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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몸의 비밀, '몸의 진보'인가 '몸의 변형'인가

1. 포스트모던 연옥론

며칠 전 아빠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물을 많이 먹으면 설탕 섭취량이 준다는 것이다.

아빠는 나이가 많아 건강에 신경 써야 한다. 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의사가 당뇨를 조심하라고 했다. 아직 당뇨는 아니지만 신경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설탕과 소금 섭취를 줄여야 한다. 아빠는 너무 달게, 너무 짜게 먹는다. 아빠는 이렇게 둘러댔다. "그래도 다른 사람은 커피를 마실 때 물을 적게 넣지만, 나는 많이 넣어."

물을 많이 넣으면 설탕량이 줄어드나? 설탕 섭취량은 물을 많이 먹어도 똑같다. 설탕 섭취량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아빠는 물을 많이 먹으면 설탕 섭취량이 줄어든다는 식으로 말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설탕 효과가 줄어단다. 정말 그렇다면 설탕을 많이 먹어도 물을 많이 먹으면 당뇨를 막을 수 있겠다. 조금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라 그냥 웃고 말았다.

아빠의 속사정을 풀이하면 이렇다. 아빠도 당연히 물의 양과 설탕 섭취량은 아무 관련이 없음을 안다. 물을 많이 먹는다는 얘기는 그저 변명이었다. 하지만 이런 변명은 시간이 지나면서 믿음 대상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정말 물을 많이 먹으면 괜찮을지 어떻게 아나? 더구나 나는 물을 많이 먹으므로 다른 사람에 비해 건강하지 않나? 지금 아빠는 그렇게 믿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생겼다. 말에 자립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처음에 분명 변명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 말을 한 사람이 그것을 믿게 된다.

빈말이 믿음으로 변화되는 현상은 바로 연옥에서 일어난다. 이것이 연옥의 핵심이다. 영화 '디 아더스'보다 이런 현상을 더 잘 보여주는 영화가 있을까? 영화 '디 아더스'를 포스트모던 연옥론으로 부르고 싶을 정도다.

이 영화의 비밀은 간단하다. 여주인공은 존속 살해범이다. 그는 자기 아이 두 명을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했다. 본인의 설명에 따르면, 자살 후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 깨어났다는 것이다. 깨어나 보니 아이들은 아무 일 없이 고요히 자고 있었다. 그래서 주인공은 다짐했다. 그리고 현재를 하나님이 주신 기회로 받아들이고 아이들을 정성껏 돌보기로 마음먹는다. ‘비록 과거는 초라하지만 지금부터 아이들을 위해 무엇이든 할 거야.’

그런데 이렇게 다짐했지만 중요한 사실이 빠졌다. 자신이 자살했다는 사실은 누락되었다. 마치 억압되듯 기억에서 사라졌다. 주인공은 스스로 살았다고 믿는다. 주인공은 분명 과거의 충격적 사건을 보상하려 했다. 스스로 자식을 죽였고 자신도 자살했다. 하지만 다시 기회가 생겼고, 아이들도 옆에 있다. "아이들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여기서 갑자기 충격적 사건 기억이 사라졌다. 다시 말해 자신을 산 자라고 믿었다.

이런 맥락에서 연옥은 증상이다. 충격적 사건을 기억하지 않으려는 증상. 이것은 통념과 상당히 어긋난다. 사후 세계가 더 진실에 가깝다면 연옥이 어떻게 증상이 될 수 있나? 연옥이 증상이라는 말은 진실은 지금 이 세상에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영화 마지막에서 주인공은 결국 존속 살해 사건을 기억하게 된다. 주인공은 이미 죽었으며 아이들도 죽었다. 주인공과 아이들은 죽은 자로서 사는 셈이다. 주인공에게 진정으로 참회할 기회가 생긴 건지 모른다.

그렇다면 어떤 세상이 더 좋은가? 자식을 죽이고 자신마저 자살해버린 삶이 더 나은가? 그것을 보상할 수 있는 삶이 더 나은가? 과거를 돌이킬 수 없다면, 적어도 주인공에게 연옥이 아주 괜찮아 보인다. 그러나 이마저 확실하지 않다. 아이는 결국 엄마가 자기들을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기를 죽인 엄마와 함께 사는 아이에게 무슨 생각이 들까?

다른 영화에서도 이런 상황을 재연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을 배신한 자가 이렇게 속삭인다. 실재의 삶이 비루하다면, 다시 말해 인간이 이미 기계의 연료원으로 전락했다면, 그냥 매트릭스를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조건이 하나 있다. 실재를 망각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 좋은가? 실재를 아는 삶이 좋은가? 실재를 모르고 가상현실에서 사는 것이 더 나은가?

설사 연옥이 더 낫다거나 가상현실이 더 낫다고 해도 문제는 깔끔하게 해소되지 않는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 채 연옥에서 살아도 과거는 지속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으로서 과거는 연옥에서도 지속. 매트릭스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네오는 매트릭스 안에서 원인 모를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주인공 네오의 연인이 말하듯 매트릭스는 '네가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2. 음모론 : 현대 종말론

오늘날 종말론은 농담이 되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오늘날에도 종말론은 있다. 단지 종말론의 성격이 바뀌었다." 오늘날 종말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음모론이다.

아침 시사 방송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자주 나온다. 어떤 사람이 새 침대를 샀다. 그런데 침대업자의 속사정을 살폈더니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많은 새 침대가 중고품이다. 심지어 폐기물로 버려진 침대를 개조하여 새 침대로 판다. 다시 말해 내가 쓰는 침대도 중고품일지 모른다. 이렇게 소비자를 속이는 장사꾼이 분명 있다.

놀랍게도 이런 형식의 방송이 늘 반복된다. 일상생활은 사실 겉모습이다. 겉모습 뒤에 매우 사악한 현실이 버티고 있다. 우리는 겉모습이 벗겨지길 원한다. 비록 실재를 보고 충격을 받아서 정신을 못 차리더라도 실재가 드러나길 원한다.

언제나 모든 사태의 의미를 밝히는 마지막 인물이 있다. 침대 사건에서 그는 바로 악덕 업자이다. 그러면 더 큰 사건의 보증자는 누구일까? 미국 정보, CIA, 이슬람 원리주의자, 김정일 정권……. 이렇게 계속된다.

이들은 매우 사악하다. 사악함은 보통 사람의 악을 훨씬 능가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상하게 안심한다. 비록 그들이 사악하더라도 우리가 보는 현실은 나름대로 뜻이 있는 셈이다. 누군가 뒤에 조종하니까. 계시록을 현실 정치 사건으로 곧바로 번역하는 사람은 계시록에 나온 현실을 직접 확인할 때 은밀한 평화를 느낀다. 모든 것이 결국 계시록대로 진행된다.

3. 새 몸의 비밀

톰 라이트는 두 개 덫을 피해간다. 포스트모던 연옥론과 현대 종말론. 놀랍게도 기독교에도 이 두 개가 꽤 인기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부활은 연옥론과 현대 종말론을 반대한다. 부활은 현대 종말론인 음모론에 동의한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의 뜻을 보증하는 누군가가 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자세히 모른다. 부활은 시작이다. 부활의 첫 신호가 이미 왔다. 모든 사람이 부활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잘 모른다. 물론 우리는 모든 사람이 부활하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가고 있다.

반면 음모론에서 음모를 꾸민 자는 이미 우리 가운데 있다. 단지 우리가 그에게 접근하기 어려워서 문제다. 음모론의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 음모론을 믿는 우리는 이렇게 가정한다. 결국 세상을 은밀히 이끌어가는 이들과 조직이 세상의 뜻을 결정한다. 우리는 단지 껍데기를 보면서 오인한다. 우리는 피해자다. 아마 마지막까지 피해자일 것이다. 하지만 부활을 믿는 자는 누가 정말 오인하는 자인지 안다.

정말 음모론대로 세상의 뜻을 결정하는 조직이 있다고 하자. 만약 그들이 강력한 힘으로 세상을 조정해도 그들은 세상의 뜻을 결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스스로 세상의 뜻을 결정한다고 오해한다. 되레 그들이 속은 자다. 부활은 그들의 힘이 꺾였다는 확실한 표시다.

음모론보다 뿌리치기 힘든 것은 연옥론이다. 매트릭스식 세계관이다. 성형수술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이 얼마나 많나. 하지만 성형수술의 부작용은 상상하기도 싫다. 몸을 새로 만든다는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아마 지금 몸을 완전히 다른 몸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과연 몸의 변형이 성공할까? 우리는 얼마나 몸을 바꿀 수 있나? 아직 감기와 암을 정복하기보다 아예 기계 몸을 입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이렇게 몸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면 결국 몸보다 정신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싶어진다.

정신을 소프트웨어로 만들어 어떤 하드웨어에도 다운로드하도록 한다면 어떨까? 결국 이것은 매트릭스식 세계관에 접근한다. 몸을 바꾸기보다 정신을 바꾸는 것이 더 낫다. 어떤 몸이든 입을 수 있는 정신. 하지만 부활은 몸의 변형을 주장한다. 우리는 몸을 던져버리지 말아야 한다. 바로 이 몸이 새롭게 변형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새 몸이 반드시 옛 몸과 완전히 다르지도 않다. 옛 몸의 흔적은 여전히 남는다. 그러나 새롭게 변형된다.

부활한 예수는 유령도 아니고 가상현실도 아니었다. 우리가 부활해도 여전히 병에 걸리겠지만, 지금보다 훨씬 빨리 회복될지 모른다. 병에 걸리지 않는 몸이 아니라 병을 이기는 몸. 부활을 기다리는 기독교인은 '몸의 진보'가 아니라 '몸의 변형'을 기다린다. (2009. 8. 11. 뉴스앤조이 / 배성민 샘터교회 교인·파라클레 대표)

저자 톰 라이트
영국 모페트(Morpeth)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엑스터 칼리지에서 신학을, 1971년부터 1975년까지 세계성공회대학협의회(CUAC) 가맹학교인 옥스퍼드 위클리프 홀에서 성공회 사목(Anglican ministry)을 공부했다. 성공회 리치필드 주교좌 대성당(Lichfield Cathedral)에서 사목했으며,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맥길대학교(McGill University)에서 신약성서학을 가르쳤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참사회원 신학자(Canon Theologian)로도 활동했던 그는, 영국의 기독교 서점에 톰 라이트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로 인기 있는 다작의 저술가이자 방대한 학술 서적과 대중적 저술 모두에서 호평을 받는 흔치 않은 인물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에 관한 물음'이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으며, 현재는 제3의 역사적 예수 탐구와 바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선두 주자로 인정받는 학자다. 아울러 ‘21세기의 C. S. 루이스’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는, 이미 21세기에 가장 주목받는 변증가로 자리 잡았다. 2003년 성공회 더럼교구 교구장(Anglican Bishop of Durham)으로 임명되었으며, 저명한 역사가이자 신약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톰 라이트와 함께하는 기독교여행』, 『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정의』,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에 관한 질문’ 프로젝트의 일부인 『신약 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 및 『Jesus 코드』, 『예수』, 『나를 따르라』, 신약 성서의 메시지를 쉽게 이해하고 접할 수 있도록 저술하여 큰 호평을 받은 주석 시리즈인 ‘The New Testament for Everyone’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