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올 연말부터 700달러 정도에 사람의 잔여수명을 알 수 있는 DNA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될 지도 모르겠다.  스페인 국립암 연구센터의 마리아 블라스코 박사가 개발한 텔로미어(telomeres) 검사법에 의하면 ‘텔로미어’라고 불리는 염색체 끝 부분에 있는 핵단백질은 하나의 염색체에 4개가 존재하는데 세포가 한 번 분열할 때마다 그 길이가 조금씩 짧아지며 일정 길이 이하가 되면 세포분열이 멈춰 세포가 죽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텔로미어의 길이를 측정하면 그 사람의 생물학적 나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장수한다는 결과가 나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어쩌란 말인가?  과학의 발달이 마냥 반가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에 관한 신간 광고를 보게 되었는데 내용을 훑어 내려가다 ‘칼 세이건’이라는 이름에 시선이 꽂혔고 『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는 어느새 집으로 배달되어 왔다.  우주에 관련된 책은 이해 여부와는 상관없이 사야 직성이 풀리는 지라 책장에 있는 책만을 보면 유명 천문학자의 서재인 것으로 충분히 오해할 수 있을 정도이다.  저자는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전문 기자와 출판평론가로 활동하시던 최성일님이신데 그야말로 과학 분야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에 더욱 호기심을 가질 수 있었다. 

   저자 역시 우주에 관심이 많았었나보다.  총 39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처음 두 개의 장을 우주에 대한 서평으로 시작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뒤이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관련된 서평에서도 우주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되고 중반부에 가서는 팔로마 산 천문대, 허블 우주 망원경 그리고 우주의 기원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이어진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은 1970년대 후반 과학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시리즈를 통해 미국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되고 우리나라에는 1980년대 초반에 알려지게 된다.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과학 교양서로 불리는 『코스모스 COSMOS』는 우주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면 한번쯤 읽어 보았을 터이다.  어린 세이건의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준 사건이 1939년 뉴욕 세계박람회 참관이었다고 하는데 저자의 인문적 사고는 1975년 서울 여의도 5ㆍ16광장에서 열린 광복 30주년 기념 종합 전시회장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본인이 우주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된 것은 1976년 어린이 과학관의 플레네타리움을 통해서 본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자리였다. 칼 세이건은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칼 세이건의 원작을 영화화한 《콘택트》를 통해 널리 알려진 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가 대표적인 프로젝트이다.  칼 세이건은 물리학자 프랭크 드레이크가 고안한 방정식에 의거해서 지구가 속한 은하수 은하에 존재할 수 있는 지적 생명체의 숫자를 계산해 본다.  우리 은하수에는 약 4,000억 개의 별이 있다.  행성계를 동반한 별들의 비율을 3분의 1로 잡으면 우리 은하에는 대략 1,300억 개의 행성계가 있게 된다.  이들 행성계가 태양계처럼 10개 안팎의 행성을 거느린다면 은하수 행성의 총 숫자는 자그마치 1조 3,000억 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에서 생명이 존재하기에 적당한 행성은 3,000억 개로 추산되고, 여기에 다른 변수들을 곱해 얻어진 우리 은하수 은하에 존재하는 문명사회의 수효는 적어도 수 백 만 개나 된다고 한다. 영화에선 “만일 우리뿐이라면 우주는 엄청난 공간의 낭비 아닐까?”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곱씹어 볼 만할 것 같다.

   저자는 1970년대 초반 어린이 잡지에 실린 책 광고를 보고서 아버지께 졸라서 『소년소녀발명발견과학전집(전12권)』을 가지게 되는데 이 책들이 ‘저자의 첫 과학책’이 된다.  오래 전에 저자의 조카에게 물려준 그 책들의 행방은 알 수가 없게 되었고 글을 쓰기 위해 그 전집을 수소문하던 저자는 어느 대학교 도서관에 보관된 전집을 찾아내어 1권 우주편과 12편 우주여행편 전권을 복사하기까지 한다. 우주 관련 책이 두 권인 것은 1969년 7월 21일 아폴로 11호 달 착륙에 맞춰 출판기획된 것으로 저자는 추측한다.  ‘나의 첫 과학책’으로 시작한 저자의 서평소개는 최고의 번역서로 선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책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다윈 이후』로 이어진다.  텍스트로도 과학책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한 이 책에서 저자는 다윈이 아주 부유한 의사의 아들이 아니라 어느 장사꾼의 자손이었다면 오늘날의 생물학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생각해본다.  다윈의 개인적인 경제력과 사회적 신분이 그가 조사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원천이었던 것이다.  인문주의자답게『속담으로 배우는 과학교과서』와 『고사성어 속 과학』을 통해 속담과 고사성어 속에 숨어 있는 과학을 끄집어내어 재미있게 풀어준다.  ‘달도 차면 기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을 언급하며 시방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자들에게 쓸데없이 날치지 말 것을 경고하는 대목에선 피식 웃음이 나온다.  과학의 원리를 들어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칠 수 있음을 설명하고, 번개가 만들어 내는 질산의 양이 한 해 10억 톤이나 된다면서 ‘번개가 많이 치는 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속담이 과학적 근거가 있음을 입증한다.  ‘동성상응(同聲相應)’은 ‘공진현상’과 ‘각주구검(刻舟求劍)’은 ‘상대성 이론’에 연결 짓기도 한다. ‘상전벽해(桑田碧海)’ 역시 허구나 억측이 아님을 근거를 제시한다.

   이 책에는 원자폭탄에 대한 빗나간 역사에서부터 유전자 조작, 통계의 허구, 원소 주기율표, 수학, 진화론, 면역, 유전자까지 풍부한 자료와 과학원리가 소개되고 있어 과학 입문서로 손색이 없을 정도이고 저자의 개인적인 견해가 구석구석에 양념처럼 박혀있어 책 읽는 재미가 맛깔나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 곳곳에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빈센트 키어넌의 『엠바고에 걸린 과학』편에서는 아예 작정하고 번역문의 부정확에서부터 오탈자까지 지적하고 나서는데 그렇게 치면 『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에서 정작 눈에 띄는 오탈자는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지 독자로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고등학교 화학시간에 배웠던 ‘원소 주기율표’에 나오는 원소들은 대체로 라틴어, 그리스어의 어원에서 유래를 하여 무작정 외웠던 기억이 나는데 이 책에서 저자의 상세한 설명으로 이해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저자가 소개한 책들을 먼저 읽어 본 후 이 책을 읽는다면 흐름을 따라가기가 무난할 것으로 생각된다.  과학 전공자가 아닌 저자의 탁월한 과학적 소양에 경탄을 마지않으며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투병중인 저자가 하루속히 병상에서 회복하여 더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기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