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

소크라테스도 다른 아테네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갑옷과 방패 등으로 무장한 중장重裝보병으로 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 포티다이아 공성전攻城戰에 참전했다. 3년 동안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면서 전염병이 돌아 1천여 명의 아테네 군사들이 죽었고, 많은 시신들이 매장되지 않은 채 방치되면서 들짐승들이 이를 뜯어 먹었다. 더구나 포위된 포티다이아 시민들은 식량이 떨어지자, 서로를 잡아먹었다. 이를 목격한 소크라테스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바로 이 시기에 '아레테(탁월함)'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재해석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플라톤의 <향연>에 등장하는 알키비아데스의 증언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포티다이아 평원에서 온종일 서서 깊은 사색에 빠졌다고 한다. 그동안 그리스에서 탁월함이란 남성다움, 신체적 탁월함, 혹은 군사적 용맹이라고 여겼지만 소크라테스는 몸짱이나 얼짱이 아니라 절제와 헌신, 정의의 실천, 지혜의 추구가 진정한 탁월함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켄타우로스를 죽이는 테세우스> 아테네에선 테세우스처럼 몸짱이 되려는 열풍이 불었다

전쟁이 끝난 후 고향 아테네로 돌아온 소크라테스는 비로소 새로운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소피스트들의 장광설이 아니라, 소위 산파술에 근거한 질문을 했다. 이는 해답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의문을 갖게 한 것이다. 상대방이 탁월함의 실체에 스스로 도달할 때까지 질문을 계속했다. 그는 이와같은 지적을 자신의 사명이라 보았다.

소크라테스가 이를 설파하던 시절에 갑자기 3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벌어졌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싸움이었는데, 엉뚱하게도 아테네는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를 공격했다. 이를 주장했던 사람이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알키비아데스였다. 결과적으로 아테네는 시칠리아 원정에서 참패하게 되고, 스파르타의 지지를 받던 30인의 참주가 아테네를 통치하면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나게 된다.

정치적 혼란기에 소크라테스는 결국 희생양이 되었다. 패전의 원인이 되었던 시칠리아 원정을 부추긴 총사령관 알키비아데스의 스승이 소크라테스였기 때문에 아테네 시민들은 화살을 엉뚱한 데로 돌렸다. 고소당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동굴 감옥에 갇히고 여기에서 최후를 맞게 된다.

제자였던 플라톤은 이 죽음에 큰 충격을 받는다. 그는 스승을 죽인 아테네를 떠나 이집트, 시칠리아, 이탈리아 남부, 크레타 섬 등지로 떠돌며 넓은 세상을 공부한 후에 귀국했지만 아테네로 돌아오길 거부하고 아테네 외곽에 정착해 아카데미아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세 번째 아포리아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에 매진한다. 바로 <국가>라는 책을 집필했다. 아포리아에 빠진 아테네를 구하기 위한 책이었다.

이 책은 이상적인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의 구성원들 각자가 주어진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치자는 지혜를 추구해야 하는데 일반적인 그런 지식이 아니라 나라에 도움이 되는 전문 지식을 말한다. 수호자는 소신을 보존하며 원칙을 지킬 줄 아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시민은 절제해야 한다. 절제한다는 것은 질서를 지키는 것이며, 이는 국가나 개인의 차원에서 더 나은 부분이 더 못한 부분을 통치해야 한다는 것을 합의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우수한 사람들이 통치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지배를 받으라고 가르쳤다. 세 집단이 각각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 '정의'이므로 상호 참견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같은 엘리트주의적 사고에 대해 철학자 칼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플라톤을 신랄하게 공격했다.

이에 대해 김상근 교수는 칼 포퍼가 <국가>의 앞부분까지만 읽고, 뒷부분은 자세히 안 읽은 것 같다면서 플라톤은 책의 후반부에 아포리아를 극복하고 이상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는 것이다. 이상국가를 만들기 위해선 통치자와 수호자 같은 지도자의 역할과 책임이 크다. 

그들의 리더십은 반드시 철저한 교육을 받은 다음에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교육을 받지 않고, 그래서 무자격자가 지도자가 된다면, 그 권력은 절대로 신성불가침이 아니다. 결국 계급 간의 상호 참견 금지가 핵심이 아니라, 지도자가 적절한 교육을 받고 참된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할 때 그 권력이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아테네의 아포리아를 철학적으로 접근한다. 동굴 속에 갇힌 노예처럼 쇠사슬에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아테네의 시민들에게 "스스로 쇠사슬을 끊고 뒤를 돌아보라. 횃불 앞에서 일렁거리고 있는 환영의 실체를 봐라. 거기서 멈추지 말고 어두운 동굴 밖으로 나가서 태양을 보라"고 했다.

지도자를 위한 교육은 '방향의 전환'을 뜻한다.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환영의 세계를 거부하고 스스로 쇠사슬을 끊은 다음, 몸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 그래서 동굴 밖으로 나가서 태양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진짜 빛, 본질, 이데아를 보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짜 교육이라는 의미다.

여기서 플라톤의 반전이 등장한다. 만약 우리가 동굴 밖으로 나가서 태양을 마주한다면, 이는 방향을 바꾼 것이다. 참된 교육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여기까진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성찰이다. 그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인문학의 두 번째 단계다.

플라톤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성찰을 한 다음에는, 다시 방향을 돌려 동굴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동굴 속에서 쇠사슬에 묶여 노예처럼 살고 있는 수감자들의 고통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아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졌다면 이젠 어둡고 추운 동굴 속으로 내려가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가슴 아파하고, 가능하면 그들이 쇠사슬을 끊고 어둠의 동굴로부터 탈출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인문학의 두 번째 과제이자,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우리들이 나아가야할 길이다.

"가만히 있으라"

세월호 침몰시 방송을 통해서 들렸던 소리였다. 앞날이 구만리 같은 어린 학생들을 구해야 할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런 방송하면서 별다른 조치를 하지 못하다가 배가 완전히 기울자 자신들만 탈출했다. 반면 어린 아이들은 수호자격인 어른들의 말을 믿고 순진하게 기다리다가 차거운 바다에 수장되고 말았다. 마치 대한민국 호가 침몰하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