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클래식 FM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도시에 살면서 크고 작은 소란스러움과 번잡함을 피하기란 쉽지 않은 요즈음, 오로지 혼자만의 공간을 즐길 수 있는 시간조차 시장 장터와 같은 왁자지껄한 수다와 현란한 광고에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라디오 채녈은 으레 KBS클래식 FM에 고정해 두고 있는 편이다.   (EBS 책 읽어 주는 라디오도 좋다.)

그 KBS클래식FM 개국 33주년을 기념해서 발간된 책이 바로 이 책 <행복한 클라시쿠스>이다.

마침 클래식 음악 듣기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여 클래식음악 알고 듣기에 대한 갈망이 생기고 있던 나로서는 이미 친숙한 저자들이 풀어 놓을 클래식 이야기가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날, 클래식이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30년 가까이 클래식 방송을 진행해 왔다는 <당신의 밤과 음악>의 진행자 이미선씨의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어느날 내게 말을 건 클래식 음악, 그 무궁무진한 세계에 한 발을 내 딛었으나 너무나 넓고 깊은 세계에서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를 때 만난 이 책, 가볍게 읽고 말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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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명연주명음반'의 진행자 정만섭씨의 글 중 일부이다. 자신의 마음을 따라 그저 즐긴 사람, 마니아......

그가 만난 마니아 이야기 중 '스굴드'와 '부관'의 이야기가 가슴 한켠을 진하게 울렸다. 

마침 그의 글을 읽을 때 그의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모처럼의 우연에 의미가 더해져서 그야말로 멋진 책과 음악이 주는 최고의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인상적인 5월의 첫날이였다.

 

첫곡으로 소개된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 그동안 제대로 감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느낀 벅찬 감동과 열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사실 바그너를 잘 모른다. 바그너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클래식 음악에 대해 잘 모르지만 좋아하게 된 것은 음악을 듣는 동안만은 삶의 번잡함과 성가심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그너를 포함해서 다소 격정적이고 위험하고 자극적인 음악들은 애써 피했던 시기가 있었다.

여기서 '격정적이고 위험하고 자극적'이라고 말하는 음악은 가슴을 심하게 요동치게 하고 머리 속을 휘저어 놓거나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환희, 격정과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 음악 전부를 말하는 것이었다.  누구의 작품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때로는 휘몰아치는 교향악이 그러했고 때로는 바이올린의 섬세하고 날카로운 선율이 그러했었다.

그래서 특별한 감정의 변화없이 그저 배경음악처럼 무난하고 평화롭게 들리는 잔잔한 음악들에만 귀를 기울였던 적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때에는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 모든 것으로부터 방어벽을 치고 살았던 것 같다. 스스로 느닷없이 솟구치는 감정들을 감당할 여유도, 준비도 안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음악이 주는 그러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거슬리지 않는다. 아직 초급 수준이라 말하기도 민망한, 다만 이제 겨우 클래식 음악이 주는 깊이와 울림 자체를 겸손하게 받아들일 자세가 된 초보 준비기라고 할 수 있겠다.

잘 알지는 못해도 음악이 들려 주는 각각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느낌을 받는 것이 좋기만 하다. 이 느낌이 무엇인지,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아직 설명할 수가 없다.

다만 이 책을 통해 각 저자들이 전해주는 자신들만의 클래식과의 만남, 그리고 클래식 음악에 관한 자신들만의 철학을 읽으며 나와의 아주 사소하고 작은 공통분모들을 하나, 둘 찾아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서 기뻤다.

그를 통해 아! 내 감정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스스로 이해되는 부분이 조금 생겼다고나 할까?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 즐긴다 라는 말에 대해 쌓아 놓았던 편견에서 나자신 조금씩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 준 저자들에게 감사한다.

또 하나, 저자들 각자의 이야기들 속에는 그와 연관된 작곡가나 작품들 그리고 연주가와 음반에 대한 이야기들도 빠질 수가 없었는데 그 덕분에 앞으로 클래식 음악 알아가기가 조금 수월질 것 같다. 그 중 리흐테르의 피아노 음반을 구하려고 했는데 품절이란다. 아쉽다.

 

이 책의 제목처럼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클라시쿠스가 되기를 바라는 저자들의 바램은 공통적이었으나 이야기를 펼치는 방법은 다 달랐다.

그 중에는 저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나로 하여금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게 한 부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어떻든 모든 사람의 처지와 입장이 똑같을 수는 없기에 좀 더 근사하고 멋지게, 여유있게 '클라시쿠스의 행복함'을 만끽하는 사람도, 조금 덜 여유있고 덜 당당하게 '행복한 클라시쿠스'를 '꿈꾸는' 나같은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어떤 입장에 있든지 간에 클래식 음악은 오랜 세월을 거쳐 이어 온 '우리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선물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 선물을 받고 안 받고는 개인의 선택이고, 그 선물을 어떻게 즐기느냐 하는 방식도 개개인의 선택과 의지에 달려 있지만 누구에게나 허용된 최고의 '선물'을 모두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각자가 스스로를 타인이 바라보는 수준 또는 단계에 억지로 꾸겨 넣지 말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나만의 방식대로 오직 나와 음악과의 교감을 위해 마음을 열고 즐기는 것이 선물을 받은 사람의 몫이 아닐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