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에게 술 사주고 놀아주는 괴짜 선술집

 

서울 관악구 소재 지하철 사당역 4번 출구 인근 외진 골목에 위치한 작은 술집 오술차, 이곳에는 초저녁부터 손님이 가득하다. 15평 남짓 되는 작은 공간에다 소박한 인테리어, 미리 알지 않고서는 쉽게 찾아올 수 없는 후미진 장소 등 손님들에게 내세울 만한 외적 강점이라곤 별 없어 보이는 이 선술집에 왜 이렇게 손님들이 몰려들까?

 

오술차의 전략 기획을 담당하는 주인장 엄륭은 평범한 40대 중년으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농사를 짓지 않으면 헤어지자는 여자친구의 폭탄 발언 때문에 대학 4학년 때 자퇴한 후 결혼과 동시에 무연고지인 농촌에서 10년간 농사를 지으며, 농민들과 함께 농업법인도 운영했다. 이후 상경해서 20년간 단골이었던 오래된 포장마차를 보면서 오술차 창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오술차의 메뉴 개발과 운영을 담당하는 주인장 김경환은 어릴 적부터 요리를 즐겼던 사람으로 회사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무마되어 팀이 해체되자 30대 초반의 나이에 오술차를 시작 메뉴 개발에 힘을 쏟았다. 그는 대학에서 중어중문학과 무역학을 전공했으며, 창업 직전까지 중견 무역회사의 구매팀에서 근무했던 회사원 출신이다.

 

찾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 외진 곳에 선술집을 창업한 두 사람은 자본도 경험도 별로 없었다. 그들은 외식업의 선배들을 만나 많은 조언들을 들었다. 어찌보면 천편일률적인 그런 충고를 이들은 외면하고 마치 청개구리처럼 이와 반대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휴일 없이 빡세게 영업하라고"

"손님은 왕이야, 잘 뫼셔라~!"

"안주 가격 좀 높게 매겨"

"잘 나가는 가게 따라 하는 거야"

"좋은 주방장이 장사를 좌우한다고"

"인테리어는 고급스럽게!"

"직원은 최대한 싸게 쓰라고"

"권리금이 높더라도 좋은 자리에 들어가는 게 장땡이지"

 

 

 

결과적으로 오술차 주인장들은 선배들의 조언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을 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만 출근하고, 손님이 왕이면 주인장은 황제라는 마인드로 일한다. 안주 가격을 높개 책정하라는 충고에도 아랑곳하고 모든 메뉴는 5,900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게는 호황이다. 그것도 많이 잘된다.

 

 

끌려다니는 인생은 재미없다

 

책은 두 가지 타입의 주인장을 소개한다. 첫째, '먼저 즐거울 수 있는 주인장'으로 '먼즐주'라고 줄여 말한다. 이들은 남들 다하는 개업식도 하지 않고, 가게로 놀러 오라고 지인들도 부르지 않는다. 심지어 남들은 다 외면하는 그런 외진 곳에 가게를 오픈한다. 가게가 작아서 임대료도 싸고 직원도 거의 필요가 없다. 그래서 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한두 팀을 상대로 영업하면서 이들을 하나하나 친구로 만들어나간다.

 

친구가 된 손님이니 가격도 비싸게 매길 수 없는 반면 할인이나 외상만은 절대 사절이다. 그럼에도 착한 가격으로 승부하므로 단골이 많다. 그래서 심지어 손님이 메뉴도 개발해주고, 바쁠 땐 손수 서빙도 해주며, 다른 손님까지 모셔온다. 이런 식으로 영업이 전개됨에 따라 개업 후 반년즘 되자 매일 가게는 꽉 찬 손님으로 넘친다. 1년쯤 지나자 투자금은 전액 회수되었다. 이젠 일주일에 한두 번만 가게에 출근해도 된다.

 

 

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돈이 벌리면 즐겁다는 주인장'이다. '돈즐주'로 줄여서 말하는데, 개업식을 성대하게 열고 광고도 많이 한다. 인테리어에 정성을 들인 가게가 넓기 때문에 직원도 많이 필요하다. 이에 돈즐주는 초기 투자금이 많으므로 최대한 영업시간을 길게 잡고, 객단가도 높게 책정한다. 소위 '개업발' 매출이 초반에는 대단하다. 하지만 길어야 석달이다.

 

월급쟁이 시절엔 생각도 못했던 큰 돈이 매일 입금되니 돈즐주는 더욱 가게에 얽매인다. 가게가 주인이고 주인장은 오히려 노예 신세이다. 매일 쳐다보는 게 직원들의 근무 태도이다. 맘에 들리가 없다. 그래서 수시로 직원들을 교체한다. 광고는 끊을 수가 없다. 이렇게 거듭되어 갈수록 주인장의 몸은 서서히 망가지고 있다. 6개월이 지나자 좀 쉬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개업 초기에 비해 손님이 많이 줄어들었다.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아직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걱정이다. 인건비를 줄이려고 직원들을 축소함에 따라 주인장은 더 가게를 비울 수가 없다. 이렇게 악순환이 시작된다.

 

 

 

단골손님들, 함께 바다로 놀러 가요!

 

 

선술집 오술차의 문에는 간혹 이런 알림이 붙는다. 정작 손님이 전화를 걸어오면 "거짓말이야. 일하기 싫어서, 놀러왔어. 지금 대천해수욕장에서 조개 먹고 있지롱~. 심심하면 달려와. 택시비 쏜다. 네일도 문 닫고 아예 제주도 가서 푹 놀까보다"라고 답한다. 그런데, 많은 단골이 이런 야유회를 부러워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 가게 문을 닫고 놀러간 적은 1년에 딱 2번 있었다. 놀랍게도 많은 단골이 이런 야유회에 자기들도 데려가 달라고 조른다는 것이다. 일하기 싫을 때는 일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가끔 누려보는 게 좋다. 단골을 잃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단골을 얻을 수도 있다. 상호 신뢰와 팀워크가 더욱 탄탄해졌다.

 

 

손님보다 아래에 있기는 싫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은 외식업계의 만국 공통어이다. 그런데, 오술차는 다른 자세를 취하기로 했다. 즉 손님이 왕이라면, 그들은 황제가 되기로 했다. 그런데 어떤 황제인가? 왕들에게 군림하는 황제가 아니라, 왕이 필요한 것을 준비해주고 왕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덕이 있는 황제가 되기로 말이다.

 

홀업무와 주방업무의 문제, 홀과 주방의 알력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결하는 방법은, 하인이나 단순 노동자를 넘어서 황제가 되는 방법이다. 우리는 직원 면접을 볼 때도 이 이야기를 빼먹지 않고 한다. 이는 바로 오술차의 설립 취지에 맞는 '먼즐주' 타입의 인재상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술판을 벌여주자, 손님이 '절친'으로

 

이틀에 1번꼴로 가락시장에 나가 식재료 장을 보던 초가을 어느 날, 바지락을 공급해주던 아주머니가 솔깃한 제안을 해왔다. 책에선 구체적인 언급이 없지만 아마도 가락시장의 충무수산에서 제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문 내용 중 "가락시장의 충무수산은 우리에게 큰 힘을 주셨다"라는 표현이 있다. 

"전어 요즘 싼데 가족들끼리 먹을 거면 말해"
"그래요? 얼마에요?"
"너네한테 주는 건데, 다른 식당보다 더 싸게 구해줄게"
"와우! 감사합니다"

그날 전어파티를 기획했다. 영업을 하지 않는 일요일 점심시간에 함께 모여서 먹기로 했다. 참가비는 공짜. 200마리를 준비했다. 냉장고를 무제한 개방했다. 냉장고에 술과 음료는 가득 있으니 마음껏 꺼내 먹으라는 뜻이었다. 참가 인원은 20명이었다. 하루 만에 참가자가 모두 모집되었고, 그날 배 터지도록 전어를 나눠먹었다. 회로도 먹고, 구워서도 먹고. 생선을 못 먹는 친구들을 위해 삽겹살도 굽고, 조개도 굽고. 가게는 온통 연기로 자욱했지만, 누구 하나 즐겁지 않은 이들이 없었다. 2차로 대낮부터 노래방으로 몰려가 목이 터져라 놀았다.

 

 

개인 전용 술잔을 보관해준다

 

 

사장님, 술 한잔 사주세요!

 

종욱이는 혼자서 언덕길을 오르고 있다. 벌써 한잔 거나하게 걸쳤다. 그의 발걸음은 오술차로 향하고 있다. 이 동네에서 벌서 26년을 살았기에 동네의 술집과 밥집을 모두 꿰고 있는 그는 1년 전 우연히 홍보 전단지를 통해 오술차를 발견했다. 일주일에 거의 나흘 정도 들릴 정도로 단골이 되었다. 오늘은 오술차 주인장에게 흉금을 털어놓고 싶었다.

 

"사장님, 저 오늘 술 한잔 사주실 수 있어요?"

"당연하지. 종욱이 오늘은 혼자네?"
"제 인생에 이렇게 혼자 술집에 와본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 저 사장님, 회사 그만두려고요"

"근데 왜?"
"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날 밤이 새도록 종욱이의 고민을 들어주었고, 성의껏 우리의 생각을 전달했다. 우리 또한 꿈을 위해 살고, 꿈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꿈을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형도 부모도 모르는 고민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서 오술차 주인장에게 털어놓을 정도로 신뢰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얘기다.

종욱이 외에도 많은 손님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혼자서도 가게에 들린다. 즐거운 일이 있을 때도, 혹은 출출해서, 혹은 술 한잔 더하려고 등등. 우리 가게에는 혼자 오는 손님이 꽤 있다. 그렇기에 혼자 오는 손님을 가장 먼저 배려하고 집중해서 접객하려고 노력한다. 혼자 오는 손님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오술차의 목표였던 만큼, 혼자 오는 손님을 우리는 반긴다.

 

 

매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 주고 벽에 붙여놓는다

 

 

오술차 꿀막걸리

 

오술차엔 특별한 술이 있다. '오술차 꿀막걸리'이다. 상큼한 꿀향이 막걸리와 섞이면서 멋진 맛의 막걸리가 만들어진다. 이곳의 장점과 특징은 정말로 좋은 꿀을 사용한다는 데 있다. 강원도산 진짜 꿀임을 보여주기 위해 이들은 이 상품을 홍보할 아이디어를 연구한 끝에 이런 방법을 내놓았다.

 

1리터짜리 이태리 유리병

에스프레소 잔

소형 거품기

250cc짜리 카사블랑카 언더락 잔

꿀병과 막걸리 

 

주문을 한 손님 테이블에서 가장 먼저 막걸리를 따른 후 에스프레소 유리잔에다 꿀을 가득 따른다. 그러면 손님들이 "와~" 하는 탄성을 내지른다. 그러면 우리는 "아주 좋은 꿀이니까 맛있게 드세요" 하면서 꿀이 든 에스프레소 유리잔을 막걸리가 담겨 있는 물병에 거꾸로 엎어 올린다. 그러면 꿀이 주르륵 안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꿀이 다 내려가면 저어서 드시면 됩니다"

"와~ 신기한데"

"오~ 맛있어. 상큼하다!"

 

 

또 다른 도전, 프랜차이즈 사업에 출사표를 던지다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처럼 혼자 들러도 어색하지 않고, 만 원 한 장이면 좋은 안주와 술 한 잔 마실 수 있는 포장마차 같은 선술집을 연출하려 오술차는 노력해왔다. 특히, 메뉴 단가에 신경을 써 이곳의 모든 안주는 5,900원이다. 하지만 양질의 재료를 사용해 만들되 가볍게 먹을 양으로 조절해 단가를 낮췄다. 만 원 한 장이면 안주에 소주 한 병을 즐기고도 백 원을 거슬러 받는다. 

흔히 가격이 싸면 우리들은 "싼 게 비지떡"이란 속담을 떠올린다. 하지만 오술차는 맛으로 승부하기 위해 좋은 재료를 엄선한다. 예컨대 바지락 찜에는 살아 있는 바지락을, 두부 요리에 히말라야산 핑크 소금을 사용한다. 비록 작은 동네 술집이지만 다양한 메뉴와 레시피를 계량화해서 균일한 맛을 낸다. 또한 꾸준히 신 메뉴 개발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미 사당역 맛집으로 입소문을 탄 오술차가 또 다른 발걸음을 내딛는다. 프랜차이즈 사업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아무쪼록 초심을 잃지 않는 성공적인 프랜차이즈가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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