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유발하는 심리적인 문제의 원인은 각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벌어진 갈등 상황 이면에 있는 마음은 모두 '나는 당신에게 절대로 공감할 수 없다.' 또는 '너는 전혀 내 마음을 알지 못한다'라고 귀결되지 않을까 싶다.

내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벌어진 상황 자체보다는 그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에 있어서의 감정적인 충돌이 더 문제를 확대시킬 때가 많다.

그래서 아마 '공감'이라는 단어가 모두에게 주는 의미가 더 큰 것이 아닐지....

그런데 이 공감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는 이유가 이미 내 마음 안에 온통 '내 것'들로만 가득차 있어서 '상대'에게 마음을 내어 줄 공간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의 원효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었다.

 

예전부터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가 잘 와 닿지 않았었다.

모든 것으로 부터의 궁극적인 초월..

그것이 과연 인간에게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원효는 우리의 마음이 두 양태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나는 '있는 그대로의 마음', 다른 하나는 '요동치는 마음"이라고 한다.

'있는 그대로의 마음은 고요한 물과 같은 마음 상태를 말하는데 이는 수행과 깨달음을 통해 이룰 수 있는 자신의 내적 동요만이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수행의 일차 과정은 모든 인간사 속에서 이리 저리 마음대로 요동치게 만든 내적 갈등의 요인과 상처를 깨끗이 씻어 내고 닦는 과정일 것이다.

그리 하여 사람이 타고난 본연의 마음 상태인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이루게 되면 깨달음의 경지에 올랐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내가 이해한 바에 의하면 그 상태의 마음이 박제화되어 유지된 것이 곧 부처가 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맑고 고요한 상태의 마음'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적인 번민과 갈등을 닦아 내어 이룬 맑고 고요해진 마음을 통해 외부의 영향들에 공명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신주는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불교가 내부로부터 요동치는 마음을 부정하려 했던 진정한 이유는 타자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였다.  ...... 타자의 고통이나 행복에 조금도 공감하지 않는 것, 다시 말해 어느 경우든 고요한 물과 같은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것, 이것은 자비를 꿈꾸던 불교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상태일 것이다"

 

타자의 요동치는 마음을 거칠면 거친 대로, 산들거리면 산들거리는 그대로 맑고 투영하게 내 마음에 담아 공감해 줌으로써 어떤 교훈이나 판단도 내리지 않고 그 요동치는 마음의 고통을 헤아려 주는 것, 그것이 부처가 삼라만상을 사랑하고 포용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있는 그대로 그것이 때로는 불완전하고 거칠며 어리섞더라도 때로는 흉칙하거나 아프더라도 타자를 품어 주고 헤아리며 공감해 주는 것이야말로 타자로 하여금 자신의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자비라는 것이었다.

결국 공감은 내 안의 요동치는 번민과 집착들을 끊임없이 내려 놓으려는 노력과 동시에 타자를 향한 감수성을 갖고록 노력함으로써 이룰 수 있는 매우 깊이 있는 화두인 셈이었다.

나를 비우는 것과 비우는 만큼 나를 둘러싼 타자들로 채우는 것, 어느 것도 쉬운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