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우리나라에 있는 사찰 중에서 차례로 한 곳씩 가보기로 아내와 약속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번잡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도시를 떠나 고즈넉한 산사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겠다 싶은 마음에서 시작하였는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끊임없이 울려대는 스마트폰의 알림 소리와 스팸성 문자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숲 속의 새소리와 개울의 물 흘러가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여기가 무릉도원이구나 싶기도 하고, 이런 환경에서 살고 싶은 욕망마저 스멀스멀 올라옴을 느낀다. 다음 달에 가 볼 사찰 선정하는 것도 일상에서의 쏠쏠한 재미라면 재미일 수 있다. 그러던 차에 아주 의미 있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동양학자로 잘 알려진 조용헌님의 『조용헌의 휴휴명당』을 접하게 되었는데 ‘도시인이 꼭 가봐야 할 기운 솟는 명당 22곳’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어 우리 부부에게 딱 맞는 책인 것 같다. 조용헌님의 재담(才談)은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와 『그림과 함께 보는 조용헌의 담화(談畵)』를 통해 익히 알던 차라 책을 손에 쥐자마자 일사천리로 읽어내려 갔다. 예의 책과 마찬가지로 그의 풍부한 학식과 재치 있는 필담이 여과 없이 드러나 읽는 내내 미소를 짓게 만든다. 소개한 곳 중 몇 곳은 다녀왔음에도 이 책 한 권이면 한 2년은 장소 선정에 따른 고민은 없을 것 같은데 한편으론 한 달에 한 번 가졌던 쏠쏠하던 재미 하나는 놓칠 것 같다. 이것 또한 음양(陰陽)의 이치라고 봐야겠지만.

 

   저자는 책 첫머리에 ‘영지(靈地)’를 언급하며 글을 시작한다. 영지는 신령스러운 기운이 뭉쳐 있는 장소를 말하고 자신이 왜 이 세상에 왔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영지를 가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지의 지기(地氣)를 맛보아야 한다고 한다. 특정한 장소에 가보면 척추 꼬리뼈를 타고 올라오는 전기자극 같은 느낌이 오는데 이것을 ‘기감(氣感)’이라고 한다는데 느껴본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책에는 ‘명당(明堂)’이라는 말이 반복되어 나온다. 땅의 기운은 가는 곳마다 다른데 역사적으로 검증된 영지는 공통적으로 밝고 강한 기운을 내뿜는데 이런 곳이 바로 ‘명당’이라고 한다. 이런 명당에서는 몇 시간 혹은 며칠만 머물러도 몸이 건강해지고 영성(靈性)이 개발된다고 하니 이 책에 소개된 22곳을 당장에 가고픈 충동이 생긴다. 저자가 말하는 명당은 설악산, 관악산, 치악산, 송악산, 월악산, 모악산처럼 이름에 ‘악(岳)’자가 들어가는 산이 포함되는데 단단한 바위로 이루어진 곳은 바위 속에 있는 광물질(미네랄)로 지구의 자석 에너지가 방출되어, 바위에 앉아 있으면 철분 등 각종 광물질이 있는 인체의 피 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몸이 빵빵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하며, 실제 저자가 2006년 건강이 좋지 않아 설악산 봉정암에 1주일 정도 머무르며 기도한 체험담을 기술해 놓기도 하였다. 바위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뇌세포를 활성화 시켜 준다고 하니 심신이 지친 현대 도시인들은 얼른 바위산으로 떠날 채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저자는 바위 맥이 산을 타고 내려오다가 기운이 뭉쳐있는 끝에 병풍처럼 포진해 있어 기운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안산(案山)역할을 하는 봉우리를 중시하고 특히, 물의 흐름에 대해서 눈여겨보는 것 같다. 공주 태화산의 마곡사를 소개하면서 물이 태극 모양이나 S자로 흐르는 곳을 명당이라 칭하고, 이런 지형에서는 물이 느리게 흐르면서 주변에 수기(水氣)를 충분히 공급해 준다고 설명하면서 물이 있어야 불에서 나오는 강력한 기운을 저장할 수 있고 물로 기운을 저장하지 못하면 속발(速發)했다가 속패(速敗)한다고 하니 풍수 강의를 제대로 듣는 기분이다. 아울러 봉우리 3개가 연달아 내려오는 지점을 양쪽에서 흘러오는 물이 만나서 흐르는 곳을 ‘삼산양수(三山兩水)’라고 표현하는데,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양수리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교하(交河)도 역시 명당이라고 한다. 구봉산이 있는 교하는 최근 풍수학자인 최창조 교수가 통일 한국의 수도를 교하로 정해야한다고 주장하여 주목받고 있는 곳이라 눈길이 한 번 더 가기도 한다.

 

   기도터를 찾는 분들이라면 익히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나라의 4대 관음성지는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 여수 향일암 그리고 남해 금산의 보리암이다. 공통적으로 바닷가에 있는 영지로 기도발이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바위산과 물이 합쳐지면 바위에서 분출되는 화기(火氣)와 물에서 나오는 수기(水氣)가 어우러져 『주역』에서 말하는 ‘수화기제(水火旣濟)’가 이루어진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수기가 있어야만 불기운을 조절할 수 있다. 분노조절 장애나 화병(火病)이 유독 많은 한국인들에게 수승화강(水昇火降), 수화기제는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여진다. 위에서 언급한 4대 관음성지 외에 해남 달마산 역시 화기와 수기의 교류를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소개되었는데, ‘땅 끝 산’인 해남의 달마산을 호박 열매가 끝자락에 열리듯이 기운이 뭉친 명당이라는 표현이 신선하고도 재미있다. ‘궁즉변(窮則變)이요, 변즉통(變則通)’, 즉 갈 데까지 간만큼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지점이기도 한 곳이라는 점에서 막다른 상황에 이르렀다고 느끼는 분들에게는 희망을 모색해 볼 수 있는 명당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나부터 가봐야 할 듯하다. 금닭이 알을 품은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 형세를 가진 공주 계룡산 갑사도 소개해 드려야 되겠고, 건강을 잃으신 분들에게 영험한 장성 백양사 약사암도 소개해 드려야 하는데 시간과 지면의 제약으로 일일이 설명 드리기는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되어 이 책을 구입하시거나 도서관에서 대출 받아 보시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 곳 한 곳은 그래도 언급하고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오랜 기간 발품으로 저술하신 저자에 대한 도리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의 저자 조용헌님께서 마지막으로 소개한 명당인 “휴휴산방(休休山房)”이 그 곳인데 이 책의 이름과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 전남 장성군 축령산 자락에 있는 곳으로 저자가 글을 쓰는 작업공간이 바로 “휴휴산방”이다. 축령산은 신령스런 독수리의 형상이란 뜻으로 산봉우리들이 펼쳐진 모습이 독수리가 날개를 편 모습과 흡사하다고 한다. 저자가 글을 쓰다가 몸과 마음이 방전되었을 때 들어온 곳으로 편백나무가 울창한 숲길을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글감을 떠올린다고 한다. 여름에는 편백나무 밑에 소금과 숯을 넣어 둔 마루방에서, 겨울에는 허벅지만한 두께의 장작을 6개 정도 아궁이에 넣어 지글지글 끓는 온돌방에서 편백향을 맡고, 보름날에는 편백방에 누워 창밖으로 보름달을 바라보고, 비오는 날에는 양철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곳이 저자의 말대로 명당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생동감 넘치는 생생한 사진으로 인해서 더욱 현장감 넘치는 기분이 들었고, 저자의 해박한 풍수에 대한 설명으로 인해서 마치 직접 답사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이제 우리 부부는 책의 목차에 따라 남해 금산 보리암으로 떠날 채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명당은 어디인가? 자기에게 맞는 곳이다. 특히 잘 나갈 때보다는 몸과 마음의 배터리가 방전되어 힘들 때에 위로해 주고 에너지를 주는 곳이 명당이다. 나에게 전남 장성의 축령산 휴휴산방은 그런 곳이었다. 토산(土山)인 축령산의 기운이 나를 훈훈하게 보듬어주었다. 마치 닭이 알을 품듯이, 독수리가 알을 품듯이 말이다. (p.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