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상황은 어떨까? 브레이크가 걸려서 좌천을 당하고 아무도 자기를 보아주지 않으면 말이다. 긍지와 자부심은 무너지고 티모스는 콩알만 하게 쪼그라든다. 이게 바로 티모스 위축증, 나상준 팀장의 현재 상태라는 상담이었다. 이에 나상준은 자신의 목 아래께를 손으로 더듬어보며 다 말라버리지 않았으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유원장은 현대인 대부분 티모스가 퇴화되었으므로 나팀장 본인과 팀원들의 티모스를 예뻐해 주라고 주문했다. 과유불급을 감안해 때에 따라 중불로 또는 약불로 티모스를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함을 잊지 말라고 조언했다. 이제 팀의 티모스를 활성화시키고 팀원들의 티모스를 살려 진정한 전투병으로 거듭나게 만드는 것은 순전히 나상준의 손에 달린 것이다.

패자부활전을 펼치다

광고모델 김연하 모셔오기 경쟁에서 노혁재 팀장에게 패해 화성전자 광고안에서 또 다시 쓴 맛을 본 나상준은 유원장의 추천으로 20킬로미터 하프 코스 마라톤 도전에 나서 성공적으로 완주하며 새로운 용기를 충전했다. 예전의 광고주 성형안경그룹 양재형 부장의 명함이 눈에 들어왔다. 이젠 광고주를 직접 개발하려는 것이다.

그는 이미 다니던 회사를 사직하고 장모를 모시고 김치 사업에 뛰어 들었다. 심호흡을 한 후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물건을 주문받는 전화와 노트북이 놓인 책상 하나를 빼곤 온통 박스만 가득한 작은 오피스텔이었다. 서울에서 주문받아 시골에 계신 장모에게 오더를 주면 그곳에서 김치를 담가 직배송하는 시스템이었다.

"사장님! 제가 책임지고 연매출 세 배로 올려드릴 테니 저한테 광고 맡기시죠"

열심히 준비한 광고가 신문에 나간 이후 보름이 지나도록 매출에 아무런 변화가 없자 양사장은 광고비를 전액 결제할 수 없다는 의사를 표명해왔다. 이에 나상준은 팀원 전원을 회의실로 호출해 대책회의를 했다. 팀원들은 다시 김치에 대해 연구하기로 결론을 내고 모두 이에 임했다.

홈쇼핑 PD로 근무하는 아는 동생에게서 급히 연락이 왔다. 두 시간 후 생방송에 프라이팬이 나가기로 계획되어 있었는데 업체 사정으로 펑크가 나는 바람에 대타 상품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에 나상준은 장모김치를 전파에 띄우기로 맘먹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사실 이전부터 김치 얘기를 살짝 흘려놨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팀원 모두 방송 콘티를 짜고 한마음으로 목표를 향해 뛰었다. 결과는 총각김치와 백김치의 완판, 실로 오랫만의 승리감이었다.

승자들이 추락하다

4팀의 장모김치 성공 사례가 노혁재 팀장과 박 본부장을 자극했다. 이들은 베이비 용품 TV 광고를 의뢰받아 곧바로 시안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들은 본질을 망각하고 제품 매출에만 정신이 팔려 허위, 과장 광고를 올렸다. 이들은 애초 준비했던 이용우 대리의 카피라이터를 임의로 바꾸기까지 했다.

"보송보송 솜털까지 건드리지 않아야 하기에 순천연 엄마표 물티슈를 사용합니다"

광고의 반응은 좋았다. 입소문을 타면서 제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흐뭇한 미소를 짓던 노혁재에게 열흘도 안 되어 소비자들의 악성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기 피부에 발진이 발생했다거나 아토피가 도져서 너무 속상하다면서 명백한 허위 광고이므로 식약청이 제대로 조사해야 한다는 내용들과 환불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여론의 뭇매로 광고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일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박 본부장에게 노 팀장은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나며 물귀신 작전을 펼쳤다. 화가 잔뜩 난 광고주는 이후기획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 사건 이후로 이후기획은 광고주들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다. 당연히 회사는 악화일로를 달렸다. 회사 사장은 화병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꼼수의 귀재들에게 처참한 말로가 다가오고 있었다. 

대형급 위기는 강력한 팀워크를 만드는 촉매제이다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하지 않으면 4팀의 존재도 유명무실하고, 장모김치의 광고를 계속 이어나갈 수도 없다. 티모스의 유원장을 찾아 조언을 구했다. 이미 장모김치를 통해 한 번 성취감을 느낀 4팀은 약간의 건수만 생겨도 금세 똘똘 뭉칠 수 있다면서 팀원 각자의 티모스를 타오르게 만드는 게 이제는 아주 쉬워졌다고 충고했다.

 
그렇다. 팀이 힘을 합친다는 게 뭔지, 나상준의 팀원들은 경험을 통해 직접 느꼈다. 김치를 가지러 간 홍 과장과 김 대리 쪽도 그렇고, 스튜디오로 향하는 차 안에서 머리를 모았다 흩어졌다 하며 콘티를 짜낸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한 가지 생각만 했었다. 김치를 잘 팔자! 그래서 4팀 최초로 모신 광고주를 완전히 만족시켜버리자!

그렇지만 그 일은 어떤 면에서 우연히 일어난 것이었고, 시간도 딱 두 시간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핑계를 찾아낼 틈 없이 그 생각밖에 할 수 없는 상황적 요소가 있었다. 실제로, 그 폭죽 터지듯 했던 그날의 클라이막스를 지나고 나서는 팀 분위기가 어느 정도 느슨해진 감이 있다. 그 불씨가 사그라지기 전에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나 팀장, 장 대리, 김 대리는 영미권 국가를 맡기로 하고, 도영재는 불어권을, 홍 과장은 일본 쪽을 전담하기로 했다. 한편 노혁재 팀은 주변 식당을 돌며 전단 작업이라도 수주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었다. 훌륭한 인력들이 노 팀장의 히스테리 때문에 죽을맛을 보고 있었다.

"이 자료 한번 검토해보십시오, 팀장님"

포스트잇의 필체는 홍 과장의 것이었다. 보고서를 읽은 나 팀장은 쾌재를 불렀다. 일본 완구회사가 올해 새롭게 선보이는 키덜트 완구를 한국 시장에 광고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국 드라마에 제품을 간접 홍보하는 PPL 방식을 원하고 있었다. 거의 원어민 수준의 일본어를 구사하는 홍 과장의 숨은 실력이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스티브 잡스라고 광고계에서 찬사를 받던 나 팀장의 멋진 PT를 홍 과장은 원어민처럼 통역했다. 일본 광고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국의 광고 에이전시로 결정했다는 거다.

화려한 부활

나 팀장은 본부장이 되었다. 박무상 본부장이 허위광고 사건 직후 회사에서 불명예 퇴출되었다. 가까스로 파면을 면한 노 팀장은 팀원들과의 불화가 극에 다달아 팀원들은 모두 태업 사태에 돌입했다. 사장으로부터 전권을 부여받은 나 본부장이 팀 배치를 다시 시작했다. 자신의 과거 행적을 진심으로 반성했기에 그는 함께 멀리가는 것을 추구했다.

'혼자 가려면 빨리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 인디언 속담

사장이 특별히 빌려준 제주도 별장에서 4팀은 파티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곧 행해질 인사 발령을 미리 나 본부장은 발표했다. 장 대리는 과장을 넘어 팀장으로, 홍 과장에겐 아직 팀장이 다소 무리라고 판단해 반년만 함께 일을 세게 해보자고 제안했다. 이에 홍 과장은 따뜻한 눈빛으로 화답했다. 다음날, 6인의 외인구단은 올레길 트래킹에 나섰다.

"보폭을 서로 맞추어,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