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추억과 기억은 어떤 의미일까. 비 오는 날 들려오는 음악을 들으며 남편, 아기, 엄마, 아빠를 떠올리게 된다. 산속을 헤매다가 잊고 있었던 소중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기억을 잊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때도 있다.

해럴드 프라이는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 60대의 나이로 무작정 걷기 시작한다. 어떤 의미가 있지도 않았다. 편지 한통으로 편지의 주인공을 만나야 겠다는 생각으로 한걸음한걸음 옮긴다. 그러면서 마주치게 되는 타인들.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기가 쉬웠던 기억들이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이렇든 해럴드를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는 하기 힘든 이야기를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폭우 속에서 잠시 멈춰선 자동차를 떠나보내고 흙탕물을 튀기며 달려가는 트럭 뒤에서 계속 이렇게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자연은 햇살을 해럴드에게 쏟아 붇는다. 이런 자연의 경이로움과 육체의 한계를 느끼며 사람들의 비밀을 하나둘 쌓아가며 그는 무작정 걷기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열광하는 사람들. 그러나 정작 그는 도로위에서 땅위에서 스스로에게 집중하게 된다. 아내를 생각하고 하나하나 모퉁이를 돌때마다 나타나는 기억들을 찾아낸다. 아버지의 기억, 아들의 기억, 아내의 기억, 자신의 기억들을 밟아가면서 깨달으면서 한 사람에게로 영국의 끝과 끝에서 걸으면서 찾아간다.

스스로를 버리는 순간, 스스로를 찾게 되었다.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는 해럴드 부부의 치명적인 아픈 과거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깊은 충격을 주었다.

누구에게나 남모를 아픔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그렇다. 너무나 아파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세월 동안 희망이라는 것이 싹을 틔워 아마도 해럴드를 도로위로 땅위로 불러 세웠나 보다.
파랑새의 이야기처럼 해럴드는 집, 아내가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닫혀있던 아내 모린은 해럴드의 긴 여정에서 과거를 마주할 수 있었고 드디어 아픔을 떠나보낼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 이야기가 해피엔딩이어서 너무나 기쁘다.

책장을 넘기면서 하나씩 하나씩 들어나는 숨겨진 이야기들은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매력 포인트들이 되며 맨 마지막에는 아주 큰 강타를 날린다.

오늘 출근길 아침 폭우를 맞고 다 적은 상태에서 지하철에서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