 질투심과 상처받은 자존심을 보상받기 위해 했던 저주의 말이 마치 운명처럼 원하지 않았던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 엄마 사이의 있을 수 없던 불륜을 만들어 냈고 그 결과 토니의 말 그대로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 사이의 비극적인 파국을 불러 왔고 그래서 이를 감당할 수 없었던 에이드리언이 자살을 한 것이라고 말이다.

게다가 그 결과 베로니카는 자신의 인생을 포기해야 했고 남은 생마저 불행의 씨앗으로 남겨진 성치않는 동생을 돌보며 보내야 하는, 그 모든 결과를 가져 왔다고 말이다.

그래서 자신의 그렇게 끔찍한 비극의 원인 제공자였으면서도 자신의 타고난 무신경 탓에 마지막 부분까지 감도 못 잡고 헤매고 있었다고...  그리고 그 진실을 대면한 순간까지 어처구니 없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개념없이 섣부른 젊은이의 치기어린 열정을 흉내내다 결국 베로니카의 분노와 경멸, 게다가 전처의 든든한 후원까지 잃고 완전히 외톨이가 되어 버렸다고 말이다.

그것이 정녕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었는지 궁금하다.

나는 왠지 그러니 우리 모두 악플러가 되지 말고 함부러 남을 판단하지 말고 말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식의 교훈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 것이 성에 차지 않는다.

그건 너무 뭐랄까? 상투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베로니카 엄마와 에이드리언 사이의 불륜이나 그 사이의 베로니카의 역할에 대한 책임까지 토니가 져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에는 공감할 수가 없다.

오히려 그들 사이의 비밀스런 스캔들이 갖는 충격적인 효과보다 과연 이런 저런 일들에 대한 토니 자신조차 신뢰할 수 없는 기억들의 지루한 나열을 통해 작가에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가 너무나 궁금하다.  여러번 반복했듯이 자기 보호본능적인 기억의 왜곡이 문제라면 오히려 토니가 기억하는 모든 것들을 의심하고 해체함으로써 뭔가 얻게 되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심증을 가질 뿐이다.

어쨌든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방법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다가 제풀에 지치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실제 작가의 의도는 감도 못잡고 헤매며 당황스러워하는 독자들을 예상하고 즐거워 하는 것이 목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아무튼 지금은 다 집어 치우고 잊어 버릴 생각이다.

그리고 다시 기회가 되면- 아니어도 상관없지만 - 이 불쾌한 책과 작가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