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일미, 영미 추리소설을 즐겨하는 나에게 오랜만의 호기심어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책이 눈 앞에 펼쳐졌다.

이름만 들어도 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관심과 기대를 품을 정도로 이름난

일본의 작가들이 모였으니까 말이다.

추리 문학에 대한 깊이가 그 누구보다 깊은 편은 아니지만 내가 이 세계에

발을 내딛으면서 늘 하는 말은 베일에 쌓여 감춰진 범인을 향해

쫓아가는 여정의 시간과 끝날거 같지 않는 치열한 두뇌싸움의 연속,

뇌리를 스치는 반전의 짜릿함이 바로 내가 발견하고 느낀 추리소설이

매력이라는 점이다.

 

어디서 본 듯한 내용과 트릭, 비슷한 주인공들도 요리의 양념처럼 어떻게

알맞게 조화를 이루어 절묘하게 짜여진 플롯속에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느냐에 따라 그 희비가 엇갈리는 것을 알 수 있어 가끔은 날카로운

잣대를 놓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카파 노블스 창간 50주년을 기념하여 일몬 미스터리

작가9명이 모여 50이라는 키워드를 손에 놓고 써내려간 단편들이

모인 단편 앤솔로지 <50>은  다채로운 작가들이 모두 저마다의 

독특한 세계를 독자앞에 그 문을 열어놓고 있다.

기획 단편집이라는 점에서 애써 50이란 숫자에 너무 의도적인 개입과

연관성을 부여할꺼같은 우려도 적지 않았던게 사실이다.

실제 열어보니 보통 전통 추리의 단편은 아니었던거 같고 작가들이

좋아하는 장르의 이야기가 잘 묻어나있음을 곧 알게된다.

미스터리 추리요소도 잘 가미되어있고 괴담이나 평이한 드라마 장르까지

그 범위가 폭넓게 펼쳐져있다. 50이라는 숫자를 핵심요소로 가미한 작품도

조금 있었고 나머지는 큰 의미부여는 하지 않는 선에서 작품 속

하나의 설정에 불과함을 독자들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 단편 <절단>은 관 시리즈로도 유명한 아야쓰지 유키토가 쓴 글이다.

직접 작가 자신을 화자로 개입시켜 의문의 죽음과 사건을 향한 시선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심리적 움직임의 변화를 잘 그려내고 있다.

한 사찰에서 벌어진 의문의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특이한 점은 범인이

이를 칼질 50번으로 50조작 내었다는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다소 끔찍하게 느껴질 수 있는 토막살인사건이지만 이 글에서는 성별을

알 수 없는 의문의 사체에 관한 정체를 결코 밝히지 않는다.

그것이 사람인지, 동물인지, 아니면 우리가 보지못한 미 생물체인지

보이지 않는 그 이름이 궁금할 따름이다. 현실적인 요소는 빠져있는 듯하며

먼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먼가 확실치 않은 끈끈하고 서슬한 뒷느낌이 여전히 미련으로

남는 거 같다. 9편의 단편에서는 그래도 50이라는 키워드를 가장 연관성

있게 살려 작품속으로 스며들게 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눈과 금혼식>은 얼마전 재미있게 읽었던 <쌍두의 악마>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이다. 제목 그대로 어느 행복한 노부부의 50주년 금혼식이 작품의

중심소재로 쓰여져 있다. 이 사이에 의문의 살인사건이 이 부부의

저택근처에서 벌어지고 경찰이 요청해서 불러들인 임상 법의학자

히무라 히데오와 작가 자신인 아리스가 함께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작가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신본격

단편에 실릴 트릭치고는 그 상상의 단계를 높게 뛰어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기도 하다. 추리적인 요소의 긴장감이나 딱히

반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내용도 거의 눈에 띄지 않고 말이다.

 

다단계라는 소재가 중간에 얽혀있었는데 이로 인해 선량한 사람이

허황된 거짓에 속아 모든 것을 잃고 비참한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져 고통과 시련을 겪으며 그로 인해 쌓여진 분노와 용서할 수 없는

복수의 칼날로 되돌아가고 있는것이 바로 살인의 동기로 엮을 수 밖에

없었나 생각해보기도 했다.

또 하나 눈이라는 소재는 하나의 트릭적 요소로 등장했지만 크게 독자의

마음을 훔치는 듯한 반전으로는 부족함을 느낀다. 

아마다 단편보다는 또 다른 좋은 장편을 기대해보고 싶은 아리스에 대한

마음을 떠올려보고 싶게 한 작품이다.

 

<50층에서 기다려라>, 오사와 아리마사의 작품, 도시 괴담속에 벌어진

한 범죄 사기극을 다룬 줄거리의 내용이다.

한 남자는 자신의 한계와 미래의 선을 너무 일찍 그어버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휘어잡고 지배할 수 있는 힘에 대한 동경과 헛된 꿈에

일찍 빠져들고 있다. 호텔 50층에서 이 세계를 내려다보고 있는 드래곤의

힘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을거라는 기대에 결국 자신도 모르게

그런 어둠의 세력에 이용되고 있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함은 한 남자의

허망한 얼굴표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하다. 먼가 이야기를 길게

풀어내지 못하고 단적으로 짤막한 스토리로 그치게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영국 세필드>, 시마다 소지란 이름만으로 또 맘속에 새로운 작품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실리게 되었다.

이전 작품들 속에 명탐정으로 등장한 익숙한 캐릭터 미타라이가

등장하지만 이 작품속에서는 서술화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서 크게 이전

추리작품과의 연관성은 없는 듯 했다. 영국 세필드가 주 배경이면서

한 뇌성마비 청년의 따뜻한 인간 승리의 감동과 여운을 남겨주는 스토리가

담겨져있다. 누구나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그 부도 또한 같은 심정이지만 세상은 늘 자신의 정상적인 눈에서만

판단하고 서로 다른 시선과 편견을 내보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추리적 요소가 가미될 여지는 없었지만 익숙한 감동 소재라 하더라도

남들이 이겨낼 수 없는 한계를 자신의 의지와 포기하지 않는 노력의 결실로

성공을 거둬낸 여정에서 또 따뜻한 부정을 발견해볼 수 있어

더 좋았던거 같다. 시마다 소지의 따뜻한 감성 드라마도 이런 면이 있어

좋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작품으로 기억될거 같다.

 

<오래된 우물>. 다나카 요시키의 작품인데 마침 첨 접하는 작가의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자리라 오랜 시간속에 어떤 비밀과 진실이 담겨있을까

그 시작부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 영국을 배경으로 한 가문에서 50대째 한 자리를

지켜온 오래된 우물에 얽힌 운명의 엇갈린 길이 시간을 거슬러 흘러들어간다.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무엇이 뚜렷한 비밀이고 진실인지 독자에게

알려주지 않지만 묘하고 애매한 반전의 증언이 남긴 서늘한 손길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독자의 마음을 더 깊이 흡입시키는 것 같아서

좋았던거 같다.

 

<여름의 빛>, 미치오 슈스케의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의 분위기를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한 초등학생이

마을에서 사랑받던 들개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카메라라는 소재와 그 안에 담겨져있는 내용을 통해 사건을 슬기롭게

풀어가는 비밀의 열쇠를 쥘 수 있었고, 그 전개 또한

급박하게 서두르지 않고 짜임새 있게 구성된 만족감을 안겨준다.

마지막에 알게되는 따뜻한 사랑과 심성의 여운도 미치오 슈스케가

보여주는 좋은 선물인거 같다.

 

<도박눈>, 이 책의 메인 타이틀에 등장하고 있는 눈이라는 소재,

에도 시대물 작품들을 많이 쏟아내기도 했던 미야베 미유키의

정통괴담 단편작품이라 말할 수 있겠다. 괴이한 요괴의 등장과

그에 얽힌 <도박눈>을 어찌하여 퇴치해나가는지, 그 시대의 정취도

가득 잘 뭍어나면서 여러 사람들의 합심의 노력으로 긴박해지는 결말로

이끌리는 과정이 좋지 않았나 느껴보게 한 작품이다.

독자의 눈을 꿰뚫어보는 듯한 몰입감있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는 역시

미야베 미유키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한 순간이었던거 같다.

 

<하늘이 보낸 고양이>, 모리무라 세이이치, 역시 첨 접해보는

작가의 작품이다. 유난히도 우연을 너무 인위적으로 엮어버린 듯한

느낌이 별로 신선한 느낌을 안겨주지 못했던거 같다. 일말의 추리과정을

쫓아가는 독자의 마음을 나타낼 수는 없었던 거 같고 어느 정도 경찰의

수사를 통해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이 특별하게 주목을 이끌지 못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미래의 꽃>, 요코야마 히데오, 우리에겐 <종신검시관>으로 그 이름이

익숙한 작가이기도 하다. 새 작품 <얼굴>을 만나기 전 먼저 접해보는

단편이라 또 다른 기대를 품어보았었다. 사건은 한 검시관이 경찰이 사건에

관련되어 전해준 자료와 사진만으로 사건에 숨겨진 진실을 하나씩 꺼내어

밝혀내는 내용이다. 50이라는 키워드만 없었다면 더 만족스러운 내용에

설들력도 잘 갖춘 준수한 단편이란 만족을 준 작품이다.

 

 

몇몇 단편은 혹평이란 이름을 피해갈 수 없어 실망스러운 맘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 색채를

잘 그려내주었던 점이 또 다른 발견의 즐거움이었다고 평을 내려보고 싶다.

이제 새로운 추리세계에 대한 동경과 나의 기대는 또 다른 만남을

맞이할 준비를 마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