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맛은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한 장 한 장 공을 들여가며 읽는 맛과는 다르다. 무엇보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책에 한번 빠지면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책을 빨리 읽어가면서도 다음 장면이 기다려진다. 읽기와 예측이 동시 진행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운 여름에는 그러한 묘미를 줄 수 있는 책을 기대하는가 보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 사무소>(이덴슬리벨, 2009년)가 그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책을 읽는 동안 한풀 꺾여가는 더위마저 잊을 수 있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 하이커>(책세상, 2005년)를 읽었다면 그 느낌이 배가 되었을까. 앞부분만 읽다 말았기에 아쉬움이 컸다.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 사무소>는 대학 시절 사고뭉치였던 더크 젠틀리가 탐정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더크 젠틀리가 과연 어떤 사건을 맡았기에? 사건은 웨이포워드 테크놀러지Ⅱ의 회장 고든 웨이가 죽으면서부터 시작된다. 고든 웨이는 자신의 오두막으로 가는 도중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더크 젠틀리는 웨이포워드 테크놀러지Ⅱ의 기술자이자 자신의 친구인 리처드의 의문의 행동을 목격하면서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 그들의 교수였던 리즈 교수가 타임머신으로 시간여행을 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시간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리즈 교수의 타임머신과 그의 주변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에 배후가 있음을 알게 되는데, 배후는 다른 아닌 유령이다. 유령은 40억 년 전 ‘사락사란’이라는 외계 행성에서 온 외계인들로 지구에 광물을 캐러 왔다가 착륙선이 폭발하는 바람에 죽음에 이르고, 그 결과 생명체를 탄생시킨 존재들이다. 이 유령이 타임머신을 타고 착륙선 폭발 이전으로 돌아가고자 40억 년을 기다려오다 리즈 교수의 타임머신을 조작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야기의 재미는 이렇게 황당무계한 설정에서부터 비롯된다. 외계인을 등장시키고, 지구 생명체의 기원은 그들의 실수로 인한 것이라 떠들어댄다. 타임머신이 등장하고, 전자수도사가 활보한다. 게다가 우리들의 친구들은 얼마나 친절한지. 간단한 답변도 장황한 농담조로 일갈하고, 그 수장격인 더크 젠틀리는 완전 백수에 건달, 사기꾼이지만, 탐정 노릇에 ‘성스러운’이라는 말을 붙여 자신의 놀이가 CSI의 과학수사와는 완전히 거리가 먼, 직관과 통찰에 의한 것임을 은근히 강조한다. 그런 그가 유령의 작전을 방해하고 인류까지 구한 셈이니 아무리 날라리 같아 보여도 일단은 탐정으로서 합격점을 줘야할 것 같다.

한여름의 더위를 잠시 잊게 해주었던 더크 젠틀리 시리즈는 또 다른 편을 예고하고 있다. 우주를 넘나드는 우리의 더크 젠틀리가 셜록 홈즈를 능가하는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by 꽃다지, 2009년 8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