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일제강점기에 약탈해간 문화재급 도서 150종 1,205책이 다시 반환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늦은 감이 있으나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앞으로도 국외로 밀반출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많이 회수되었으면 좋겠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겠지만, 누구보다도 기쁜 미소를 지을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간송 전형필이다. 비록 작고하셨지만, 평생의 숙원을 조금이나마 더 풀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미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 전형필의 삶과 이야기를 읽은 건 최근의 일이다. 이충렬 작가가 여러 해에 걸쳐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여 유족들이 최종 감수한 <간송 전형필>(김영사, 2010년)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분노와 회한, 그리고 간송 전형필에 대한 애틋함으로 묵직한 감동이 느껴지는 책이다. 만약 그가 없었고, 그의 간송 미술관이 없었다면, 우리는 우리의 (미술)문화사를 절반밖에 이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 우리는 그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간송의 업적이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나 이렇게나마 책으로 재조명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자.

간송이 대수장가로서 큰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데에는 그가 물려받은 유산이 큰 몫을 했음은 분명하다. 간송은 당시 흔하지 않은 대부호였다. 그러나 돈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간송 같은 업적을 남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재물은 욕심을 낳고 부는 더 큰 부를 부르지 않는가. 간송 또한 수장가로서의 삶을 살지 않았다면 충분히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일제 강점기라는 냉혹한 현실에서 조금만 타협하면 권력까지 쥘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일제 강점 하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뜻 깊은 일을 찾았고, 그것이 바로 국외로 유출되는 우리 문화재를 되찾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한번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흥미로 시작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치열하게 돌아가는 고문화재의 세계에서 국외로 팔려나가는 소중한 유산들이 너무도 많았다. 도굴과 강탈 등의 수법으로 빼앗기다시피 팔려나갔다. 오래 지속된 일제의 수탈에 못 이겨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온 가보를 헐값에 넘기는 경우도 수두룩했다. 단지 몇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였다. 우리 문화에 대한 무지로 불구덩 속에 내던져질 뻔 했던 것을 되살린 경우도 종종 있었다. 제일 가슴 아팠던 건 같은 민족임에도 일말의 민족의식도 없이 우리 문화재를 일본에 팔아넘기는 작자들이었다.
 
간송의 민족의식은 더욱 확고해졌다. 우리 문화재를 반드시 되찾고, 민족의 자존심을 살리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진다. 그렇게 해서 나온 구상이 박물관을 짓는 일이었다. 수장가들이 문화재를 취미 삼아 모으고, 죽기 직전에는 제대로 물려줄 방법을 찾지 못해 문화재가 다시 흩어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아온 터이라 그만큼은 제대로 모으고 보관해 후손들에게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유산을 보여주고 싶었다. 간송미술관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간송 전형필이라는 인물을 수장가 정도로만 여겼지, 이렇게 크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인지는 전혀 몰랐다. 그는 단지 수집만 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물건들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이 별볼일없이 여기는 작품들도 함께 모았다. 작품을 모아 시대를 개괄할 수 있는 흐름을 만들고자 했다. 그렇기에 그의 업적이 더욱 빛난다. 실제로 그가 수집한 작품들을 빼어 놓고서는 우리나라의 미술사를 논할 수 없을 정도이니….

현 세대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사 빌 게이츠 전 회장의 재산 기부가 많이 회자되지만, 간송의 업적과 노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간송은 빌 게이츠보다 더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국내에도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앞으로는 간송 전형필 같은 이가 많으면 좋겠다는 말로 바꾸겠다. 부를 모으고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에 환원할 줄 알고 뜻깊은 일에 쓸 줄 알아야 한다. 이 책이 많이 읽히고 간송의 업적이 더 많이 드러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