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이 늦는 날이면 아이들이 잠자기 전 꼭 전화를 한다. 언제 오느냐고 먼저 묻고는 아빠를 기다리겠다고 한다. 아빠랑 같이 잠들고 싶은 마음을 누가 모를까. 돌아오는 대답이 항상 먼저 자라는 것임을 알면서도 언제 오는지를 묻고 난 후 오늘 어디를 다녀왔다, 엄마가 무엇을 사주었다 등 재미났던 일과를 하나씩 이야기 한다. 그렇게 두 아이와 통화를 하고 나면 마음이 짠하다. 일찍 가면 같이 저녁도 먹고 잠도 잘 수 있는데, 매일 아이들만 챙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안타깝기만 하다.

아마도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일상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나면 주말에는 피곤함을 풀기 위해 늦게까지 잠을 자거나 경조사를 챙기고 틈을 내어 책을 읽는다. 같이 산책이라도 하고 놀러갈 수 있는 시간은 잠시뿐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즐겁단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몰라도 그 시간만큼은 아이들에게 황금같은 시간이다. 좀 더 커서도 그렇게 할까?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초등학교 3학년만 지나면 더 이상 부모와 같이 있으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적은데다 점점 자의식을 갖게 되면서 부모와 대화하는 시간도 피하게 되니 말만 부모자식 간이지 같이 있어도 서먹서먹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관계를 과감히 깨뜨리고자 여행을 함께 떠난 부자가 있다. 대한민국 보통 아버지 고형욱, 대한민국 보통 고등학생 고창빈이다. 아버지 고형욱은 여느 아버지들처럼 일에 바쁘게 매달리느라 아들에게 관심을 잘 기울이지 못했다. 아들 또한 아빠와 점점 멀어지다보니 무뚝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는지 아빠는 아들에게 솔깃한 제안을 한다. 그로서는 잘할 수 있고, 좋겠다 싶은 방법이 여행이었고, 그 행선지는 유럽이었다. <아빠의 자격>(사월의책, 2011)은 이러한 연유로 탄생한 책이다. 부자가 유럽을 여행하며 틈틈이 쓴 일기가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아들 고창빈은 처음 아빠의 제안에 깜짝 놀랐다. 별로 달갑지는 않았지만 수락했고, 함께 여행을 떠났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살면서도 그렇게 오랜 기간 함께 한 적이 없었기에 초기에는 다툼도 잦았다.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씩 서로의 사고방식을 알아가고 대화를 하면서 틈을 줄여 나갔다. 그렇게 둘은 유쾌한 여행을 하며 아버지를, 아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마도 다음 여행은 아들이 먼저 제안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아빠의 자격’이란 제목을 보며 특별한 자격이 필요할까 생각하기도 했으나 결국 중요한건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특별한 이벤트나 선물공세보다도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일 수 있지 않을까. 함께 여행을 떠난 이 부자처럼 그간의 관계가 소원했다면 이런 이벤트라도 만들어 계기를 만들 필요는 있지만, 정말 노력해야 할 바는 평소 조금씩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아직 아이들 나이가 어리다고 마냥 어리게 볼 것이 아니라 아빠의 자격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 제대로 노력해야겠다.

by 꽃다지, 2011.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