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을 갈때 처음에는 수도나 대도시 위주로 돌아다녔습니다. 여행을 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 나라를 알기에 가장 좋은 곳들을 찾다보면 서울처럼 번화하고 복잡하면서 나와 같은 여행객들로 붐비는 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정말 많이 걸었네요. 그러다보니 여행을 갔다와서는 가기 전보다 더 피곤했습니다. 몇 번 그렇게 하다가 이제는 사람들이 많이 없는 작은 도시에서 그냥 여유롭게 쉬다 오는데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이 거기가 어디인지, 왜 돈을 쓰면서 그런 곳에 가는지 물어보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척 만족합니다.

 

빌 브라이슨은 재치있는 유머 여행기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미국, 유럽, 호주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한 그의 책이 번역되었는데 이번에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 횡단기' 가 개정판으로 새롭게 나왔네요. 미국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서 이번에 나온 개정판으로 처음 읽었는데 이 책에서는 미국의 소도시들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빌 브라이슨은 아이오와의 디모인 출신이라고 합니다. 아마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 도시를 여행하였거나 이름을 들어본 적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어릴때 이곳에 살았던 브라이슨은 주말이나 여름 휴가철이 되면 가족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아이오와의 다른 도시나 주를 넘어 여행을 하였네요. 지금과는 달리 네비게이션이 없어서 전적으로 지도에 의존해야 했는데 중간에 길을 잃어 엉뚱한 곳으로 가기도 하고, 대공황을 겪은 아버지는 극도로 돈을 쓰는 것을 꺼려해서 그렇게나 가고 싶었던 도깨비가 나오는 테마파크도 못 갔었습니다. 물론 이 책을 쓰면서 혼자 여행할때 들어갔는데 아버지의 판단이 옳았었다고 생각하게 되지만요.

 

브라이슨은 동부와 서부 30개가 넘는 주를 애마인 자동차를 타고 여행합니다. 큰 도시보다는 소도시 위주로 돌아다녔는데 그러다보니 처음 들어본 도시도 많고, 막상 너무 할게 없어서 수십km, 수백km 를 더 운전해서 바로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도 했네요. 겨우 발견한 음식점에서는 조금만 더 종업원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가 음식에 침이 섞여 나오지 않을까 걱정하고, 오래된 모텔에서는 오래된 TV 와 오래된 침구로 하루를 마무리 합니다. 전에 읽었던 브라이슨의 책들처럼 쉴새없이 재미있는 표현들이 나오네요.

 

삼면이 바다인 데다가 북쪽으로는 갈 수 없어 사실상 섬나라나 마찬가지인 우리나라에 있다보면 한번쯤 미국 자동차 횡단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브라이슨은 동쪽과 서쪽을 횡단하였는데 새로운 주에 들어설 때마다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네요. 자연 환경이 무척 아름다운 주도 있고 어디를 봐도 끝없이 옥수수 밭이 펼쳐져 있는 주도 있습니다. 책에 나오는 표현대로 '헐랭전선' 때문에 폭설이 내리다가도 조금만 운전해 다른 주로 넘어가면 따뜻하거나 더위가 기승을 부리네요. 주나 도시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하나씩 표시해 가면서 읽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긴긴 여행을 끝내고 다시 고향인 아이오와에 진입하였을 때에는 고향에 대한 아름다움의 찬사가 이어지네요. 어릴때의 추억이 담겨 있고 힘든 여행이 끝나서 더 그렇게 느끼기도 하겠지만 미국을 떠나 영국에 산지 오래 되었어도 고향이 주는 느낌은 남다른가봐요. 1980년대의 여행기를 쓴 책인데 책에 나오는 소도시들은 지금과는 많이 바뀌었을지, 그렇지 않으면 여행에서 만난 음식점의 종업원이나 모텔 주인들이 그대로 있을지 궁금하네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브라이슨처럼 마음가는 대로 떠나는 여행을 해보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