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중에 마무리해야 하는 큰 프로젝트가 있어 요즘도 계속 야근 중이다. 한 고비를 넘기고 나면 더 큰 고비가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쯤 마음 편히 쉴 수 있을까. 그리 오래 갈 것 같지는 않기에 다소 마음의 위로를 삼고 있지만, 조금은 쉬엄쉬엄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일을 하다 보면, 특히 마감에 임박한 일을 진행하다 보면 짜증이 나기 일쑤다. 그리고 일이 원활히 진행되지 못한 책임을 종종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기도 한다. 나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어 바쁜 탓에 일을 매끄럽게 진행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더디면 일을 잘 못한다거나 성격이나 태도 탓이라고 쉽게 몰아버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돌이켜보면 나 또한 태도의 문제로 인해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있고, 다른 사람도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원활하지 못했음을 알게 된다. 왜 이렇게 비슷한 상황을 두고도 다르게 해석하는 것일까?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기 때문일까?

E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인간의 두 얼굴>을 보지 못했었는데, 다행히 책으로 발간되어 읽을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와 같은 제목으로 출간된 <인간의 두 얼굴>(지식채널, 2009년)은 다양한 심리 실험과 실제 사건을 분석함으로써 상황과 인간의 관계를 분석한다. 대표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사례가 바로 ‘대구 지하철 참사’이다. 이 사고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음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의구심으로 남는 한 가지 사실은 지하철에서 화재가 발생한 후 10여 분 정도의 시간 동안 대부분의 승객들이 지하철에서 탈출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관사의 방송만 믿고 기다리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이다. 제작팀은 이에 의문을 품고 몇 가지 실험을 통해 인간이 ‘상황’에 많이 의존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실험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여럿이 함께 있을 경우 자신이 맞더라도 모두가 틀린 답을 내놓으면 그에 쉽게 동조했으나 혼자 있을 경우에는 올바로 답변하고, 돌발상황에 빠르게 대처했다.

이러한 일들을 나도 종종 경험해왔다. 특히나 남들 앞에서는 잘 나서지 못하는 나이기에 내가 맞다고 생각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더 큰 목소리로 주장을 하게 되면 내 생각을 쉽게 접었다. 그리고 내가 먼저 행동으로 옮기기보다는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며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나 또한 상황에 많이 지배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성적인 성격과 맞물려 수동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다. 상황을 지배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을 많이 보인 것이다.

“우리는 상황에 지배당하는 평범한 인간이지만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 역시 우리들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상황에 지배당한다’는 말은 언제든 ‘인간이 상황을 지배한다’로 바뀔 수 있다. 그 일을 해내는 건 다름아닌 우리들이다.” (116쪽)

인간은 이렇게 상황에 지배를 받지만, 다행히 상황을 지배할 수도 있음을 이 책은 결론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뉴스 등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의 영웅담은 주어진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여 상황을 역전시킨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수동적으로 상황에 이끌리기보다는 보다 객관적인 판단으로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나 또한 주변 상황이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기보다는 좀더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by 꽃다지, 2009년 4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