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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연속으로 이어 만든 <베진 초원>은 1936년 러시아 선동영화이다. 이 영화에는 금발머리에 선하게 잘생긴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아버지의 협동조합이 나라에 반역하는 일이라고 여기고, 그를 고발하고, 심지어는 아버지를 죽게 놔두는 장면이 있다. 영화 안에서는 어떻게 보면 폐륜적인 행동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행동을 사람들이 찬양한다. 아버지를 죽이는 것은 패륜적인 행동이라는 일반적 관념과 소년이 아버지를 죽게 만드는 걸 사람들이 찬양하는 행동은 모순적이다. 이렇게 인간을 다루는 작품은 모순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1984』 역시 그러했다.

1. 나라의 모순

1984년, 전쟁이 항상 일어나는 오세아니아에 살고 있는 윈스턴 스미스는 당원이며, 빅브라더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나라의 청사의 이름은 모순적이게도 ‘전쟁’을 관장하는 ‘평화‘부,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애정‘부 등이 있다. 이 나라에서는 아이러니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데, 역사가 조작되어있음에도 그 누구도 의구심을 가지지 못하거나, 가지게 못하게 하는 상황이 그러했다. 또한 분명 어떤 사람이 신문에 난 오보를 고치는 일은 하는데 그 뒤에 고쳤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가하면, 언어가 더 풍부한 구어를 단어의 뜻이 얼마 되지 않는 신어로 바꾸는 등의 행동이 그러했다.

이런 행동에서 ‘빅브라더’란 존재의 의도가 드러난다. 사람들을 말로써, 사상 깊이 그들의 생각을 조종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규율에 맞추고, 그를 못 지킬시 형벌은 엄청난, 그런 질서들을 관장하는 곳이 ‘애정’부 이며, 전쟁을 관장하는 ‘평화’부, 또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통치자에 맞춰 만드는 것, 사회현상에 사람들이 가담하고, 현실 참여하는 것처럼 만들지만, 사실 오보하나하나는 잘못된 보도를 고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생각이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서 만든 하나의 장치일 뿐이라는 것이다. 신어 역시 그러했다. 그들의 주변에 있는 현상들이 모두 ‘빅브라더’를 창조해낸 사람들이 만들어낸 세뇌 도구일 뿐인 것이다.

2. 줄리아와 오브라이언

이런 모순덩어리의 나라에 살면서, ‘빅브라더’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던 윈스턴은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러고는 다음 일거리를 끌어당겼다. 종이쪽지는 그 맨 위에 놓여 있었다. 그는 그것을 펴보았다. 거기에는 멋없이 커다란 글씨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두 사람은 만나서 사랑을 나누고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노동자들이 사는 동네로 들어가 몰래 사랑을 나누고, 사람이 많은 광장에서 만나 잠깐이나마 손을 잡기도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윈스턴이 그녀를 사랑한 것은 아니다. 그녀를 정말 싫어했다.

그는 경찰봉으로 그녀를 죽도록 패주고 싶었다. 그녀를 발가벗겨서 말뚝에 묶고는 성 세바스찬의 경우처럼 온 몸에 화살을 쏘아 죽이고 싶었다. (중략) 어쩌면 그녀는 사상경찰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대신에 가장 경계해야 할 아마추어 첩보원일 가능성이 높다.

그녀를 당에 충성을 바치는 사상경찰, 아니면 첩보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 달리 그녀는 당의 사상과는 동떨어진 사람이었다. 자유를 주장하고, 남녀의 성욕을 마음껏 가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반면, 보이는 것과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그는 오브라이언이었다.

그때 윈스턴은 오브라이언이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랬다. 그는 분명하게 그 사실을 알아챘다. (중략) ‘나는 당신 편이오. 당신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다 알고 있소. 또 당신이 뭘 경멸하고 증오하며 혐오하는지도 다 알고 말이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당신 편이니까!’라고 오브라이언이 말하는 것 같았다.

윈스턴은 마음 속 깊이 오브라이언을 믿었다. 그래서 그가 사랑하는 줄리아와 함께 오브라이언을 찾아갈 마음도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는 서약을 하고 골드스타인의 금서를 가져와 읽기까지 하였다. 안타깝게도, 윈스턴의 짐작은 완전히 틀렸다.

모든 것을 지시하는 사람은 바로 오브라이언이다. 윈스턴에게 간수를 보내어 죽이지 못하도록 하는 사람도 오브라이언이요, 윈스턴에게 언제 고통을 주고, 언제 휴식을 주며, 언제 밥을 먹이고, 언제 잠을 재우며, 언제 팔에 주사를 놓는지 등을 결정하는 사람도 오브라이언이다. 또 질문을 하고 답변을 제시하는 사람도 오브라이언이다. 그는 고문자이자 보호자이며, 심문자이자 친구이다.

오브라이언이 빅브라더를 창조한 주체가 되는 셈이다. 그가 오세아니아를 지배하고,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 혹은 그 사람인 것이다.

보이는 것과 다르게 사람들은 이렇게 아이러니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더 앞뒤가 맞지 않은 것은 줄리아를 알아가면서 당의 이념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할 것 같던 그녀가 역사의식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당의 이념을 잘 알고 있는 오브라이언이, 골드스타인이 썼다고 알려져 있는 금서를 자신이 직접 썼다는 점이다.

3. 당의 슬로건과 모순

수많은 모순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게 당이 주창하는 슬로건이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이는 굉장히 모순적이다. 파멸과 사람들의 황폐를 이끄는 전쟁이 평화이며, 구속되지 아니하는 자유가 예속이며, 알아야 뭔가를 행할 수 있다는 관념이 있음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소설 속에서 맞는 말이 되고 만다.

3-1 전쟁과 평화

전쟁은 이제 단순한 국내 문제일 뿐이다. 과거에는 모든 나라의 지배자들이 공동의 이해관계를 인식하고 전쟁의 파괴력을 제한하기도 했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늘 전쟁을 했고, 승자는 언제나 패자를 약탈했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지배자들은 서로간의 전쟁은 하지 않는다. 전쟁은 이제 지배 집단이 국민을 상대로 벌이는 싸움이며, 전쟁의 목적도 영토의 정복이나 방어가 아니라 사회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 있다. 결국 ‘전쟁’이란 낱말은 잘못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늘 전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전쟁이 없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결국 전쟁은 없었다. 오브라이언이 금서에서 말했던 것처럼, 국가 안에서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 자신들의 이념을 세뇌시키고, 당 이념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애정부에 불러서 이념을 듣도록 조종하고, 자신들이 최대의 권력을 얻는 전쟁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전쟁 때문에 폭격이 오고가고, 매일 뉴스에 전쟁이 났다는 기사가 오고가는 것 역시도 지배층이 꾸며낸 계략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습게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전쟁에 오래 있다 보니, 전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전쟁 속에서 자신들을 지켜주는 당을 쉽게 믿게 되는 것이다. 그 속에서 평화가 있다고 오세아니아의 시민들은 믿게 되었을 뿐이었다.

3-2 자유는 예속

앞에 나와 있던 것처럼, 빅브라더가 눈치 채지 못한 것이라고 놓여있던 상황은 사실, 오브라이언이 상황을 지켜본 것이었다. 윈스턴 자신의 의지에 의해, 일기를 쓰고, 오보에 대한 건의를 보내고, 노동자들이 사는 동네에서 그녀를 만날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오브라이언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여 그의 집에 갔던 것 역시 모두 오브라이언의 계획안에 짜인 예속된 행위였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 안의 자유행위는 모두 예속된 행위였으며, 그는 쉽게 말해 ‘조종’당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을 뿐이었다.

‘자유는 예속’을 뒤집으면 ‘예속은 자유’라는 말이 되는데, 이 역시 윈스턴의 상황과 맞는 말이다.

오브라이언이 왼손은 들어 손등을 윈스턴에게 돌리고 엄지손가락을 감춘 채 네 손가락을 펴 보이며 부드럽게 물었다.

“네 개입니다.”

“그럼 당이 네 개가 아니라 다섯 개라고 말하면 몇 개가 되지?”

“네 개입니다.”

대답을 하자마자 고통이 엄습했다.

그가 오브라이언에게 잡혀 갔을 때, 2+2를 그가 네 개인지, 다섯 개인지 모르겠다고 하자, 오브라이언은 그의 고통을 풀어주었다. 이는 당이 말하면 그대로 따르면, 즉 예속 되면 자신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2+2=5. 일반적인 사실에 어긋나더라도 당의 이념을 믿으면 그에게 자유를 주겠다는 말이었다. 이는 윈스턴이 세상에 나가서도 잊을 수 없는 일반적 사실이 되고 만다.

어쨌든 그는 이 세상에서 자기 대신 형벌을 받을 수 있는 오직 ‘한 사람’, 자기와 쥐 사이에 밀어 넣을 수 있는 ‘한 몽둥이’가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그는 열에 들떠서 마구 외쳐댔다.

“줄리아한테 하세요! 줄리아한테! 제게 하지 말고 줄리아한테 하세요! 그 여자한테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어요. (생략)”

그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고 징그러워하는 쥐를 들이대자, 그는 결국엔 이전에 오브라이언과 약속을 할 수 없다고 말했던, ‘줄리아와 이 세상을 바꾸는 짓’을 하고야 만다. 이후, 윈스턴에게 자유가 주어졌다. 하지만, 더 이상 줄리아와 함께 할 수 없다는 예속과, 2+2=5라는 관념만 남았을 뿐이다.

3-3 무지는 힘

책 초반,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에게 ‘우리는 어둠이 없는 곳에서 만날 거요’란 말을 했다. 이 말은 사실이 되고 말았다. 결국 윈스턴은 빅브라더에 대해, 오브라이언에 대해, 지금 오세아니아의 정치형태가 어떤지에 대해 모두 알게 된 ‘빛’의 상태에 도달하였다. 윈스턴은 빅브라더에 가려진 어둠을 헤치고, 진실을 알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은 참담했다.

그는 햇빛 속을 걷는 기분으로 하얀 타일이 깔린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때 무장한 간수가 뒤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다렸던 총알이 그의 머리에 박혔다. (중략)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윈스턴이 애초에 빛을 알지 못했더라면, 절대 그가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그는 절대적 복종을 했지만, 결국 죽음을 당했다. 아이러니 속 진실은 그렇다. 그가 왜 빅브라더를 사랑해야만 하는지 이유를 알았기 때문에 죽음을 당한 것이다. 너무 많이 알았기 때문에, 말이다.

4. 우리 세대의 빅브라더는 무엇일까, 그 모순은 무엇일까.

책을 보다보면 보통의 상식에 벗어나는 말이 나오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근데 그 말이 안 될 법한 것들을 말이 되게 만드는 게 1984의 오세아니아였다. 어쩌면 빅브라더는 정말 작가가 만들어낸 완벽의 궁극체일지도 모른다. 모순들마저 진실로 만들만큼 강력했던 빅브라더의 체제에 누가 굴복을 안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 세대의 빅브라더는 무엇일까, 또한 지금 숨어있는 모순적인 것은 무엇이 있을까. 트위터에서 그런 글을 봤었다. 앱의 기능 중에 자신이 영화를 한 번 보면, 자신이 선호할만한 영화를 추천해주고 그 추천한 영화가 비슷하게 자신의 성향에 맞는다고 했다. 그 앱을 좋은 앱이라고 추천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편리해진만큼 무서운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자신이 데이터화 되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채 사람들은 데이터화 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자신이 선호할만한 리스트들이 나의 정보를 다 파악해버린 ‘그들’에 의해 선택되어지고, 우리는 그 선택된 것 중에서 고르는 것을 자유라고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자유는 예속이다. 소위 말하는 빅데이터가 사람들의 욕망을 읽고, 사람을 이해하는 지능적인 도구로 점점 성장한다면 빅브라더의 행태가 도래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또한 이 점에서, 모순의 끝에서, 우리는 알 수 있다. 조지 오웰이 그리려 했던 미래상이, 우매하게 빅브라더를 찬양하는 일반사람들의 모습이, 사실은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