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의 기초에 입문하다

 

책의 저자 최철규는 <한국경제신문사> 경제부와 금융부 기자로 일했으며, 2004년에는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경영전문지 <동아비즈니스리뷰(DBR)>에 협상과 갈등관리에 대한 고정 칼럼을 썼으며, <조선일보>에 '최철규의 소통 리더십', '실전 MBA'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협상은 감정이다>, <협상의 10계명>, <위기관리 10계명>이, 역서로는 <성공하려면 협상가가 되라>가 있다.

 
또한 그는 교육 사업가로, 단순한 트레이닝을 뛰어넘는, 기업에 맞춤화된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2012년 HSG휴먼솔루션 그룹을 창업한 지식벤처 기업인이다. IGM 창립 멤버로 IGM세계경영연구원 부원장과 IGM협상스쿨 원장으로 일했다. 그래서 그는 강의를 하러 다닌다. 삼성, SK, CJ, 포스코 등에서 일하는 4만여 명의 비즈니스 리더와 1백여 명의 대한민국 대사에게 협상, 갈등관리, 위기관리 등을 강의하고 컨설팅한다.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및 남개대南開大 EMBA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책은 총 24강講으로 구성됐는데, 'SERICEO'에서  2013년 8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협상의 신'이라는 주제로 17개월간 진행된 강의 내용을 모아 엮었다. 당시 강의는 2001년 이후 진행된 SERICEO 경영 강의 중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을 정도로 비즈니스 리더들의 호응이 뜨거웠다. 강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 '협상'이라는 어려울 수 있는 주제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두 가지의 내용을 다룬다. 하나는 '협상에 대한 재인식'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적인 협상 전략들'이다. 협상의 정의도 시대나 환경의 변화와 함께 발전해간다. 원하는 것을 최대한 얻어내는 협상(협상 1.0)에서, 서로가 만족할 만한 이익을 나누는 협상(협상 2.0)으로, 그리고 이제는 협상이 지니고 있는 무한대의 숨은 가치까지 찾아내는 협상(협상 3.0, 가치협상)으로 그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기업 간 협상이든 가정 내 협상이든, 대개의 협상은 한 번으로 끝나는 이벤트가 아니다. 꾸준히 이어갈 인연들과의 협상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찰나의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창출되는 다양한 가치들'이다. 연봉 3천 달러를 요구하는, 세상물정에 어두운 아인슈타인에게 1만 달러를 줌으로써 그를 평생교수로 기용할 수 있었던 프린스턴 대학의 플렉스너 원장이나, 남북전쟁에서 승리하고도 패장을 응징하기보다는 형제로 대우해줌으로써 국가적 통합의 밑거름을 마련한 북군의 그랜트 장군 등의 경우는 가치 협상의 좋은 본보기가 된다.

이 책에는 이러한 숨은 가치들을 이끌어내기 위한 다양한 협상 전략들도 소개된다. '관점 전환', '히든 메이커 찾기', 'ADD 기법', '앵커링 효과', '배트나' 등은 성공적으로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도구들이지만, 우리가 일상 속에서 누군가를 설득해야 할 때 간편하게 써먹을 수 있는 대화술로도 얼마든지 활용이 가능하다.

 

 

아인슈타인은 왜 프린스턴대학을 못 떠났을까?

 

1930년대 초 이야기다. 미국의 한 연구기관 원장이 유럽에서 활동 중인 학자를 만나 스카우트 조건을 논의했다. 먼저 학자는 연봉 3000달러를 요구했고 고민하던 원장은 1만달러를 제시한다. 3000달러를 요구한 학자는 아인슈타인, 1만달러를 제시하며 천재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는 미국 프린스턴대 고등연구소 플렉스너 원장이다.

 

플렉스너 원장은 당시로선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아인슈타인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했다.그는 '1년간 몇천 달러 아끼느니 이 천재의 마음을 얻는 것이 더 낫다'로 판단했던 것이다. 정말이지 최고의 협상이었다. 아인슈타인은 프린스턴대에서 기념비적인 연구성과를 만들어냈다. 이후 하버드, 예일 등 미국 유수의 대학이 1만달러와는 비교할 수 없는 파격적인 조건을 다시 아인슈타인에게 제시했지만 아인슈타인은 평생 프린스턴대를 위해 봉직했다.

 

성공한 협상이란 무엇일까? 자신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얻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싶다. 하지만 아니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치관)을 충족시키는 협상인 것이다. 플렉스너는 '천재 과학자의 충성심'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그가 소망햇던 '세계 최고의 싱크탱크'라는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처럼 협상의 질은 가치에 집중할 때 높아진다. '이기는 협상'보다는 '성공한 협상'이야말로 바로 고수高手의 협상법이다.

 

 

인생의 8할은 협상이다

 

한 여학생이 공항에 늦게 도착했다. 이 비행기를 반드시 타야 하는데 게이트는 닫혀 있다. 아무리 직원에게 부탁해도 안 된다는 답변이다. 마침 이륙을 준비하는 기장과 창문을 통해 눈이 마주친다. 이 학생은 간절한 눈길로 기장을 바라보며 들고 있던 가방을 툭 떨어뜨린다. 그리고는 간절한 눈빛으로 기장을 계속 바라본다. 그러자 기장이 반응을 보인다.

 

"잠깐 스톱! 저 여성분 태우고 가자"

 

저자는 협상을 이렇게 정의했다. '상대의 행동, 인식, 감정을 변화시켜 가치를 키우는 의사소통의 과정'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최근 일주일간 협상 안 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당연히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 협상한다. 집에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숙명의 라이벌, 배우자와 협상한다.

 

회사에서는 상사, 부하, 동료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매일 협상한다. 오해하지 말자. 협상이란 어디 가서 물건 싸게 사고, 비싸게 파는 그런 게 아니다. '더 큰 가치를 키우기 위한 의사소통의 과정'이다. 그래서 <협상의 법칙>의 저자 허브 코헨은 말했다. "인생의 8할은 협상"이라고 말이다.

 

 

관점 전환이 되느냐?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건설회사 직원들이 하소연을 한다. 이들은 대부분 40대 초반으로 팔순이 넘은 어르신들과 도통 대화가 안 된다는 것이다. 재개발 동의서에 서명만 하면 2년 후에 최소 1억 5천만 원을 벌수 있음에도 결코 서명을 하지 않고 버터기 때문이란다. 심지어 인근 아파트 시세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도 먹힐지를 않아 발만 동동거린단다. 왜 그럴까?

 

심리학엔 '관점 획득'이란 용어가 있다. 관점 전환이 되느냐의 여부인 셈이다. 협상을 잘하는 사람은 이를 능숙하게 한다. 유명한 '샐리-앤 실험'을 살펴보자. 두 소녀가 있는데, 샐리와 앤이 바로 그들이다. 인형을 갖고 놀다가 샐리가 이를 유모차에 넣어놓고 방을 나간다. 혼자 있던 앤은 잠시 후 유모차에서 인형을 꺼내 놀다가 옆에 있던 나무 상장 안에 놓는다. 나중에 샐리가 다시 방에 들어와 인형을 찾고자 어디를 먼저 볼까?

 

초등학생 이상이라면 유모차라고 답변한다. 하지만 만 4세 이하의 아이에게 물으면 나무 상자라고 답변한다. 아직도 상대의 관점으로 보는 능력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만 4세 이후에 생긴 관심 전환 능력이 나이를 먹을 수록 퇴행한다는 사실이다.

 

재개발 사업 상담 얘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아무리 설득을 하면서 동의서에 서명해 달라고 요청해도 어르신들은 이렇게 답변한다. "나도 안다. 돈 되는 거. 하지만 이 집, 우리 돌아간 영감하고 40년 넘게 산 집인데. 집안 곳곳에 영감의 손때가 묻어 있다", "늘그막에 갑자기 큰 돈 생기면 자식들 싸움이나 나지, 뭐 좋을 게 있다고" 등등

 

협상 테이블에 앉은 노인들은 건설회사 직원들의 얘기엔 관심이 없다. 협상이란 어르신의 관점에서 어르신들이 관심 있어 하는 얘기를 하는 자리임을 명심해야 한다. '나의 얘기'는 금물이다. 상대의 관점에서 상대의 니즈를 집중적으로 공략할 때 본인이 얻고자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히든 메이커를 찾아라

 

볼품 없는 총각이 최고의 신부를 맞이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결혼식장에 가보니 남자가 정말 형편없다. 그런데 여자는 정말 완벽하다. 아마도 남자는 예비 장모의 마음을 얻었을 가능성이 크다. 여성이 결혼을 결심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히든 메이커는 바로 엄마이기 때문이다. 

 

협상학에선 이처럼 상대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제3자를 히든 메이커라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의 말을 따르고 싶고, 또한 그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고 싶다는 욕구를 가졌다. 혹시 까다로운 상대를 만나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상대만 바라보지 마라. 그 자리에서 백날 발을 동동 굴러봐야 소용없다. 상대방의 히든 메이커를 찾아라. 그리고 그를 움직여라. 그리하면 협상에 성공하리라. 

 

 

창의적 대안, 더하기ADD

 

뛰어난 협상가는 서로의 요구가 다를 때 욕구에 집중한다. 그래서 서로 다른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창의적 대안을 만든다. 그런데 이런 창의적 대안을 잘 만드는 건 누굴까? "협상 경험이 많아야 한다"고 혹자는 말하지만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머리가 좋아야 할까? 그것도 아니다. 잘 만들기 위해선 패턴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창의적 대안을 만드는 데는 정해진 방법론이 있다.

협상이 서툰 사람들은 협상 테이블에 여러 가지 안건(아젠다)이 올라오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고수들은 반대로 행동한다. 최대한 많은 안건을 테이블에 올리고, 이를 통해 창의적 대안을 만들어낸다. 가장 쉬운 예가 이것이다. 시장에서 5만 원짜리 물건을 사는데 5,000원을 깎고 싶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렇게 해야 한다. "내가 이 동네 40년 살았어요. 내 친구, 친척들도 다 이 동네 살죠. 손님 소개해줄게요"라면서 '소개'라는 아젠다를 덧붙이는 것이다. 또는 "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결제하겠다"라고 결제 방법이라는 안건을 덧붙여본다. 이처럼 유능한 협상가는 꺼내놓을 수 있는 모든 안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협상의 판을 키워간다.

 

 

배트나

 

협상학에 입문하면 반드시 배우는 가장 기초적인 개념이 바로 배트나다. 이는 협상이 결렬됐을 때 자신이 갖고 있는 차선책 '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을 의미한다. 예컨대 부동산 중개업자라면 매매할 주택을 보여주면서 "오늘따라 이 집 보는 분이 많네요. 오전에만 두 분이 보고 가셨어요"라고 한 마디 슬쩍 던져보라. 고객의 마음은 벌써 초조해질 것이다.

 

진짜 선수들은 더 치밀하게 각본을 준비한다. 고객이 집 구석 구석을 둘러보는데, 중개업자의 벨이 요란하게 울리고 "아, 오전에 보고 가신 분이군요? 집이 마음에 드신다구요? 그런데 죄송하지만 가격 조정은 불가합니다. 불과 500만 원 차이인데요. 사모님과 좀 더 상의하시고 결정해서 연락주세요"라는 소리가 흘러나가면 이 고객은 가계약금 300만 원이라고 입금하겠다고 할 것이다.

 

고객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말고도 다른 수요자가 많이 대기하고 있음을 아는 순간 그 당사자는 웬만한 건 양보하게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배트나의 힘이다. 결국 협상이란 '배트나가 있느냐 없느냐'의 게임이라고 말한다. 협상학에선 배트나가 있는 쪽을 '갑', 없는 쪽을 '을'이라 부른다.

 

 

협상, 합목적성에 치중하라

 

뛰어난 협상가는 '자아가 없는 사람'이다. 협상이란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의사소통의 결정판이다. 이를 얻고자 하는 목적에 집중하는 사람은 유능한 협상가이다. 반면에 무능할수록 자존감이나 감상적인 감정 등의 비본질적인 이슈들 때문에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얻지 못한다.

 

결혼기념일에 멋진 외식을 하려고 아내를 불러내는 남편이 한식당과 중식당을 두고서 옥신각신 끝에 마지못해 아내가 강하게 요청하는 중식당에 갔더니 서비스와 맛 모두 최악이었다. 이때 남편은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 말을 들었다면 이런 재앙을 피했을 것"이라고 대개는 아내의 실수를 지적한다. 이는 식사하는 목적을 망각한 발언이다.

 

자기계발, 협상의신, 최철규, 한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