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아주 혼쭐이 났다. 내용이 어려웠다기보다는 구성의 독특함 때문에 쉽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독특한 내용으로 인해 명성을 얻은 줄로만 알았더니 소설의 다양한 요소들이 나름의 색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이 소설을 완성했다고 하니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저자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처녀작 <모든 것이 밝혀졌다>(민음사, 2009년)를 읽었다. 분량이 좀 많긴 했지만, 보통의 소설처럼 큰 무리 없이 읽히리라 생각하고 천천히 읽어나갔는데,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책의 진도는 느릿느릿 흘러갔다. 책의 내용이 어려워서 그런 건 분명 아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전개와 편지글의 도입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독자는 세 부분의 글을 잘 떠올려가며 글을 읽어야 한다. 이 책의 이러한 묘미는 다른 책과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저자는 실제 체험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인지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우크라이나 방문으로부터 시작한다. 대학 2년생의 주인공이 빛바랜 사진을 한 장 들고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이유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할아버지의 목숨을 구해준 한 여인을 찾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가 찾는 곳은 이미 폐허가 된 뒤였다. 그 여인의 소재도 묘연하다. 게다가 통역과 여행 가이드를 자청한 알렉스와 알렉스의 할아버지는 프로들이 아니었으며, 매사가 허점투성이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한 여행은 잊혀진 과거를 하나씩 찾아가는 여정이다. 여행 가이드를 요청한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할아버지의 과거를 소설로 재구성하는 과정이나 알렉스의 할아버지가 과거를 떠올리는 것은, 비록 세 사람이 사진 속의 여인을 찾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에게 잊혀진 과거를 드러내는 진실찾기인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대격랑 속에서 한 마을이 이름조차 사라져버려야 했던, 몇몇을 제외한 모든 구성원이 몰살당해야 했던 과거는 우리의 아픈 과거와도 닮아 있다. 일제의 강압에 의해, 좌우의 이념 대립에 의해 스러져야 했던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친한 친구를 고발해야 했던 아픔들은 다시 떠올리기조차 힘든 상처이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이러한 역사적인 아픔을 특유의 재치와 상상력으로 풀어간다. 사실적인 부분만을 고집하고 사실에 충실하고자 했다면 이 책은 아마도 그렇게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알렉스를 축으로 하는 사실적인 이야기들이 소설 속의 소설로 등장하는 과거 조상들의 환상적인 이야기들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소설의 재미를 이끌어가고 있다. 또한 동어 반복, 두 페이지 가득 줄로 가득 채워지는 발랄한 시도들은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소설 형식의 새로운 가능성까지 엿보게 해준다.

by 꽃다지, 2009년 4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