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정열이다.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것은 진실하게 절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 도서관에 가서 이 책을 찾아서 책장을 빠르게 넘겼을 때, 두 가지의 감정을 갖게 되었다. 당황스러움과 기쁨이었다. 표지 바로 뒷장에 '절망~'의 구절이 쓰여 있었고, 빠르게 넘기다가 보니 그 구절이 214쪽에 형광펜으로 줄그어져 있었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기만 하면 과제를 반은 할 수 있다는 당황스러움과 금방 찾았다는 기쁨으로 책 읽는 첫 페이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야기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하구, 우리 기쁜 젊은 날, 그 해 겨울. 처음에 나는 하구는 빠르게 읽을 수 있었는데, 우리 기쁜 젊은 날은 그러지 못했다. 아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대학생활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 대학생활이 마냥 이상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에서 쉽게 읽어나가지 못했고, 약간은 냉소적이고 철학적인 김형의 말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느라 쉽게 읽어나가지 못하기도 했다. 그 해 겨울은 사실 기말고사 전 주에 읽었는데도 급하게 읽어서인지 사실 드문드문 기억이 날 뿐이다. 저 구절이 드러나는 부분인데 읽은 듯 만 듯 하게 읽어서 시험이 끝나고 다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하구 부분. 주인공인 영훈이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하는 내용과 옆집 여자를 만나는 내용이 들어있었는데, 사실 난 이 챕터가 가장 좋았다. 십대 후반에 내가 생각하고 있던, 혹은 내가 고민하고 있던 것들은 그가 하고 있다는 생각에 공감도 많이 되었고, 내가 겪은 나이 내에서 고민하는 생각의 깊이 정도가 대단하다는 것을 감탄하며 읽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아마 작가인 이문열의 경험이 들어가지 않았나 생각했을 것이고, 나 또한 그랬다. 아마 어느 정도는 자전소설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만 무척이나 부럽고 놀라운 것은 그가 생각하는 깊이의 정도였다. 그의 십대, 이십대는 60년대라고 했고, 이 책이 81년도에 출판되었으니 이 글을 썼을 때에는 60년대, 70년대였을 것이다. 즉, 20대, 30대에 썼을 것이라는 거다. 이 시기를 지나며 느낀 감정들을, 생각들을 적은 부분이 과연 내가 이 시기를 지나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이문열, 이 사람은 천재가 아닐까 하며 계속 읽어나갔다.

책을 다 읽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해서 인터넷에 그의 글에 대한 감상을 찾아보았는데, 혹자는 그 글을 지나치게 사색적인 글이라고 평가했다. 아무 행동도 없이 그저 가만히 앉아 생각만 할 뿐인 글이라고 말이다. 우선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나에게 비평의 말은 상당히 놀라웠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갔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느꼈다. 다만, 만약 이 글이 현재진행형이었고, 영훈이 스무 살 때 이 글을 썼다고 짐작한다면, 이 글은 스무 살이라는 나이에 비해서 과히 사색적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시간이 흐른 뒤에 썼다고 나온다. 사람들은 과거를 보며 그 때의 감정이나, 생각을 되짚어본다. 영훈도 그런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10대, 20대 영훈의 삶을 담고 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스무 살의 내 삶도 이런 방식으로 흘러가겠지 생각했다. 이미 겪었던 10대를 관조하고, 앞으로 펼쳐질 20대를 상상하며 내 젊은 날의 초상은 어떨까 책을 읽으며 많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시험이 끝나면 한 번 더 읽어야지.

내가 공감하며 읽었던 구절

그 무렵 이미 내가 준비하는 시험이나 대학 진학은 그 본질이나 그것이 내 삶에 대해 가지는 의미와는 별 상관이 없었고, 그대로 크고 뜨거운 불꽃이었다. 그리하여 그 것은 내 낮과 밤을 사르고 육신을 사르고 영혼을 살랐다.

그 때 우리에게 삶은 다만 몽롱한 가능성이었고, 사람은 혼란과도 비슷한 하나의 추상이었음에. 그리하여 우리가 불같은 열정으로 몰두한 것도 실은 사랑 자체가 아니라 그런 마음을 가진, 가끔 심각하긴 해도 대개는 요란하고 실속 없는 놀이에 지나지 않았음에.

나는 생각한다. 진실로 예술적인 영혼은 아름다움에 대한 철저한 절망 위에 기초한다고. 그가 위대한 것은 그가 아름다움을 창조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도전하고 피 흘린 정신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