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심리학에서 제일 잘나가던 이론은 5대 성격 요인 이론이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의 수많은 성격 특성은 결국 다섯 개의 큰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이는 외향성, 원만성, 성실성, 신경증, 개방성 등 다섯 가지 요인이다. 이 요인을 수용하는 이론을 심리학에선 '5대 성격 모델'이라고 부른다.

 

1930년대부터 성격 특성에 대한 요인분석적 연구가 시작되어 1960년대 들어 일부 연구자는 연구 결과물에서 어떤 패턴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피조사자의 집단에서 측정된 어떤 특성이 다른 피조사 집단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1970~80년대에 오레곤대학의 루이스 골드버그도 성격 특성을 체계적으로 연구했는데, 놀랍게도 1960년대에 관찰된 다섯 가지 요인과 매우 흡사한 다섯 가지 요인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는 이를 big five라고 명명했다.

 

이 책의 저자 이기범과 마이클 애쉬튼은 1997년 성균관대학교 학생 400명을 대상으로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성격 특성의 어휘 약 400개에 대해 설문을 시행했다. 이는 한국어 성격 형용사 어휘들도 서구 언어에서 발견되었던 5대 성격과 비슷한 요인으로 분류될 수 있는가를 파악할 목적이었다.

 

결과는 비슷했지만 유독 '진실한', '솔직한', '정직한', '숨김없는', '양심적인' 같은 형용사와 그리고 이에 반대되는 '교활한', '계산적인', '위선적인', '젠체하는', '자만하는', '아부하는', '가식적인' 등과 같은 여섯 번째 요인이 나타났다. 이는 바로 '정직과 겸손'을 나타내는 요인이었다. 한편, 헝가리어 연구에서도 이와 비슷한 요인이 발견되었는데 헝가리 연구자들은 이를 '도덕성' 요인이라고 불렀다.

 

2년 후 이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해 한번 더 연구한 결과, 마찬가지로 이 여섯 번째 요인이 관찰되었기에 이를 <유럽 성격 학술지>에 보고했다. 이후 영어 형용사 어휘를 기반으로 한 연구에서도 기본적으로 이와 동일한 여섯 번째 요인이 나타나자 '성격구조의 hexaco 모델' 이라고 명명했다.

 

 

 

 

      

먼저 정직성을 살펴보자. 정직성이 높은 사람은 타인을 이용하거니 착취하지 않는다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 이들은 남을 속이거나 조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빼앗는 걸 아주 싫어한다. 또한 남보다 더 많이 차지하려는 탐욕이 적어서 뭔가를 이루기 위해 타인을 이용할 동기가 애초에 크지않은 사람들이다.

 

정직성이 높은 사람은 범죄행위에 가담하지 않으며, 상대를 이용해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공정하게 나눠 가지려는 습성이 있다. 이들은 개인의 이득보다는 타인과 더불어 살기 위해 지켜야 할 윤리를 중시한다. 그리고 배우자에게 충실하며, 힘과 권력을 이용해 취약한 대상에게 성性을 착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정직성이 높으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 가장 중요한 이점은 타인들을 공정하게 취급함으로써 미래에 그들에게서 협력과 호의를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남을 속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의 신뢰와 협동을 얻을 수 있어서 이는 미래의 큰 자산인 신뢰라는 통장을 갖는 셈이다. 반면에 높은 정직성은 힐난이라는 대가가 뒤따를 수도 있다.

 

'양심이 밥 먹여주냐?'

 

 

정직성은 어떤 사람을 친구나 연인으로서 교제할 것인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이성에게 접근하는 목적과 방식, 돈과 권력에 대한 태도, 정치적 성향을 결정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직성의 양상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정직성이 낮은 사람의 유형을 알아보자.

 

'낮은 정직성 - 낮은 정서성' 유형

 

정직성과 정서성 모두 낮은 사람들은 탐욕이 넘치면서 무서울 게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언제나 돈과 권력에 굶주려 있고, 부와 권력을 향한 욕구 때문에 물리적인 위험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들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도 보수가 아주 높으면 그 일을 선택한다. 예를 들어 전쟁 지역에서 싸울 용병을 엄청난 보수로 모집한다면 당연히 여기에 귀가 솔깃할 사람들이다.

 

그리고 일상에서 용기를 자랑하려고 경쟁을 일삼는 행동도 서슴치 않는다. 자장면 곱배기 빨리 먹기나 폭탄주 많이 마시기 대결이 이런 예다. 이런 결투는 언제나 남자들이며 대개는 젊은이들이다. 승자독식 사회에서 살아가는 경우 이런 모험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부와 지위를 추구함에 있어서 자신의 위험을 감수할 뿐 아니라 타인이 위험에 처하는 것에 대해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심하게 표현하자면 이들은 차갑고 매정하다. 타인의 감정에 대한 동정심은 조금도 없다. 남의 고통에도 아파하지 않고, 도움이 절실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픈 마음도 별로 없다.

 

'낮은 정직성 - 높은 정서성' 유형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을 이용 또는 과장해서 자신이 원래 받아야 할 몫보다 훨씬 더 많이 챙기려 한다. 시간이 정해진 시험임에도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시간을 벌거나, 숙제 제출을 늦추려고 꾀병을 부리거나, 매사에 잡다한 변명거리를 늘어놓는 사람들이다. 교활하게 울고 보채는 스타일이다.

 

노인을 상대로 애정 사기극,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은 여자들이 부유한 노인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친구가 되고, 급기야 그들과 사랑에 빠진다. 이 여인들이 풀어놓는 이야기 보따리는 대개 전형적인 포맷이다. 자신은 불행한 과거를 딛고 일어선 미혼모이고, 꽤 빚이 많은데 그 이유는 만성질병을 앓고 있는 아이 때문이다. 슬픈 표정으로 얘기하면서 살갑게 노인들을 대한다. 순진하고 외로운 노인들은 쉽게 이 여인들의 사기 행각에 넘어간다. 노인들의 통장 잔고가 바닥날 때까지 빨대를 꽂는다.

 

'낮은 정직성 - 높은 외향성' 유형

 

정직성이 낮으면서 외향적인 사람들은 나르시시스트일 확률이 높다. 이들은 자신의 위대함에 도취돼 있고, 남들도 자신의 우월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그에 맞게 대우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을 지배하려고 안달이 나는 성격이 형성된다. 마치 자신이 하늘로부터 그런 권리를 부여받은 것처럼 당연시하기도 한다. 이들의 목표는 남들 앞에 군림하는 왕초가 되는 것이다.

 

'낮은 정직성 - 낮은 외향성' 유형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 엘리자베스와 다시의 경우를 살펴 보자. 엘리자베스는 처음에 잘 생기고 집안 좋은 남자인 다시의 오만함을 보고 청혼을 거절했다가, 후에 다시의 신실하고 선한 면을 보고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그는 원만성에서 낮은 수준을 보일 뿐이지 정직-겸손성에서는 높은 수준을 보인다. 그가 오만하게 보였던 것은 정직하기는 하지만 원만하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낮은 정직성 - 낮은 성실성' 유형

 

이런 유형은 회사에서 절대로 채용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모든 고용주는 사원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로 '믿을 수 있는 사람' 또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회사에 지각을 하거나 하루 정도 땡땡이를 쳐도 별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정직성과 성실성이 낮은 성격은 범죄심리학에서 말하는 '사이코패스'의 특성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사이코패스의 특징인 조종적익 기만적인 성격은 낮은 정직성, 충동적 성격은 낮은 성실성, 비정한 성격은 낮은 정서성과 관련된다. 범죄를 일삼는 행동은 마치 이 세 가지의 성격이 합동 공연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도박 중독 같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큰 노력 없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은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작용한다. 더구나 이들은 언제 도박을 멈추어야 할지 모른다. 또한 이들은 약물 남용에도 남보다 취약성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낮은 정직성 - 높은 성실성' 유형

 

이런 유형의 사람은 사리사욕을 최우선시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중장기적인 이익 실현을 위해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규칙과 질서를 중시하기에 범법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다. 즉 질서 있는 생활을 유지하면서 부와 지위를 획득한다.

 

또한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일도 열심이고 목표도 야심차게 세운다. 다만 이들은 자신의 야망 성취가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점엔 별 관심이 없다. 조직의 입장에서 보면 매일 일찍 나와 늦게까지 일하므로 쓸모있는 인재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출세와 이익 관점에서 그렇게 행동할 뿐이라는 것이다. 자기밖에 모르는 야심가가 되기 쉽다.

 

'낮은 정직성 - 낮은 개방성'의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돈과 지위 말고는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다. 이런 사람들은 부자가 되면 자신의 부를 자랑하기 위해 봐주기 불편할 정도로 유치한 일들을 벌인다. 호화 주택을 짓기로 결정하면 베어낸 나무 때문에 동네 자연환경이 얼마나 훼손되는지에 관해선 신경 쓰지 않는다. 천박한 욕심쟁이들이다.

 

'낮은 정직성 - 높은 개방성'의 사람들은 자랑하고 뽐내고 싶어 하지만, 이들의 과시 행태에는 예술적이거나 지적인 스타일이 약간 가미된다. 이들은 대화시 아주 어려운 말과 단어를 섞어서 사용하길 좋아한다. 이렇게 사용하는 말이나 문장의 뜻이 제대로 통하는 것인지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속물이면서 고상한 체하는 족속이다.

 

 

정직성이 높은 사람들은 위계 및 계층이 두드러진 사회를 싫어하는 편이다. 정직성이 높은 사람이 사회 지배 경향성이 낮은 까닭은 정직성이라는 성격 요인이 함의한 내용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직성이 높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우월한 지위, 부, 권력을 가지고 싶은 욕망이 정직성이 낮은 사람들에 비해서 크지 않다. 그러므로 '다른 집단을 딛고 출세를 한다'든가 '특정 계층의 사람들은 그들에게 맞는 자리에만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좋아할 리 없다.

 

어떻게 하면 상대가 정직한지를 알아챌 수 있을까? 책은 정직성의 단서가 되는 요소들로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즉 법과 제도를 속여 이득을 보는 경우, 수단적 아부, 도박과 부동산 투기, 문란한 성생활, 사치 및 과소비, 법 위에 있다는 사고방식, 다른 집단에 대한 경멸 등이다.

 

저자는 정직한 사람과 부정직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이익과 그들의 이익이 서로 양립할 수 있게 만드는 환경이 중요하다"며 "정직성이 낮은 사람을 피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직성이 높은 사람을 찾아내 더욱 의식적으로 교류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현직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문제로 법무부와 검찰, 그리고 정치계까지 시끌벅적하다. 민족의 고유 명절인 중추절을 앞두고 일어난 일이라 파급효과는 더 커질 듯하다. 채 총장의 문제 또한 이 책의 주제인 h팩터 즉 '정직 -겸손성'과 관련되어 있다. 스스로 부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연휴 기간에 한 번 읽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정직성을 이상향으로 삼아 부정직함에 대한 유혹을 다스리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 맺는말 중에서          

 

심리학, H팩터의심리학, 이기범, 마이클애쉬튼, 문예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