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속적인 면이 강하게 느껴지면서도 그의 소설들은 그저 재미삼아 읽혀지지만은 않는다. 흔하디흔한 사랑 이야기와 인생의 방황 속에 시대의 고뇌가, 인생의 의미가 담겨 있다. <달과 6펜스>(민음사)를 읽으며 세속적인 성공과 자아실현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을 보았고, <인생의 베일>(민음사)을 읽으며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주의 깊게 살펴볼 수 있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214번째 작품인 서머싯 몸의 <면도날>(민음사, 2009년) 또한 그러했다. 1차 세계대전과 경제공황을 전후하여 벌어지는 화려한 파티와 사교의 만남 뒤에,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 래리가 있다. 부모도 가진 것도 없는 래리는 1차 세계대전에 공군으로 참전했다가 절친한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로 약혼자인 이사벨도 외면한 채 신과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확실히 알고 싶어.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지도, 또 내게 불멸의 영혼이 있는지, 아니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인지 알고 싶어.” (117쪽)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래리가 있는가 하면 ‘인생을 최대한 쓸모 있게 사는 법’을 다른 방향에서 추구하는 이들도 있다. 래리의 연인인 이사벨은 래리와 결혼할 듯 보였지만, 결국 물질적으로 안정된 삶을 선택한다. 이사벨과 결혼한 그레이는 경제 호황의 시기에 주식투자로 돈을 번 아버지와 함께 사업을 확장해 나가다 경제 대공황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된다. 소설의 중심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이는 엘리엇이다. 그는 파리의 사교계를 넘나들며 쾌락과 부를 탐닉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면도날>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제목이 상징하는 바부터 살펴보자. 사실 내용 중에서는 면도날의 의미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소설이 시작하기 전 우파니샤드의 문구만이 이를 설명한다.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 카타 우파니샤드”

날카로운 칼날. 넘어서기 어려움. 나는 작가가 이야기한 “열정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파스칼은, 가슴은 이성이 이해하지 못하는 나름대로의 이유를 갖고 있다고 말했지.” (280쪽)라는 문장과 대비시켜 본다. 래리가 세속적인 삶을 포기하고 과감히 구도의 길을 떠난 순간이 면도날을 넘어선 순간이라 할 수 있다면, 이사벨이 희생을 두려워해 래리와의 사랑을 포기하고 그레이와 결혼한 것은 결국 가슴이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고 이성을 따른, 면도날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시간이 더디게 걸리긴 했지만, 래리의 도움으로 평온함을 되찾은 수잔은 면도날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면, 생의 밑바닥에서 역시 래리의 도움으로 구원을 얻을 뻔 했지만, 마지막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맞게 되는 소피는 면도날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이 래리처럼 구도의 길을 살 수 없고, “저는 인간이 세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이상이 자기완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464쪽)라는 그의 말처럼 자기완성에 이를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인생의 최대한 쓸모 있게 사는 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한 번쯤은 해봐야 할 것이다. 나와 우리의 행복을 위해.

by 꽃다지, 2009년 8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