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이 책을 구입하고도 한참동안 읽지 못했다. 책을 처음 받고 책을 둘러싼 것들을 걷어 내고나니 진한 노란색 표지의 웃는 얼굴이 너무나 따뜻하게 다가왔다.

들어가는 글을 읽어 보니, 광고인 박웅현을 통해 유명세를 타게 된 상황이 반갑지만 않은 그의 입장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제일 잘 아는 '적'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게 되고 그 사실을 지인들을 통해 건너 건너 들었을 때 느꼈을 황당함과 당혹스러움도 짐작이 갔다.

그 자신이 '허명'이라고 말하는, 어색하고 불편한 명성을 얻게 된 그, 하지만 그가 그런 허명에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기에 이 책을 통해 쏟아내는 그의 이야기들 하나 하나가 내게는 답답한 먼지들을 씻어 내는 차고 서늘한 물줄기처럼 시원하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동안 발표되지 않았던 이철수의 그림들과 그의 선문답과도 같은 글이 함께 실린 그러면서도 그의 솔직한 삶과 철학이 담긴 일종의 수필집이 아닐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살제 내용은 이철수의 평가에 의하면 삶은 겸손하고 문장은 유려한 박원식과의 몇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박원식이 그가 말한 그의 삶과 철학을 글로 옮긴 것이었다.

따라서 그전의 판화집과는 다르게 이 책에 담긴 그의 작품들은 박원식의 글로 소개된 이철수의 삶이 어떻게 판화작품에 녹아들었는지를 보여주는 그 삶의 흔적들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원 작품을 확대해 실은 탓에 책 초반에 소개된 다소 거칠게 보이는 그의 작품들이 거슬렸다. 인기에 영합해서 성의없게 급조된 수필집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아주 잠깐 들었었다.

하지만 몇 장을 읽다 보니 쉽게 읽히는 글이면서도 그 안에 담긴 메세지는 결코 가볍지 않아 그렇게 술술 읽어 내려 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단 책을 덮어 놓고 온전히 이 책에만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많은 분량이 아니라 짬짬이 쪼개어 읽는다 해도 금세 읽을 테지만 아침 저녁으로 눈에 들어오는 이 노란색 책을 아껴 두었었다.

그러다 오늘 마침내 다른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

물살 거친 강같은 현실을 함께 건너자는 그의 제안으로 이 책을 마련했다는 그의 의도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배를 잘 준비하고 물길과 거친 흐름을 잘 읽어야 할 것도 당연하지만, 그보다 우선 만만치 않는 현실의 유혹과 거센 물살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마음을 가다듬고 시작하는 것이 그보다 더 중요하다는 그의 말에 더욱 더 고개를 끄덕였다.

농사를 통해, 아니 자연의 모든 삼라만상으로부터 마음 공부를 하는 그의 삶은 무엇보다 내가 배우고 싶어 하는 삶이다.

자연 속에 살며 농사를 통해 자기 성찰과 본질에 대한 궁구를 계속해 나가며 삶의 자잘한 일상과 자연의 숨결을 그림의 재료로 삼아 "판화로 시를 쓰는' 그의 모습이야말로 누구나가 의미있고 깊이있는 삶으로 추구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저 꿈으로, 이상으로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이철수를 통해 그 삶의 한자락만이라도 배우고 싶은 소망으로 한 문장 한 문장을 소중하게 읽어 내려갔다.

1장 삶

2장 자연

3장 마음

4장 사람

매 장을 읽을 때마다 열심히 밑줄을 치고 메모를 해두며 읽었다. 그 모두가 앞으로 내가 가는 길의 방향이 맞는 지를 일러 줄 나침반이 되어 줄것이다.

그 중 3장 마음 중 '거기 아무것도 없다!' 가 특히 인상깊었다.

내가 가장 혐오하는 광고가 몇 개 있다. 대부분의 광고가 당신이 그 물건을 아직 소유하지 못했다면 최고라거나 성공한 리더라고 볼 수 없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자극하는 광고들이다.

광고에서 세련되고 매혹적인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며 그들만의 성에서 그들만이 누리고 있는 여유를 과시하는 아파트 광고도 혐오스럽지만 단연 1등은 한 스마트 폰 광고이다.

첫 광고부터 모든 시리즈의 TV 광고를 볼 때마다 쓴맛이 올라 온다.

그 광고 시리즈의 첫 편 부터 한편의 영화처럼 매우 사람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서정적이고 세련된 것들이라서 더욱 그러했다.

아무리 아름답게 꾸미고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해도 광고의 의도는 하나이다. 그 물건을 모든 사람들이 갖고 싶어서 밤새 줄서서 기렸다가, 기꺼이 지갑을 열게 하겠다는 것이 누구나 아는 명백한 의도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광고의 느낌은 전혀 배제한, 아주 말간 얼굴로, 순수하지 못한 의도는 전혀 없다는 듯, 선의로 가장한 광고라서 더욱 역겨웠다.

겉으로 너무나 사랑스럽고 행복한 장면들로 포장하고 있기에 인문학, 철학을 가장한 그야말로 환영이라고 부를만한 이미지를 욕망하게 만드는 거부할 수 없는 최고의 유혹이라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전세계의 마니아들에게는 기가 막힌 악담이겠지만 내게는 그저 도구인 그 스마트폰을 마치 '존재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보지 않고도 믿는 일종의 신앙의 수준으로 떠 받들며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하려는 그들의 행태가 내게는 이해불가한 이야기이다.

그 물건만 가진다면 내가 갑자기 더 행복해지고 더 유능해지고 더 그럴듯해 지는 것일까?

물론 사람이 물건 자체 기능 때문에 소비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 물건이 지닌 이미지를 소유하려는 욕망, 나는 너와 다르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소비하는 시대이다. 하지만 누구나가 이미지를 위해 한달 동안의 노동의 댓가를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미디어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저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처럼 되려고 더욱 처절해지고 비굴해져 가는 현실이, 그것을 부추기는 시장 논리가 옳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철수는 그런 시장 논리에 기꺼이 우리 자신을 내어 맡겨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이 가치있는 삶인지를 명철하게 판단하고 의문을 갖고 고민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해 주고 있다.

물론 돌아가는 모습은 모두가 너나없이 공멸의 길로 뛰어든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목소리가 그저 고리타분하게 커다란 강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어리석음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논리라는 이름으로 너무나 많은 환상, 신기루가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어두움 속에서 저기 길이 있다는 수많은 거짓 목소리에 혼란스러워 하며 정작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모른다. 자신이 직접 눈을 가리고 있는 실체에 대해 공부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어쩔 수 없이 찾아 오는 허탈함과 헛헛함을 달려 보려고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어딘론가 달려 나간다. 오래 전에 자연 속에서 위안을 찾고 평화를 찾던 것처럼 말이다.

이철수가 '거기 아무것도 없다'라고 한 거기는 바로 우리가 그토록 도달하고자 하는 애쓰는 욕망의 끝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유혹하는 물건들을, 이미지를 소유함으로써 솟아오르는 욕망을 채우려 하지만 그 욕망을 절제할 수도 채울 수도 없다.

이철수는 관건은 존재의 실상, 그걸 명철하게 통찰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욕망 그 심연엔 아무것도 없다는 현자들이 전해주는 지혜를 우리는 모두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몸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익히는 것은 각자의 마음 공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여행을 대신 가 줄 수 없는 것처럼 거기 길이 있으니 그저 각자의 길을 찾아 걸으라고 하는 현자의 가르침을 말이 아닌 그 자신의 삶으로 우리에게 전해 준다.

그래서 사람마저 부위별로 팔려 나가는 고깃덩이처럼 상품화하는 사회에서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각자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해 준다. 먼저 자신의 마음자리를 바꾸면 시장의 노예로 살기를 거부하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그렇게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이다.

밖을 향한 나의 시선을 내 안으로 향해 무엇이 잠긴 마음 문 안에 들어 있는 지 돌아보고야 사는 일의 본질을 알 수 있다는 이철수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