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관계도 공부도 요령 있게 잘 해나가는, 모든 일에 빈틈없는 고교생이 된 이이지마 나오유키. 현 내에서도 톱 레벨의 진학교에 입학한 그는 아무런 부자유도 없는 학교생활을 손에 넣었다. 전통과 자숙의 균형이 맞는, 그런 입맛에 딱 맞는 분위기에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은 반의 대표가 된 코바야카와 치히로. 대표로 입후보하더니, 일하는데 방해되니 부대표는 필요 없다고 말한 안경 소녀다. 항상 텐션이 높고, 엄격한 규율로 반을 혼란에 빠트리는 그녀의 손에서 나오유키는 불꽃의 검을 환시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속 어둠을 알게 되는데--다나카 로미오 최신작은 헤로인 관찰계 러브 코미디?!

*
[인류는 쇠퇴했습니다] 다나카 로미오 최신작!
애니메이션 방영으로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는 다나카 로미오의 최신작이 제이노블에서 발매된다. 푸른 청춘들의 고민과 고뇌, 그리고 서서히 빠져드는 풋풋한 연애감정까지 섬세하고 치밀하게 표현한 다나카 로미오표 러브 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AURA와 같은 단권완결의 스쿨카스트물이지만, 전자가 양이라고 한다면 이쪽은 음.

평범한 주인공이 특이한 히로인과 엮여 고생하다 결국 이어지는 이야기라고 하면 이바닥에서는 오소독스한 스타일이죠. 하지만 스쿨카스트물로서 학급이라는 공간의 ‘어둠’을 파헤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파저티브한 러브코메디였던 AURA와는 달리, 이 작품은 뭐랄까...뼈속까지 시립니다. 아파요. 근본이 이건 네거티브한 작품이야!

그래서 광고에서는 “히로인 관찰계 러브코메디”라고 하고 있습니다만, 관찰계까지는 동의해도 러브코메디란 문구에는 도저히 수긍할 수가 없네요. 감정폭발과 모에를 극단적으로 경계하는 그 담백한 서술은, 오히려 비오덕계열의 청춘소설쪽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었습니다.

///

꽤 제 취향으로 막나갈 수 있는 설정이었고, 실제로도 꽤 조마조마한 전개를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드라이한 서술 때문에 AURA와 같은 폭발력이 없었던 점이 아쉽습니다. 재미와 감동 어느 쪽으로도 제 취향에는 너무 담백하더라고요.

일단 모에 어필이 약합니다. 오덕질에 대한 이해가 없는 친인, 예를 들자면 부모님에게 보여드려도 부끄럽지 않을 소설이라고 표현하면 꽤 그럴듯해 보입니다만...그만큼 라노베 독자에게 어필할만한 자극적인 맛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거든요.

예를 들어 네코미미 모드 이벤트의 경우, 다른 소설이라면 진도 확 나가며 제대로 뽑아 먹을 이벤트이고, 다나카 로미오라는 작가에게는 “모에”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지라 아무래도 기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만...왜 그런 이벤트를 넣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무심한 듯 시크하게 무시하고 넘어가 버리더라고요. 개그가 없는 건 아닌데 극단적으로 절제합니다. 결국 마지막까지 해당 속성이 활용되지 않았을 때의 아쉬움이란 진짜...ㅠㅠ

픽션은 폭발이라고!

///

캐릭터고 스토리고 전부 배덕적이라고나 할까, 아프다거나 할까, 뭐 그런 느낌?

일단 히로인 조형이...묘해요. 처음에는 교실에서의 위선적 정치행위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공감을 모으는 타입(하치만 여성형!)인 줄 알았더니, 공감하기엔 또 너무 자업자득인 면이 많은 비뚤어진 선민주의자라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익명으로 관리하는 블로그에서 뒷담화하는 암흑일기를 쓰고, 게시판에 악플다는 게 생활인 히로인이라니...너무 눈물나지 않나요...

이게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나, “AURA” 같은 희화화된 중2병이라면 그나마 나은데, 그렇게 대놓고 판타지스럽게 막나가는 작품도 아니니까요. 어디까지나 “리얼하게” 찌질해요. 평범한 중2병이에요. 자신은 특별한 존재고, 세상은 모두 썩었고, 뭐 그런 수준의 누구나 겪는, 그래서 더 속 쓰린...그런 중2병...AURA보다, 역시 내 청춘~보다도 이게 더 보다가 마음이 꺾일 것 같았지 말입니다...내 청춘은 작위성이 좀 눈에 띄는 편인데, 이건 그냥 리얼이라(...)

/

무엇보다 이 여자, 어디로 튈지 몰라서 번거롭습니다. 주인공이 좀 성급하긴 했지만, 반응이 해도해도 너무 하잖아...두달이라니...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주인공의 끈질긴 근성에 눈물이 났고요...주인공은 그러고 있는데 그동안 히로인이 한 짓이라고는,

“치히로가 벗고 있었다.”

...야 임마!

그 당시의 배덕감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네요 진짜.

차라리 전화를 받은 이후 수치심 때문에 무너진 거라면 모를까, 진짜 예측할 수 없는 타이밍에 무너져 내리며 사람 괴롭게 해서...소녀 마음 알 수 없는 거야...

/

어둠에 다크한 NTR 전개를 떠올린 게, 제 잘못만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이거 원래 음란한 작품임. 이런 스산하게 독기가 흐르는 분위기로는 그런 망상이 떠오르는 게 당연하잖아...!!

AURA쪽이 작품으로서는 압도적으로 재밌는데, 에로 동인지는 코바야카와 쪽이 압도적으로 재밌을 것 같은...그런 어둠에 다크한 2차 창작욕구를 자극하는...그런 간지...

///

스토리고 캐릭터고 전부 스산하기 짝이 없는 어둠의 리얼계 작품입니다만, 그런 작품인 주제에 결말이 AURA이상으로 뜬금없고 편의적인 것이 문제. 원래부터 파저티브 계열인 AURA도 지나치다고 비판을 받을 지경이었는데, 이런 네거티브한 작품에서 갑자기 이러면 곤란하죠;;

독자 멘붕시킬 가슴 시린 엔딩을 향해 착착 진행해 나가다, 갑자기 엔딩만 어른의 사정으로 갈아치운 것이 아니냐는 느낌마저 들 지경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전개에서는 배드엔딩이 자연스럽고, 아무리 잘해봤자 노멀엔드였다고요. 이런 편의주의적 해피엔딩이 나올 수가 없다고!!

불꽃의 검이라니 뭐야! 샤나냐? 그렇지 않아도 제목 때문에 자꾸 작안의 코바야카와라고 읽게 되더라고! 아님 언령술사야? 왜 지금까지 가까워졌다가도 계속해서 멀어지고, 결코 쉽게 설득되지 않으면서 리얼의 무서움을 보여주었던 클래스메이트들이 격침당하는 건데! 불꽃의 검을 휘두른다는 대단히 상징적인 묘사를 하고 있는데, 실제로 어떤 상황일지 감도 안 잡히는 거 있죠...

뭐 NTR 배드 엔딩 보다는, 부자연스러워도 이쪽이 낫...겠죠? 고백 후 주인공을 지키기 위해 불꽃의 검을 휘두르며 싸우던 코바야카와는, 지금까지 중 가장 사랑스러웠기도 하고요.

///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고 나서도 모르겠는 게 하나 있는데요...

결국 다나카 로미오는 이 작품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어떤 작품을 읽어도 작가의 의도가 최소한은 보이는 법인데, 작가가 그럴 의도가 없어도 어떤 식으로든 작가의 자아는 작품 안에 녹아들기 마련이라고 보는데, 이건 너무 안 보임(...)

///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스쿨 카스트물은 "학급이라는 좁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각종 정치행위를 중요한 소재로 다루는 일련의 작품군"을 칭하는 용어로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건 맨 앞에 해야 할 말인데, 넣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