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만 18세의 나이로 최연소 입단했던 발레리나 강수진은 굉장히 소심하고 수줍은 그리고 나약한 소녀였다. 하지만 발레를 시작하고 시련을 겪을 때마다, 이 문장을 가슴 속으로 외치며 자신을 단련시켰다.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준 문장이다.

 

강수진은 원래 한국무용을 시작했으나 중학생 때 엄마의 권유로 발레리나의 길을 걷게 되었다. 좀처럼 재미를 느끼지 못하던 그녀는 채찍보다는 당근으로 격려하던 캐서린 베스트 선생을 만나면서 발레에 푹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녀의 인생에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1981년 3월 15일, 선화예술학교는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 교장인 마리카 베소브라소바 선생을 한국으로 초청했다. 이때 베소브라소바 선생은 강수진을 발견하고 유학을 권유했다. 망설이는 수진의 엄마에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성의 소질이 있다며 자신에게 맡겨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15살 나이에 홀로 유학길에 올랐다.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는 1975년 영화배우로 더 유명한 '비운의 왕비' 그레이스 켈리가 세웠다. 당시 세계 40여 나라에서 몰려든 150여 명의 학생이 수업을 받고 있었다. 정식 커리큘럼은 준비과정 4년에 고급과정 4년이었다. 8년 내내 하루의 일과가 수업과 연습 시간으로 톱니바퀴처럼 돌아갔다.

밤 9시가 되면 무조건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모든 아이들이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들 때 그녀는 조용히 이불 밖으로 나와 마치 도둑 고양이처럼 아담한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까다로운 규칙 때문에 연습도 맘대로 할 수 없어서 그녀가 생각해낸 것이 '도둑연습'이었다. 다들 잠든 사이에 몰래 달빛을 조명 삼아 수업시간에 배운 동작을 반복해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2년 동안 단 하루도 빼 먹지 않고 달밤에 연습을 계속했다.

 

 

 

 

 

 

 

어느 덧 그 수줍은 성격의 아이는 18살 소녀가 되었다. 한 남자가 그녀의 마음 속에 자라고 있었다. 그녀가 다니고 있는학교에 잠시 교환학생으로 온, 예쁘게 생긴 금발의 스웨덴 남자였다. <캔디>의 테리우스가 실제로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것만 같았다. 남자는 교환학생을 마치고 다시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작별인사를 하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나중에 보고 싶으면 한 번 놀러 와"

 

소녀는 이를 사랑의 고백이라고 착각했다. 가슴이 콩닥거리고 남자 생각에 공부가 도통 되지를 않았다. 멘토이자 보호자인 마리카 선생님에게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다. 이태리에 있는 친구에게 금방 다녀온다고. 오전 11시 모나코에서 출발한 기차는 다음날 오전 11시에 이태리에 도착했다. 기차로 꼬박 24시간 걸렸다.

 

수소문 끝에 남자의 집에 도착했다. 노크를 했다. 문을 열고 나온 이는 반나의 예쁜 여자아이였다. 뒤이어 남자가 나왔다. "어? 네가 여기가지 어쩐 일이야?" 소녀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바보처럼 고개를 숙인 채 눈물만 흘렸다. 그 길로 기차를 타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장장 50시간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한 상황에서도 그 무언가를 쫓아갈 수 있는, 누구도 못 말리는 '열정'이 그녀의 가슴 속에 살고 있었다.

 

1985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 최종 결승 때의 무대는 그녀에게 가장 잊혀지지 않는다. 매년 스위스 로잔에서 대회가 열리는데 그해는 처음으로 로잔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개최됐다. 1등 상을 받았고, 세계가 주목한 무대였기 때문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위기를 겪게 된다. 누군가는 위기를 통해 무너지고, 누군가는 더욱 강해진다. 어린 나이에 홀로 외국에 나가 살며 수많은 외국 아이들과 경쟁을 해야 했다. 의사소통이 안되어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발레를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강함을 선택했다. 문화를 알려면 그 나라 말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5개 국어를 구사한다.

 

서른세 살이 된 1999년 어느 날, 의사에게서 "계속 연습을 하면 평생 발레를 하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그해에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춘희>를 발레로 재해석한 '카멜리아 레이디'라는 작품으로 동양인 최초로 브누아 드 라 당스(춤의 영예)를 수상할 만큼 전성기였기에 충격은 더 컸다. 정강이뼈 스트레스성 골절이었다. 잠시 내려놓는다는 생각으로 힘겨운 재활 훈련에 들어갔고, 1년 후 열정의 날개를 달고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관절 마디마디가 불거지고 뼈와 근육만 드러난 그녀의 발은 2001년 성공시대라는 방송프로그램에서 공개되기도 했다. 관객을 감동시키는 춤을 단련하기 위해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오전 5시에 일어나 몸을 풀고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한다. 하루하루 작은 목표와 꿈을 이루면서 오늘날의 그녀가 만들어졌다. 특별한 열정은 보통의 삶을 특별한 삶으로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 본보기이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최연소로 입단하여 7년의 군무주자를 거쳐 수석 발레리나로 우뚝 선 그녀는 현역으로 활동하는 최고령 발레리나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모를 정도로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해 하루를 산다면, 시간의 신은 이에 감동해 누구에게라도 성공이라는 선물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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