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

 1965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난 정지아는 1990년 부모님의 삶을 소설로 옮긴 장편 소설 『빨치산의 딸』 (전 3권)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됐고, 단편소설 <풍경>으로 2006년 이효석문학상을, 소설집 『봄빛』으로 2008년 올해의소설상과 2009년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구례에서 지내며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출강하고 있다.

 

"소설가란 언제 어디서든 당대의 모순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99%의 이름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삶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기록한 르포집이다. - 본책 '작가 소개, 작가의 말' 인용

 

 

19명의 이름 없는 삶

 그들의 이름은 '야, 인마' 또는 해고노동자, 혹은 비정규직 등이다.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이름 없는 19명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이 얼마나 치열하고 쓸쓸한지, 최소한의 기본적 인권도 보장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가혹한지 보여 준다. 외국인 노동자부터 텔레마케터, 음식 배달부, 택시 기사, 장거리 화물차주, 간호사, 보조작가, 제주 구럼비 마을의 주민들까지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과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모두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는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지 않는다.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한 채 법적 노동시간을 넘기는 것은 예사고, 시간 외 근무 수당은 먼 나라 이야기로 여기며 사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우리 사회는 누구를 위한 사회이며,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씁쓸한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2011년 1월 6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2003년 129일 동안의 농성 끝에 스스로 목을 매 목숨을 끊은 故 김주익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지회장이 올랐던 바로 그 크레인이었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오른 크레인 위에서의 농성은 무려 309일이라는 시간 동안 이어졌다. SNS와 희망버스가 해고노동자들을 위해 힘을 보탰고, 결국 한진중공업측은 복직안(사실상 재입사안)을 수용했다. 경영 악화로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는 한진중공업은 1조 원의 현금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자 수익만 405억원이 발행하는 회사다. 지난 10년간 4277억 원의 수익을 냈으며 긴박한 경영난으로 정리해고할 수 밖에 없다고 통보한 그 다음 날에 174억 원의 주식 배당과 52억 원의 현금 배당을 했다. 임원들의 연봉은 억대로 인상했다. 이런 회사가 있지도 않은 경영 악화를 핑계 삼아 생산직 노동자의 30%에 해당하는 400여 명을 해고한 것이다.

 

 '해고는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모든 미래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다. 한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오늘, 그 블랙홀 앞에 위태롭게 서 있다. 노동자들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연대뿐이라고 성훈 씨(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44세)는 몇 번이나 강조했다. 바로 거기에 유일한 희망이 있다고. 그것이 우리의 새로운 새벽을 불러올 것이라고.' - 본문 85쪽 인용

 

아스팔트 위의 꿈

 광주 송광교통 최도근, 서울 성원콜택시 김흥정, 서울 경안운수 성구중, 제주 국제택시 한광로, 서울 정오교통 조경식. 1997년 이후 택시완전월급제를 주장하며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인 사람들의 이름이다. - 본문 122쪽 인용

 

 청년들도 일자리가 없어 난리통인 요즘 세상에 택시회사는 일년 내내 택시기사를 모집한다. 일년 내내 모집해도 기사가 부족한 이유는 기사를 구하는 만큼 기사가 나가기 때문이다. 하루 12시간의 교대 근무의 노동 강도는 상상을 초월하고, 별의별 손님들을 상대해야 하는 스트레스, 게다가 택시 회사의 배만 불리는 사납금 제도로 인해 벌이도 신통치 않다. 개인 택시는 좀 낫겠지 하지만 개인 택시가 노동강도는 훨씬 쎄다. 벌이가 좀 더 낫다고는 하지만 그래봐야 300만원 넘기기가 힘들다고 한다. 2006년 택시기사의 평균 연령이 55세를 넘었다고 한다. 12시간의 근무를 하는 회사택시나 24시간 꼬박 운전대를 잡는 개인택시 모두 중년을 넘기는 나이의 기사들이 감당하기에는 체력적으로 상당한 무리다. 택시 기사들이 원하는 바는 뚜렷하다. '택시완전월급제'. 얼마 전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로 정부와 버스노조, 택시노조가 맞붙었다. 결과는 대중교통법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정직하게 일한 만큼 보상을 받는 일이 그렇게도 힘든 일인가 싶다.

 

보통 사람들이 원하는 보통의 삶

 '직업도 국적도 나이도 달랐지만 그들 모두의 꿈은 참으로 소박했다. 해고나 재계약을 염려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인생, 하루 일과가 끝나면 동료들과 소주잔을 기울이거나 주말이면 가족들과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인생. 이 정도가 그들이 꿈꾸는 삶이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 조만간 꿈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몇몇 사람은 오히려 낭떠러지 끝에 서 있었고, 몇몇 사람은 앞을 볼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에 갇혀 있었다. 이것이 세계 경제 순위 15위, 일인당 GDP 2만 달러의 한국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초상이었다.' - 본문 작가의 말 인용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19명의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원하는 삶의 모습 또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한 소박한 꿈조차 이룰 수 없다면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가 하는 일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위에서 짤막하게 2편의 이야기만 소개했지만 다른 17명의 이야기 또한 가슴을 아리는 우리 사회, 우리의 모습이다. 이제까지 너무 무관심했다. 귀 기울이며 관심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