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달과 무관하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운명의 존재를 믿는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뿌리 깊은 역학의 힘이 작용하고 있어서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운명예정론'이 더 큰 힘을 얻고 있다. 우리가 운명이라는 존재에 내 삶을 위탁하는 순간 과학은 발을 빼고 반면 역술가, 관상가, 작명가, 그리고 무당 등이 무대 위로 등장한다.

 

우주인이 달을 다녀 오는 이런 시대에 사람들이 여전히 역술가와 무당을 찾는 이유는 뭘까. 이는 다분히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운명 그 자체를 알고 싶어하는 욕망 때문일 것이다. 믿든 안 믿든 간에 우리 국민들이 늘 접하고 살아가는 사주, 관상, 궁합 등에 얽힌 여러 문제점을 논리적으로 풀자는 것이 이 책의 의도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달려있고, 부귀는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

 

이는 <논어> '안연 편'에 나오는 자하의 말이다. 공자의 제자인 사마우가 형을 잘못 둔 데 대해 탄식하자 자하가 일찌기 공자로부터 들은 말을 인용해 이렇게 위로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운명의 존재를 믿어왔다. 과학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도 이 믿음은 유효한 것이다.

 

 

 

 

<이영돈 PD의 운명, 논리로 풀다>는 종합편성 TV 채널A 개국과 함께 전파를 타 시청자들의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운명이나 전생이 논리로 풀릴 문제인가 싶지만, 사람들이 역술인이나 무속인의 말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심리학적으로 접근하고, 긍정적인 예언보다 부정적인 예언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원인을 뇌과학에 근거해 설명하고 있다.

 

 

운명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혹은 그것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다. 불교에서는 운명을 '카르마의 결과'라고 정의한다. 카르마란 업業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로 어떤 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일종의 짐을 말한다.

 

스스로 쌓은 업의 결과물이든, 아니든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이를 미리 안다 한들 인간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테베의 라이오스 왕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피하기 위해 자식까지 버렸지만 결국 그 운명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주四柱의 창시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학설이 있다. 오늘날의 형태를 갖춘 것은 중국 당나라 때다. 사주명리학이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전파된 시기는 조선 태종 원년인 1401년이다. 신의왕후 한씨가 아들 태종의 미래에 대해 점치는 사람 문성윤에게 묻자, '이 사주는 귀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으니 경솔하게 점쟁이에게 물어보지 마소서'라고 답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다.

 

육십갑자의 원리로 사주팔자를 뽑으면 약 51만 8,400개의 경우의 수가 나온다. 이 말은 우리나라 인구를 5,000만 명이라고 할 때 자신과 동일한 사주를 가진 사람이 전국에 100여 명 있다는 뜻이다. 성별이 같으면서 똑같은 사주를 가질 확률은 절반인 50여 명이란 계산이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세 사람이 있다. 누구는 노숙자로, 누구는 일용직 노동자로, 누구는 대학교수로 살아가고 있다. 동일한 사주를 갖고 출생했음에도 각자의 삶이 다른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역술가들은 운명에는 사주 외에도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바넘 효과가 가장 잘 나타나는 경우 중 하나가 바로 역술원이다. 바넘은 19세기 말 곡예단에서 관객 중 한 사람을 무작위로 뽑아 그의 성격을 맞히는 쇼를 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특징을 자신만의 것으로 여기는 심리적인 경향을 '바넘 효과'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믿어주려는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에서 역술원을 찾는다. 다시 말해 이미 역술가의 말을 믿고 의지하겠다는 자세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역술가가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좋은 이야기를 할수록 바넘 효과는 더욱 커진다.

 

 

 

 

 

사주는 타고난 그릇이기 때문에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게 역술가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측된 불행을 피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마다 않는다. 마치 라이오스 왕처럼. 이에 역술가들이 권하는 것은 부적이나 개명이다. 이는 명확한 모순이다. 유명 작명가가 개명한 이름을 다른 작명가는 한결같이 좋지 않은 이름이라고 말한다. 개명은 단지 그들만의 돈벌이 수단이기 때문이다.

 

좋은 사주를 받겠다고 날과 시간을 정해 제왕절개 수술을 감행한다. 그렇다면 좋은 사주를 받고 태어난 아이는 과연 사주대로 살고 있을까. 수소문 끝에 만난 아들은 당초 판검사가 될 운명이었지만 이와 무관한 일을 하고 있었고 현재 군 복무 중이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가짜 역술가들은 우리의 약하고 불안한 마음을 먹고 산다는 점이다.

 

 

결혼 정보업체 '비에나래'에서 전국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결혼 상대에 대한 부모의 반대 이유 중 절대 납득이 안 되는 사항'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남자의 경우 1위는 '궁합'(35%)이 차지했다. 그런데, '배우자 결정 시 궁합을 고려하겠냐'는 질문에 '어느 정도 고려하겠다'고 답한 여성들이 많았다(52.7%).

 

중국 한漢나라 때의 일이다. 당시 강대국인 흉노의 왕이 한나라 왕에게 공주를 아내로 달라고 협박했다. 이에 궁리한 묘책이 팔괘의 방위를 살펴 행불행을 예측하는 '구궁궁합법九宮宮合法'이었다. 궁합을 보니 공주가 결혼하면 과부가 될 운명이라고 전하자, 흉노의 왕은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았다. 이처럼 당초의 궁합은 청혼을 거절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궁합은 겉궁합과 속궁합으로 나눠진다. 집안, 형제복, 재물복, 사회활동 등을 보는 것이 겉궁합으로 사주의 생년을 기준으로 오행의 기운을 살펴보거나 띠를 맞추어 합合이 들었는지, 살殺이 끼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좀 더 내밀한 부분을 알기 위해 속궁합을 살핀다. 흔히 남녀의 성관계로 이해하는데 이는 기질, 성향, 성격까지 포함한다.

 

 

가짜 역술가들에게는 그들만의 매뉴얼이 있다. 정확하지도 않은 두루뭉술한 말로 넘겨짚고 비슷한 유형의 말들을 한다.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은 고집이 세다, 건강이 안 좋다, 돈 문제가 생긴다, 자식운이 안 좋다, 결혼은 못 할 것 같다 등 다섯 가지 유형이다.

 

 

'상相이 아무리 좋아도 마음을 잘 쓰는 것만 같지 못하다'    

 

 

사주가 정말 운명을 결정짓는지 알아보기 위해 사주가 같은 사람들의 삶을 비교하고, 역술인들이 비명횡사한 이의 사주에서 그런 비운을 읽어낼 수 있는지 살펴본 내용도 흥미롭다.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부부의 궁합은 어땠을지, 관상으로 트랜스젠더의 과거를 맞힐 수 있는지, 개명이나 성형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는지, 작두 타기는 정말 접신接神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인지 등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전에는 음식을 필요한 만큼만 사서 썩기 전에 나눠 먹었는데, 냉장고가 생긴 뒤로는 나중에 먹을 것까지 미리 사다가 쌓아둔다. 음식물 썩는 것을 막고자 냉장고를 만들어놨더니 오히려 냉장고 때문에 더 많은 음식물이 버려져 나가는 상황을 꼬집은 얘기다.

 

불교에서도 모든 고통의 원인을 인간의 탐욕심에서 찾는다. 어느 정도의 욕심은 발전을 이끌어내지만 제 그릇 크기가 감당 못할 과욕을 부리면 오히려 불행해진다. 이를 알면서도 운명을 미리 알고 싶고 바꿔보고 싶은 게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속성아닐까.

 

역학, 운명논리로풀다, 이영돈, 동아일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