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교수의 '통섭의 식탁' 머리말 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 나는 독서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게 휠씬 가치 있는 독서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었는데 술술 읽힐 리가 없을 것이다. 여곡절 끝에 책 한권을 뗐는데 도대체 뭘 읽었는지 기억에 남는 게 하나도 없다. ..... 이렇게 하다 보면 차츰 내 지식의 영역이 넓어지는 가슴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

 

통섭형 인재가 되려는 욕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나 내 자신이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은 편협한 자기 세계와 경험 안에 갇혀 있음을 깨닫자 그로 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세상을 바라 보는 경직되고 폐쇄적인 나의 자의식에서 벗어나 사고 범주를 넓히고 싶었다.

그 방법이 내게는 낯설고 새로운 영역의 책을 읽음으로써 잠들어 있는 두뇌를 자극하고 일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서 최재천 교수가 지적했듯이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통섭의 식탁에 올려져 있던 음식들 중 먼저 골랐던 <희망의 자연>, <동물들의 겨울나기>, <살아 남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와 같은 책들은 아직 몇 숟가락 뜨지 못한 채 그대로 놓여 있다.

그나마 <인간과 동물>을 꼭꼭 씹어 가며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앞서 <통섭의 식탁>에 대한 리뷰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지식을 이해 하기 쉽게 전달하는 저자의 탁월한 능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 1강 부터 제 26강 까지 모두 각각 독립된 강좌이면서 동시에 자연과 생명을 바라보는 저자의 일관된 철학과 믿음이 바탕에 깔린 장편 소설과 같다고 느꼈다.

흥미 뿐만 아니라 앞서 소개한 정보와 지식을 통해 뒷 부분에 소개되는 다른 동물들의 생태를  좀 쉽게 이해하도록 돕고 있어서 읽어 나갈 수록 이해하기가 흴씬 수월해졌다. 

그렇다고 한 번에 쉽게 읽히고 이해되는 내용들이 아니어서 책의 내용을 얼만큼 기억하고 소화했는 지에 대해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새로운 지식 뿐은 아니었다.

특히 유전자 관점에서 바라 본 생명의 정의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고의 전환을 가져다 주었다. 

그동안 시와 철학, 문화와 역사에 작은 관심을 두었던 나로서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지나치게 무게 중심을 두고 바라보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전자의 관점에서 바라 본 인간은 자연 생태계의 모든 다른 생명체와 똑같은 위치에 있는 존재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도킨슨에 의하면 생명체란 생명이 탄생한 이래로 불멸의 존재로 살아 온 유전자가 더 많은 유전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고안해 낸 생존기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나라는 존재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유지 되어 온 수많은 생명체들 중 독특한 종류인 인간종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었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들에 비해 독특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 독특함이 오히려 생명의 역사 중에서도 순간에 지나지 않는 인간이라는 종으로 하여금 그 짦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지구 위의 모든 다른 생명체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가 되게 만든 원인일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더구나 우리 인간의 그 독특함과 그 독특함을 과대포장하는 오만함으로 모든 생명체들 위에 스스로 군림하고 폭주하여 다른 생명체의 존립 마저 위협할 뿐만 아니라 그 결과 스스로의 멸망까지도 불러 올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워 졌다.

 

'우리는 지나칠 정도로 우리 인간의 독특함에 매달리고 있다.'라는 최교수의 말이 마음에 깊이 남는다.

<인간과 동물>의 각 장을 통해서 공감한 사실은 우리 인류가 특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온갖 종류의 다른 생명체와 비교할 때 그렇게까지 대단히 다른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것은 지구가 오직 인류의 탄생만을 위해 준비되고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삶은 다른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에너지와 먼지의 우연한 결합에서 시작되었음을 겸허하게 돌아 봐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연생태계에서 보내 오는 경고 뿐만 아니라 <성장의 한계>나 <탐욕의 시대>와도 같은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보내 오는 경고들을 생각하면 인류를 포함한 지구의 미래가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변화는 더디고 그 변화의 결과가 영향을 미치기까지 시간은 또 얼마나 걸릴 지 알 수 없는 오늘, 과연 지구는 우리 인류가 변하기 까지 얼마나 더 기다려 줄 지 모르겠다.  

인간 스스로가 과연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당위성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 조차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