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려서부터 원치 않은 종교를 믿어야 했다. 주일을 꼬박 꼬박 챙겨 나가야 했고, 기도를 해야 했다. 어린 시절에는 그게 당연한 일상이었다. 교회 친구들을 만나는 게 즐거웠고, 지도교사와 함께 했던 봉사활동은 의미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원치 않을 때도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한다는 데 있었다. 가끔은 친구들과 노느라 교회에 빠지기도 했다. 집에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종교에 대한 회의가 크게 밀려왔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사람에 대한 실망이었다. 그 사람들은 독실한 신자들이었다. 말과 행동이 다른,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 위선적인 사람들이었다.

그 이후로 종교를 믿지 않는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어려서부터 주입받았던 창조론을 의심하게 되었고, 교회, 특히 개신교의 세습적이고 권력화된 모습에 치를 떨었다.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를 포함하여-는 성경의 말씀과 너무나도 동떨어졌다. 관념화되었고, 물신화되었다. 특히 개신교는 그 정도가 심하다. 너무도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굳이 여기서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리고 착실히 하느님을 믿고,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많은 기독교 신자들에 대한 예의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는 이야기할 수 있다.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종교적인 차원에서 존중할 수 있지만,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서 물신화되었을 때 종교로 인정할 수 없다. 면죄부를 파는 것에 반발하여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자들이 면죄부를 파는 아이러니를 이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신경질적으로 교회를 거부했던 20대 때와는 달리, 지금은 그래도 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려고 노력한다. 종교가 지닌 가치는 의미 있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신론에 관한 책도 읽고,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알아보려 한다. 특히 기독교의 종교적 의미는 내 나름의 결론을 반드시 내려 보고 싶다. <그리스도 철학자>(연암서가, 2009년)는 그런 의미에서 읽게 되었다. ‘복음서에 기록된 있는 그대로의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라.’는 설명 문구가 읽기 전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적어도 성경의 말씀만이라도 제대로 따르는 교회라면, 신자들이라면 지금처럼 타락해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 철학자>는 먼저, 예수와 그의 철학을 소개한다. 그리스도의 윤리의 바탕은 신의 사랑, 즉 ‘아가페(agape)’에 있다. 이를 토대로 평등, 개인의 자유, 여성의 해방, 사회 정의, 권력의 분리, 비폭력과 용서, 이웃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낯선 윤리들이 아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인간된 삶의 방향이다. 독실한 신자이신 이명박 장로께도 꼭 보여드려야 할 내용이다. 당신이 믿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가 이야기하고 있는 윤리가 바로 이것이라고 말이다. 이어 책은 기독교의 탄생과 역사를 소개한다. 나는 얼마 전까지도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잘 몰랐었기에 이 부분을 읽으며 유대교와 기독교의 탄생 과정을 잘 정리할 수 있었다. 마지막 부분은 휴머니즘의 형성과정과 근대 세계의 태동, 기독교의 의미에 관한 내용들이다. 기독교의 역사는 바로 유럽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유럽의 여러 사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앞에서 살펴본 그리스도의 윤리는 근대사상의 태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글의 서두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이 책의 저자는 상당히 객관적인 관점에서 기독교에 관해 서술하려 노력하고 있다. 성경의 내용을 분석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고, 기독교의 의미를 밝히는 부분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명확히 전달한다. 먼저 기독교가 탄생한 이후 역사 속에서 수많은 과오를 저질렀음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함을 냉정히 인정한다. 개인주의화 경향으로 기독교로부터 멀어지거나 무늬만 기독교 신자인 사람들이 많은 현실, 반대로 동양에서 기독교 신자들이 늘어가는 아이러니한 현실도 분석하고 있다. 과거에는 기독교의 윤리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종교성을 탈피한 휴머니즘적 철학들이 새롭게 태어나 기독교의 윤리를 대신하고 있음도 잘 안다. 그러나 저자는 현재의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가 추구했던 이상에서 너무 많이 변질된 점, 기독교가 유럽의 모태가 되었다는 점, 보편성을 뛰어넘는 완벽한 사상이 없었다는 점, 그래도 인간에게는 초월적 존재가 필요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유대-기독교적 메시지에 주목할 것을 주장한다.

저자의 이야기는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서양적 관점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저자 스스로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기독교가 유럽의 모태가 되었다는 사실은 결국 동양이 지녀온 사상과 종교 속에서 기독교가 어떠한 의미를 지녀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남긴다. 종교는 어차피 선택의 문제이다. 저자의 말처럼 유대-기독교적 메시지에서 기인하는 인간적인 윤리가 더 가치 있을 수도 있다. 기독교가 성경의 말씀을 현실에 맞게 전파하고 실천한다면 존경받는 종교로 충분히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by 꽃다지, 2009년 9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