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추억, 그리고 존재의 이유

아름다운 삶이란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삶이 고단하기만 하다면 가슴에 품어온 이상을 떠올려 보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자서전   <말하라, 기억이여>가 당신이 존재하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한다. 

<말하라, 기억이여>는 한 편의 단편소설처럼 완결되어 있어 각각의 장과 구성이 여느 자서전과 사뭇 다르다. <롤리타>(1955)를 통해 문제적 작가로 떠오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30년에 걸쳐 고쳐 쓴 미문(美文)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삼촌, 사랑했던 어린 시절의 연인들, 가정교사, 나비 등을 하나의 테마로 엮어낸다. 사실과 환상이 수시로 교차하며 노스탤지어의 함의를 한껏 드러낸 시적 표현들은 한 개인의 삶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아름답고 정교한 것인지 놀라게 한다. 한순간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게 하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나보코프가 네 살 때(나보코프 스스로 기억이 탄생했다고 여기는 순간)인 1903년부터 미국으로 망명하기 전인 1940년까지의 삶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서술은 주로 어린 시절의 눈부신 기억과 맞닿아 있다. 1919년부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러시아에서 독일로, 다시 미국과 스위스로 망명을 거듭한 그에게 그 시절은 영영 잃어버린 시간이기에 더욱 아름답다. 그는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인간의 의식, 즉 한 개인의 회상과 그것을 표현하는 말들에 비하여 이 우주는 얼마나 작고 (캥거루 주머니 하나에 넣을 수 있을 정도다) 하찮고 미약한가! 내가 어린 시절의 인상을 과하게 평가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여전히 내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 시절의 인상들이란 시각과 촉각의 참된 에덴으로 통하는 길이다.”
나보코프는 기억의 단편들을 불러내 정지화면으로 포착하고 그 순간을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출중한 재능을 발휘한다. 가족과 집, 러시아 숲 속의 밝은 햇살과 그 속에서 그가 쫓아다니던 나비들, 먼 곳에 두고 온 옛사랑까지. 영영 사라져 버린 그 모든 것을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에 의지해 다듬어 나열한다. 단지 아름답게만 다가오던 언어의 향연은 점차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유도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1951년 초판의 제목은 <결정적인 증거>였다. 네 살 때의 세세한 기억이 모두 사실인지 의심하는 건 불필요하다. 나보코프는 스스로 책 전체를 악의적으로 비평하는 마지막 장을 썼다가 빼기도 했다. 어차피 지나간 추억은 허구가 아니던가. 모던 라이브러리 위원회의 ‘20세기 100대 논픽션’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롤리타>는 뭐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누구야?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1899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가정에서 시인으로 성장하며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지만 볼셰비키 혁명으로 모든 것을 잃고 1919년 독일로 망명했다. 1940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나보코프는 그곳에서 시인, 소설가, 비평가, 번역가로 문학적 경력을 쌓는다. 1955년에 발표한 <롤리타>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고 1961년 스위스 몽트뢰로 이주, 그곳에서 창작 활동을 하며 생을 마쳤다. 주요 작품으로 <세바스찬 나이트의 진짜 인생> <프닌> <재능> <창백한 불꽃> 등이 있다. 
<롤리타>_1955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간됐으나 이듬해 판매금지 됐다. 1958년 미국에서 재발간, 베스트셀러가 됐다. 성적도착증(性的倒錯症)을 다룬 이야기로 님페트·롤리타 콤플렉스라는 말이 이 소설에서 유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