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통이 안 터질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정직하게만 살아 왔는데, 그래서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했을 뿐인데, 모두가 외면했다. 한솥밥을 먹던 동료 교수들마저도 문제를 덮기에 급급했다. 바른대로 산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가. 하긴 지금의 현실을 돌아봐도 별다를 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도 내부에서 문제제기를 한 국세청의 직원이 조직에 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고 잘릴 위기에 몰렸다. 군과 경찰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결국 양심대로 말한 사람이 피해를 당하는 세상이다. 그러니 누가 무슨 배짱으로 조직의 치부를, 이 세상이 요구하는 상식을 뒤집는 문제제기를 하겠는가. 석궁사건으로 유명한 김명호 교수가 꼭 그랬다.

결과적으로 세상에 알려진 사건만으로 보자면 김명호 교수는 크나큰 잘못을 저질렀다. 감히 이 나라의 사법부를 향해 화살을 날린 셈이었으니 말이다. 사법부의 위신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김 교수는 엄하게 처벌을 받아야 했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은 여기까지다. 사건의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본 이들이라면 좀 더 진실에 가까이 다가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억울함을 호소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판사에게 석궁 테러를 가한 사건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이번에 그에 관해 쓴 기록 <부러진 화살>(후마니타스, 2009년)를 읽기 전까지는.

김명호 교수의 억울함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10년이 다 되었다. 한 개인이 벌여야 했던 성균관대학교와의 힘겨운 싸움. 문제의 발단이 된 오답 사건을 덮는 과정을 보라. 김명호 교수가 어떻게 바보가 되어 가는지를. 진실을 판단해야 할 사법부가 어떻게 진실을 말하고 있는 한 개인을 바보로 만드는지를. 문제의 본질은 사라진 채 교수 자질이 부족하다는 어처구니없는 결론만이 남았다. 본격적인 싸움은 2라운드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제 상대는 성균관대가 아닌 사법부다. 김 교수는 직접 법전을 공부하며 진실을 위해 싸웠다. 그러나 결과는 여전했다. 그리고 사법부는 석궁 테러 사건 이후 본색을 드러낸다. 법이 이렇게 주관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결국 법 앞에서도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이다. 판사의 명령에 따라 피고는 발언의 기회조차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

헌법이 있고, 삼권 분립이 존재하고, 정의와 평등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법부가 있는 이 땅에서 벌어진 권력의 횡포는 경악할 수준이었다. 애초부터 그들을 믿어온 적은 없지만, 해도 너무한 것이 아닌가. 법 앞에 평등하다란 말은 의미 없는 장식어일 뿐이다. 권력 앞에, 돈 앞에 평등한 것인 게지. 물론 2~30년 전에 비하면 사회의 민주주의가 많이 발전했기에 모든 사법부의 일원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정의로울지 몰라도 권력의 입김에서 사법부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날, 삼성의 무죄 선고가 있었던 사실을 아시는지. 과연 우연의 일치였을까?

법원의 정당한 판결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을 테지만, 잘못된 판단과 불평등한 판결로 인해 고통을 받은 이들도 많다. 사법부가 잘못을 했다면 그 진실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법부의 권위가 사라지는 건 진실을 드러내서가 아니라,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명호 교수에 대한 판결도 마찬가지다. 사법부는 권력 앞에서 평등해야 하고, 객관적 사실과 증거를 기초로 판결해야 함을 누구든 알고 있을 것이다. 그걸 판사가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by 꽃다지, 2009년 7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