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10일 34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세력 싸움이 본격화 하면서 혼란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언론 기사를 읽고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치 기사도 아닌 종교와 관련된 기사에서 그것도 공(空), 무심(無心), 무소유(無所有)의 정신을 중생(衆生)들에게 설파하고 부처님의 지혜(智慧)와 자비(慈悲)를 통해 불국토(佛國土)를 이루겠다는 큰 서원을 실천하고 있는 불교(佛敎)에서 나온 기사라고는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작년 전남 백양사 인근 호텔에 투숙했던 승려 8명의 도박사건으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와 불교계에 대한 자정(自靜)의 목소리가 가라앉지 않은 시점에서 또다시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추태를 국민들에게 보여 주는 것 같아 불자(佛子)의 한사람으로서 자괴감(自愧感)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으로 특히 어려운 이 시기에 국민들을 어루만져 주고 위로해야 할 의무가 있는 종교계가 앞장서서 국민들의 어깨를 더 무겁게 하고 허탈감을 가지게 하는 현 상황에서 이제 무엇을 등대삼아 이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종교계도 변모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근본정신(根本精神)은 망각하지 않고 올곧게 지켜 나가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다면 일반 사회단체와 다를 게 무엇이 있고 신도들이 보시(布施)를 할 하등의 이유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마침 조계종출판사에서 출간된 『이 길의 끝에서 자유에 이르기를』이라는 신간이 눈에 띄어 읽어 보았다. ‘성철 스님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순례자의 여정’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성철 스님이 주석(主席)했던 25곳의 도량(道場)을 찾아 둘러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중간 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성철스님과 나의 법연을 말하다’는 원택 스님과 이진두 논설위원이 직접 성철 스님과 법연(法緣)을 맺은 스님들을 찾아뵙고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가야산 호랑이로 세인들에게 알려져 있는 성철 스님께서 현 세태를 보신다면 추상(秋霜)같은 불호령으로 세속화 하고 있는 승단(僧團)에 개혁의 죽비를 휘둘렀으리라 짐작한다. 그의 부재(不在)가 아쉬운 시기이다.

 

   성철 스님의 탄신 100주년과 열반 20주기를 기리는 차원에서 기획되었던 이 책은 성철 스님의 수행행적을 더듬어 찾아가는 여정으로 성철 스님의 생가를 복원한 ‘율은고거’가 있는 경남 산청의 겁외사(劫外寺)에서부터 순례를 시작한다. ‘겁외(劫外)’는 세속적인 시공간을 초월한 깨달음의 경지를 일컫는 말이다. 부(富)의 많고 적음이나 사회적 명성이나 지위의 높낮이에 목숨을 거는 세간(世間)의 사람들과 달리 출세간(出世間)의 삶은 이러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모두 마다하고 삶의 가장 궁극적인 가치인 진리(眞理)를 얻기 위해 용맹정진(勇猛精進)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성철 스님이 불법에 귀의하게 된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영가 대사(永嘉 大師, 674~713)의 『증도가(證道歌)』라고 한다. 『증도가』를 읽고서 스님은 캄캄한 밤중에 밝은 횃불을 만난 것처럼 홀연히 심안(心眼)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이후 스님은 경남 산청의 대원사(大源寺)에서 중국 대혜(大慧) 스님의 『서장(書狀)』을 탐독하며 무(無)자 화두를 들기 시작하였고 무자공안(無字公案)을 들고 불철주야로 정진한 끝에 40여 일만에 ‘동정일여(動靜一如)’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경지인지는 체험을 해보지 않아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한결같이 화두(話頭)가 잘 잡히는 상태라고 흔히 말한다. 일반적으로 공안참구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점검기준으로 동정일여(動靜一如), 숙안일여(熟眼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의 삼관돌파(三關突破)를 제시한다고 하는데 하근기(下根機)인 본인으로서는 이 역시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1936년 3월, 성철 스님은 동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게 되고 1,600년의 한국불교사는 물론 중국불교사에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출가시(出家詩)’를 남겼는데 호방한 대장부의 기개가 깃들어 있다.

 

   하늘에 넘치는 큰 일들은 붉은 화롯불에 한 점의 눈송이요

   바다를 덮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일세

   그 누가 잠깐의 꿈 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 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 (p.35)

 

   경남 합천 가야산의 해인사(海印寺)는 성철 스님의 출가도량이자 열반도량으로서 성철 스님의 수행행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도량이다. 성철 스님에게 해인사는 환귀본처(還歸本處)의 가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중이 되려고 절에 온 게 아니다. 진리를 찾아 헤매다 불교에서 찾았고 불교공부를 더 잘하고 더 넓고 깊게 하려고 절에 왔다. 불교공부를 잘 하려면 절에 가서 중이 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p.40)라고 성철 스님은 자신이 출가한 이유를 회고한 바 있다. 그 후 조계종 종정이 되신 후 신문 인터뷰에서 “지금이라도 불교보다 더 나은 진리가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 진리를 찾아 나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야말로 어디에도 걸림 없는 대자유인(大自由人)의 포부가 아닌가 싶다. 책에는 경북 영천 팔공산 은해사 운부암과 충남 예산 덕숭산 정혜사 능인선원에서 평생 도반이 될 향곡 스님과 청담 스님을 만나게 되는 과정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공부의 반(半)은 도반이 해준다고 말할 정도로 선가(禪家)에서는 도반을 매우 중요시 하는데 성철 스님의 수행 과정에서 이들의 영향이 컸음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1981년 성철 스님은 조계종 종정에 오른 뒤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최초로 한글 법어를 발표하셨다. 이후 해마다 신년 법어도 한글로 씀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중화하는데 기여를 하였다. 성철 스님의 수행과정에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사실이 ‘부처님 법대로 살자’라는 기치를 들고 한국불교와 조계종의 앞날을 위해 경북 문경 희양산 봉암사에서 결행한 소위 ‘봉암사 결사’일 것이다. 선종(禪宗)의 종풍을 진작하고 옛 총림(叢林)의 법도를 되살리자는 목적으로 성철 스님이 이끈 봉암사 결사는 한국불교 개혁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개혁의 횃불이 다시 한 번 피어올라야 할 시기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싶지만 애석하게도 우리 곁에는 성철 스님이 계시지 않는다는데 이르면 마음에 돌연 찬바람이 인다. 정법수호(正法守護)에는 엄격하셨지만 대중과는 격의 없이 소통하셨던 성철 스님의 구도의 길이 곧 부처님이 되는 길이자 한국 불교가 나아갈 바를 제시한 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성철 스님께서 머문 25곳의 도량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큰 수행이 될 것 같고 책 속 중간 중간에 수록된 성철 스님과의 법연에 대한 이야기는 그 자체가 법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성철 스님의 카랑카랑한 법음이 생생이 들리는 듯하다. 가야산 해인사 일주문 주련(柱聯)에 새겨진 편액을 보며 저자가 천제스님이 하신 말씀을 떠올렸는데 그 말씀을 남기며 글을 맺을까 한다.

 

   천겁의 세월이 지나도 옛날이 아니고         歷千劫而不古

   만세를 뻗쳐도 항상 지금이다                  亘萬歲而長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