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이라는 단어는 내게 너무 아득하다. 나는 살면서 창의성을 넘치게 발휘해본 적이 없다. 아니, 가끔은 애초에 창의성이란 게 내게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창의성을 발휘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아갈 만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곤 하는 나도 앞으로 살아갈 시대를 이끌어갈 이들은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내가 하루에 수시로 만지작거리는 스마트폰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면 창의성을 도대체!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폭탄이다>라는 책이 궁금했던 것도 그 이유에서다.

이 책은 스피치 프로젝트 ‘망치’의 결과로 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의 저자 박웅현이 CCO로 있는 TBWA KOREA에서 대학생들 14명을 훈련시켜 각자 창의력을 끌어내 청중 앞에서 강연하게 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에는 대학생들이 어떻게 자신의 창의력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낼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이 담겨있다.

페이지를 넘기는데 “창의력은 디테일의 합이다”라는 말이 눈에 걸렸다. 박지현의 <몬스터 빙의하기>가 바로 디테일을 살리고 살려 완성한 스피치다. “쓰레기 한번 슬쩍 버려 본 적 없”다는 박지현은 사람들을 조종해 쓰레기 버리게 하는 몬스터로 빙의해보자는 생각을 떠올렸다. 또한 몬스터에 ‘Nudohanika’(너도하니까) 같은 재치있는 이름을 붙이고, 캐릭터를 시각적으로 묘사해 청중들에게 전달했다. 디테일은 결국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느냐의 문제라고 이 책은 말한다. 그리고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박지현이 그랬듯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 있는 영역부터 훈련 해보라고 권한다.

이 책에 소개된 여러 학생들은 평범했다. 너무 평범하게 살아온 삶을 풀어낼 이야깃거리가 없어 “너무 막막하고 답답해서 집에서 혼자 막 울었어요.”라고 고백한 학생도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창의적인 발표가 가능했는가? “우리는 우스갯소리라며 짓밟아 버리는 생각의 씨앗들, 그것들을 ‘디즈니’나 ‘픽사’는 끝까지 놓치지 않고 기어이 만들어 낸다. 그 과정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자신들은 “창의성이 과정 관리라 믿”는다고 말한다. 그 과정을 관리하기 위해 이들 광고 전문가들은 학생들을 위한 멘토가 되어주었다. 멘토들이 강조하는 건 의외로 맥이 빠질 만큼 간단하다. 잘 들어주기. 그런데, 이 간단한 걸 많은 사람들이 해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망치 프로젝트는 ‘잘 들어주기’의 위력을 증명한 셈이다.

나는 이 책을 빠르게 한 번 읽은 다음, QR코드를 통해 유튜브에서 학생들의 발표 영상을 보며 다시 한 번 더 읽어보았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창의성에 관한 조언 못지않게 학생들이 발표한 내용이 내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불안의 순간에도 배울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이환희의 <불안의 선물>은 특히 인상적이었고 위로도 받았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며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내가 살아온 길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너무 삶을 쉽게, 고민 없이 살아온 것 아닐까? 분명 내게도 끄집어 낼만한 어떤 것이 있을 텐데, 나는 그것들을 그냥 내팽개쳐 두지는 않았나? “창의력은 집요함”이라고 했는데, 나는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고, 거기 끝까지 매달려본 적이 있었나?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인생길을 걸어오면서 나는 지난 내 발자국들을 북북 문지르려고만 했던 것 같다. 

이 책은 “지금까지 해온 같은 경험도 어떻게 들여다보고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새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조언을 새기며 지금까지 내 삶의 궤적을 따라 걸으며 내 안에 숨겨져 있을 창의성을 끄집어내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창의적이다’는 말과 동의어라는 이 책의 제목 ‘사람은 누구나 폭탄이다’라는 말을 나는 믿는다.

사람은누구나폭탄이다, 박웅현, TBWA0팀,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