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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불교를 좀 안다고 자부하며 절에도 들락거리고 스님들과 선문답도 하며 제법 우쭐거렸던 나 자신이 한 권의 자그마한 책으로 인해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금강경이니 법화경이니 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까불었던 나 자신이 한 권의 자그마한 책으로 인해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불교는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머리를 통한 지식으로 알 수 있는 성질이 아닌데도 글 몇 줄 읽고서는 마치 성불이라도 한 듯이 오만방자하게 굴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이 책은 현재 여러 불교대학에서 불교교리 및 불교문화를 강의하고 계시는 목경찬 교수님이 쓰셨는데 저자가 평소 신행생활을 통해 느꼈던 점을 함께 생각해 보자는 의미에서 쓴 글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저자는 ‘부처님께 다가가는 방법’으로 열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이 열두 가지 방법을 익히면 부처님께 곧바로 갈 수 있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신행생활을 바르게 하는 열두 가지 방법으로 이해하면 편할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이 ‘믿음’이다. 부처님께서는 믿음을 손으로 비유하셨는데 이 책 표지의 그림에 나타난 손이 곧 믿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믿음과 맹신은 구분하여야 한다. 무조건 경전에 쓰여 있으니 믿어야 되고 그런 차원의 믿음을 불교에서는 단연코 배격한다. 그래서 믿음과 함께 지혜가 강조되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신심은 있으나 지혜가 없으면 이 사람은 무명을 키우고, 지혜는 있으나 신심이 없으면 이 사람은 그릇된 소견을 키우게 된다. 《열반경》 (p.19)

두 번째 방법이 ‘하심’이다. 불교는 끊임없이 자기를 낮추는 공부이다. 나(我)라는 상이 있으면 분별심으로 가득 차게 되고 자신이 제일 잘났다고 우쭐대게 마련이다. 그래서 하심(下心)이 불교공부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절에 가면 머리와 몸을 땅바닥에 바짝 붙이고 자신을 한껏 낮추어 절(拜)을 반복한다. 절(寺)이라는 어원도 거기에서 기인했으리라 본다. 진정 자신을 낮출 때만이 남을 받아들일 수 있고 자신의 마음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이다. 너무나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가는 요즘 세태에 딱 들어맞는 경구가 아닐 수 없다.

무릇 하심을 지닌 자에게는 온갖 복이 스스로 귀의하느니라. 《자경문》(p.49)

세 번째 방법이 ‘발보리심’이다. 즉,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낸다는 의미인데 부처될 마음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사실 우리 주변의 불자들에게 불교에 입문하게 된 동기를 여쭤보면 대부분이 가족의 건강을 빌기 위해서라든가 사업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 아이 좋은 대학에 붙기 위해서와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소망을 기원하기 위해 절에 오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나 자신도 처음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다녔으니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하지만 저자는 동기가 어떠하든 부처님 가르침의 인연을 맺은 밑바탕에는 발보리심을 향한 씨앗이 싹트고 있다고 위안의 말씀을 잊지 않는다.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과 같은 보살심(菩薩心)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거듭 착한 마음으로 신행생활을 계속하다보면 예불문에 나오는 ‘그윽하고 은근하게 스며드는 부처님의 가피력(冥熏加被力)’으로 인해 초심(初心)을 잃지 않을 것이다.

네 번째 방법이 ‘기도의 힘’이다. 여기서 기도는 돈이나 명예 등 개인의 복을 비는 기복(祈福)을 말함이 아니라 고양이가 쥐를 노려보듯, 굶주린 사람이 밥을 생각하듯, 목마른 이가 물을 생각하듯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고자 하는 마음을 말하는데 시인 안도현님의 시가 적절하게 인용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외롭고 높고 쓸쓸한》(p.71)

다섯 번째 방법이 ‘참회’이다. 참회(懺悔)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작든 크든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한평생 살면서 화를 한번 내지 않고 거짓말 한번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참회를 통해서 청정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발원을 하면서 수행을 하게 되므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여섯 번째 방법은 ‘발원’이다. 발원(發願)이란 중생을 제도하려는 부처나 보살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기원하는 것을 말하는데 어떠한 시련에도 물러나지 않고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법회 마지막에 사홍서원을 올리는데 이것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서원을 되새기며 맹세를 하는 과정으로서 부처님 가르침으로 나아가게 하는 큰 힘이 된다.

앞의 세 가지 믿음, 하심, 발보리심은 불자라면 모름지기 간직해야할 마음이고 뒤의 세 가지 기도, 참회, 발원은 신행생활의 중심을 이루는 실천사항이다. 그리고 남은 여섯 가지방법은 신통, 선지식, 역경, 도량, 연기법, 불성인데 앞의 네 가지는 저자가 신행생활 도중 부딪쳤던 좌절과 관련된 주제이고, 뒤의 두 가지는 불교의 핵심교리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당시와 시간적인 그리고 공간적인 차이도 많고 불교의 관념적인 철학을 현대의 언어로 일치시킬 방법도 없다. 그렇다고 언어로 나타내지 않으면 사람들을 이해시킬 도구가 마땅히 없다. 그래서 불교를 인간이 알고 있는 알음알이 잣대로 재지 말고 분별심을 모두 내려놓고 들어오라고 한다. 이 책 한 권을 읽는다고 부처님께 금방 다가갈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배우고 아는 만큼 자신을 돌아보고 배우고 아는 만큼 실천하는 과정 속에 한 발 한 발 부처님께 다가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미 부처님께서는 내 안에 계시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