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맡겨만 주십시오. 이 한 목숨 다 바쳐 해결하겠습니다"

주인공은 외고 입시에 실패하고 잠시 적을 두고 있는 선암여고 1학년 학생 안채율이다.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채율은 어느 날 괴한에게 손목이 물리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연쇄적으로 벌어진 '무는 남자' 사건을 해결한다며 네 명의 탐정단 소녀들이 나타나면서 흥미진진한 수사가 벌어진다.

다섯 편의 에피소드가 이어진 옴니버스식 소설이다. 작가 박하익은 추리 소설계의 기대주로 평가받는다. 챕터별로 각각의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여고생들의 손목을 문 뒤 입에 사탕을 물려 주고 사라지는 변태, 미성숙의 사랑이 빚은 임신과 낙태, 자신들이 괴롭힘을 당했다고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펼치는 학생들, 학교에서 몇 년 단위로 반복해서 벌어지는 연쇄 자살 등 정교한 구성이 돋보인다.

각각의 사건은 사교육, 낙태, 왕따, 자살 등 어른들이 만든 암울한 현실과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설은 17살 채율의 성장통을 다루면서 부모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식들의 성공을 이끌어내려는 현실의 위험성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셈이다. 이는 자식이 아닌 부모의 꿈을 실현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엄청난 완력이 그녀를 잡아 뒤로 끌고 갔다. 입이 틀어막혀 소리도 지를 수 없었다. 팔을 휘저었지만 잡히는 것은 방음벽에 줄지어 나 있는 능소화뿐. 당근색 꽃잎들이 손가락 사이에서 짓이겨졌다. 남자는 그녀의 오른 팔목에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화살 같은 통증이 의식을 꿰뚫고 지나갔다. '무는 남자다!'

요즘 한창 출몰한다던 변태였다. 바바리맨이 아니라 여고생들을 습격해서 손목을 문 다음 입안에 막대 사탕을 물려주고 사라지는 남자는 변장술이 뛰어나 아무도 진짜 얼굴을 보지 못했다. 등굣길에 채율은 이 남자의 습격을 받았다. 물린 상처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하지만 강간을 당한 것도 아니어서 경찰서에 신고하지 않았다.

"안채율! 너 무는 남자한테 당했냐?"

며칠 후, 채율은 자칭 '선암여고 미스터리 탐정단'이라는 괴짜 소녀들의 방문을 받고 반강제로 고문으로 위촉된다. 대장 윤미도, 행동대장 최성윤, 감식반 김하재, 비서실장 이예희 등 네 명은 방학이 끝나 개학하고서도 채율을 그냥 두지 않았다.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데 핸드폰이 울렸다. 미도가 보낸 메세지다. '집합! 새로운 피해자 출현. 무는 남자 맨얼굴을 봤다!'

"나는 인터넷으로 고용된 사람이라 아무 것도 몰라요. 애들 물기만 하면 돈을 준다는데 거절할 사람이 잇나요. 더구나 요즘 같은 불경기에...(중략) 처음 시작할 때는 착수금 조로 30만원 받았고요. 그후로는 한 명당 20만원씩. 애들 정보는 의뢰받을 때 한꺼번에 받았고요"

한편, 교장 선생은 시험지를 유출해서 학부모들에게 넘기고 있었다. 등사실 기사가 준 시험지를 교장은 과외 선생에게 넘기고 과외 선생은 부교재 형식으로 문제를 가공해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이 과정에서 학부모와 교장 사이엔 목돈이 오갔음이 분명하다. 이를 알게 된 하연준 선생이 과외가 있는 날마다 사람을 시켜 학생들을 물게 했던 것이다. 외부인이 시험지 유출을 알고 있음을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범죄를 사주한 남자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날은 비가 내렸다. 태풍은 위력적이었다. 우산을 펼 엄두도 낼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거셌다. 연두색 아식스 트레이닝복은 흠뻑 젖어 묵직해졌다. 이러다가 가방 속 노트와 책들까지 젖는 게 아닐까 싶던 순간. 누군가 이름을 불렀다. 뒤를 돌아보니 완전히 젖은 아줌마가 서 있었다.

"선암여고 박세유 학생 맞지? 2학년 3반"

"핸드폰. 핸드폰 좀 볼 수 있을까?"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여자는 나븐 사람 같지가 않았다. 그러나 여자는 핸드폰을 건네받고 돌변햇다. 매달려 있던 인형을 잡아 뜯었다. 번개에 비친 여자는 웃고 있었다. 안도하는 듯한 얼굴. 여자는 그대로 인형을 들고 빗길 속으로 사라졌다.

2학년 박세유 선배의 사건 의뢰다. 핸드폰 고리를 즉, 핑크색 토끼 봉제 인형을 찾아달라는 것이다. 토끼의 오른쪽 발바닥에 '레스레레베일레스'라는 알파벳이 박혀 있고, 인형의 배를 누르면 잔잔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는 특징을 가졌는데, 선물이라 구입처는 불명이었다. 이에 수사방향은 세 가지로 좁혀졌다.

의뢰인의 남자 친구와 만나 볼 것

경찰에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는지 문의할 것

'레스레레베일레스'의 의미를 알아낼 것

평소 학급에서 반장을 맡을 정도로 성실했던 세유 선배는 최근 떨어진 성적을 비관해 아파트 베란다에서 투신했다고 뉴스를 탔다. 119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목숨은 건진다. 세유 선배의 남자 친구 창현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환경 탓에 또래보다 조숙한 편이었다. 수수께끼의 문자 레스레레베일레스는 프랑스 어 '레 를루바유'(마레의 비올라 곡)였다.

"이 세상에는 살인죄보다 더 큰 죄가 있어, 그건 생명죄야. 생명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죄는 사람 죽인 것보다 벌이 무거워. 그 죄를 저지르고 나면 평생 어린 것을 등에 지고 살아가야 해.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외로워하면 안아 주고 좋은 교육ㄷ도 시켜 주어야 해. 어머니가 된다는 건 죄인이된다는 거야. 어린 네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짐이란다"

- 창현의 어머니가 세유를 병원에 데려가면서

인형을 낚아 채간 여인은 여성 병원 원장의 부인이었다. 원장은 창현의 아이를 임신한 세유의 낙태 수술을 했음이 밝혀진다. 창현의 어머니가 보호자를 사칭해 수술을 시켰던 것이다. 세유는 아이의 출생 예정일에 자살을 감행했던 것이다. 한편, 창현은 태아의 시체를 돌려달라며 원장의 아이를 납치했고, 세유의 핸드폰 인형을 가져오면 무사히 아이를 돌려주겠다고 협박했던 것이다.

고교 때부터 소설가를 꿈꿨던 작가 박하익은 대학 시절 학보사 활동을 했다. 대학 졸업후 사교육과 공교육 현장을 오가며 교사 생활을 한 경험이 학생들의 이야기로 표출된 것 같다. 특히, 사춘기를 보내는 소녀들에 관한 묘사는 마치 선암여고 안을 들여다보듯 생생하다.

소설, 선암여고탐정단, 박하익, 황금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