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탄생> 이설아  / 2013 북하우스

 

입양에 대한 편견과 가족의 탄생

 책을 여는 순간부터 불안했다. 꿀통도 없는 이 아줌마 괜찮을까? 엄마가 되어 본 경험도 없는데 정말 잘 해낼 수 있을까? 괜히 어려운 선택을 해서 후회하고 아파하지 않을까? 그리고 난 깨달았다. 이 가족을 걱정하고 있는 내가 바로 입양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입양가족을 실제로 본 적도 없는 내가 왜 입양에 대한 어두운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걸까. 아침마당 같은 TV 프로그램의 영향일까. 뒤늦게 입양 사실이 밝혀지는 내용의 드라마, 영화 때문일까. 불임 부부가 아이를 갖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차선책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입양에 대한 이 깊고 어두운 편견은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연민으로부터 시작된 것 같다. 그 작은 아이들이 받았을 어마어마한 상처가 온전히 치유될 수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입양가족을 비뚤게 보도록 만든 것이다.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주하와 미루를 보육원에서 데려오는 동안의 이 입양가족을 보면서 해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다행이었다.  내가 틀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미루와 주하가 잘 견뎌내고 있는 모습을 보는 시간은 참으로 행복했다. 아이들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신비로운 힘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서로 다른 네 개의 유전자가 모여 가족이 탄생했다.

 

좌측 사진 - 보육원 뜰, 왼쪽부터 미루, 미루주하맘, 주하           우측 사진 - 주하, 미루

 

탄생은 수동, 성장은 능동

 누구라도 삶의 시작부터 원하는 것을 골라서 태어날 수 있었다면 과연 지금의 조건을 골랐을까요? 우리는 삶의 시작 앞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로 태어납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가지고, 어떤 모습으로, 누구와 함께 삶을 시작할지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 삶의 시작은 단지, 주어질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 모두가 주어진 자리를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삶을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모든 생명은 조건을 탓하며 주저앉지 않습니다....(중략) 탄생은 수동이지만 성장은 능동인 것이 생명의 본질이자 힘입니다. 삶의 조건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 본문 223~225쪽 인용 문요한, 『천 개의 문제, 하나의 해답』

 

 입양아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조건은 과연 공평한 것일까. 불공평하니까 물러달라고 해야 되는 것 아닐까. 주하와 미루 같은 입양아들에게 주어진 삶의 시작은 너무나 가혹하지 않은가. 아니, 입양도 되지 못하고 18세에 300~500만원만 들고 보육원을 나와야 하는 아이들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은 것인가. 삶이란 원래 그런 거야라고 말하기에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너무 나약해지는 것은 아닐까. 작가는 이를 두고 '불공평한 공평함'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삶은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과 맞닿아있다. 누구의 삶이든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부정한다면 그 삶은 시작조차 하지 못한 삶인 것이다. 주하와 미루 같은 입양아들이 새로운 가족의 탄생으로 또 다른 삶을 시작했듯이 입양부모 또한 이를 주어진 삶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새로운 가족의 삶을 시작한다. 탄생은 수동이지만, 성장은 능동이다. 두고두고 가슴 깊이 간직할 만한 말이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동리(洞理)가 필요하다.

 30여년 전의 내가 자란 시골 마을은 그랬다. 네 집 내 집 할 것 없이 동네 아이들은 밥 때가 되면 거둬먹이고, 밤이 늦으면 재워 보내고, 말썽을 피우면 야단을 쳤다. 그러는 동안에 아이들은 어른 무서운 지도 알고, 이웃끼리의 끈끈한 정도 느끼고, 사람 구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렴풋이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한 동네 모든 사람들이 한 아이의 인격을 형성하게끔 도와주는 것이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뚜렷하다. 아동양육시설 퇴소 청소년들에 대한 지역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8세에 최소한의 정착금만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서비스업 등의 일을 한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을 키우는 것처럼 보살펴야 한다.

 

공개 입양가족의 이야기를 읽으며

 굉장한 용기를 가진 주하미루맘의 책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장 나도 입양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 라는 생각까지는 못하지만, 미루와 주하를 통해 입양이라는 선물이 가진 힘과 따뜻함을 느꼈다. 미루와 주하를 비롯한 많은 입양아들이 아름답고 행복하게 잘 자랐으면 좋겠다.

 

  낮고 아름다운 언덕

 

  어쩌면 너희는 이 언덕일지도 몰라

  새하얀 눈이 가득한 아름다운 언덕 말이야

  너희에게 주어진 언덕은 너무도 낮지만

  마음을 열면 그 어디보다 편안하고 아늑한 곳이거든

  어쩌면 눈부신 시작인지도 몰라

  누구보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가족이 탄생했으니 말이야

  항상 기억하렴

  언제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이 낮고 아름다운 언덕을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도 꼭 보여주렴

  너희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언덕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