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림_시인, 사진작가

 경기도 의왕출생. 아주대에서 문학을, 상명대 문화예술대학원에서 비주얼아트를 전공했다. 시집 <세기말 블루스>로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으며, 2012년 울산국제사진페스티벌 한국 대표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서른이라는 나이

 문득 박상민이 부른 <서른이면>이 떠올랐다. "많은 고민들로 복잡한 머리와 수많은 기대가 나를 억누르고 터질 것만 같은 답답한 마음은 서른이란 나이가 너무 빨리 온거야." 성경이 말하길 새벽은 도둑처럼 온다더니, 아마 서른의 새벽도 포함하는 말이었나보다. 나에게도 서른은 밤도둑처럼 왔고 미처 서른이라는 나이를 맞이하는 준비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몇 년을 정신없이 방황하다보니 이제 서른 셋이 되었고, 서른이라는 나이가 왜 책 제목으로 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지 알았다. 어리지는 않지만 방황하는 청춘. 현실주의자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뜨거운 가슴을 가진 나이. 누구보다 자신을 가장 사랑하게 되는 나이. 외로움과 둘도 없는 친구가 되는 나이. 그 이름은 서른이었다.

 

미치도록 외로웠고 뜨겁게 공부했다

 작가는 서른의 기억을 이렇게 말한다. '불면증과 싸운 13년의 정점에 서른이 있었고 미치도록 외로웠고 뜨겁게 공부하고 사랑했다.' 힘들고 외로울수록 더욱 열심히 시를 쓰고 책을 읽으며 견뎠다. 20대에 놓고 있었던 책을 서른 즈음에 다시 집어든 나로서는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일주일 내내 핸드폰이 울리는 경우는 알람과 광고성 전화만 있을 뿐, 누구도 나를 찾지 않았다. 스스로 작아질 수 밖에 없었던 서른에는 그토록 외로웠다. 그때는 친구에게 전화 한 통 해서 술 한 잔 마시는 것보다 그 돈으로 책 한 권 사보는 게 더 힘이 되었다. 작가는 서른의 그 힘들었던 시간이 지금 자신이 우뚝 설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말한다. 비 온 뒤의 땅이 더욱 굳는 법이다. 힘들 때일수록 더욱 치열해야만 한다.

 

너무 소중한 시간, 불행을 느끼는 데 시간 낭비하지 마라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고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 흔히 하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을 줄이야. 우리는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 시간을 유용하게 쓰지 못한 반성과 자책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너무 소중한 시간, 불행을 느끼는 데 낭비할 수는 없다. 작가가 인용한 노자의 무(無)에 대한 말은 가슴 깊이 간직할 만 하다. "우리는 바퀴의 몸체를 만들지만 마차를 앞으로 굴러가게 하는 거너 바퀴 중심에 있는 빈 공간이다. 우리는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담아내는 건 그 안의 빈 공간이다. 우리는 집을 짓기 위해 나무를 베어 내지만 그 집의 진정한 가치는 내부 공간에 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존재와 함께 일하지만 우리가 정작 사용하는 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본문_171쪽 인용) 가끔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고 또 소중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만큼 온전하게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항상 남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서 무엇이든 하려고 했던 나에게 소금과 같은 가르침을 주는 말이다. 채우려고만 하지 말고 비워둔 채로, 비워 가며 살아야겠다.

 

강력범죄는 시를 안 읽어서 생기는 거에요

 작가가 지인들과의 식사중에 한 방송국 부장에게 들은 말이다. 과연 그는 현명한 사람이다. 사람의 몸 8할이 물로 채워진 것처럼 시의 8할은 사랑으로 채워져 있다. 그것은 온전한 사랑이고, 성스러운 축복이며 일생의 반려자이다. 시는 다재다능하다. 내 마음 속의 깊은 비밀을 털어낼 수 있게 하는 카운셀러이고 아련한 옛 사랑의 기억을 잃지 않게 하는 비타민이며,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의 청사진을 담고 있는 타임캡슐이다. 어린 소녀에게는 비밀스러운 일기장이고, 중년의 어느 이에게는 향기로운 한 잔의 차(茶)다. 그리하여 시를 만나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다. 작가의 따뜻한 말과 한 편의 시와 주옥같은 잠언으로 만들어진 책의 구성이 좋은 것도 그 속에 시가 있기 때문이다.

 

결혼과 가족

 혼자라는 것, 애인이 없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하지만 두렵다. 언제까지나 혼자일지도 모른다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지금 혼자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언젠가는 내 옆에서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테니 그때는 분명 외롭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 두렵지 않다. 지금이 문제다. 작가가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지만, 6살 난 딸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인 것 같다. 통장에는 7달치 생활비가 있고, 간간이 들어오는 인세로 먹이 문제를 해결하리라 작정한 싱글맘. 결혼 적령기를 넘겨가는 나는 결혼이라는 단어만 봐도 불안하다. 그러나 마냥 불안에 떨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작가가 말하는 몇 가지를 준비하며 여유를 가져야겠다. 지적인 배우자가 되기 위해 책읽기와 글쓰기를 쉬지 않을 것이고 경제적 책임감을 다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저축할 것이다.

 작가가 어려운 서른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가족이었다. 열심히 응원해주는 부모님과 여동생이 그녀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옥탑방에서 백수로 생활하던 때 2만원, 5만원씩 돈을 쥐어주던 가족들. 서른의 나이에 정말 눈물겨운 이야기다. 나도 서른에 저금통 몇 번 뜯어봤고 청춘은 가난함으로 완성되는 것이라 스스로 위로하곤 했다. 그때마다 힘이 되준 부모님과 동생이 나에게도 있었는데.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 법인가 보다. 가족들에게 잘 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다짐.

 

방황하는 사람들

 서른이 아니어도 괜찮다. 방황하는 20대 30대의 사람들. 취직이 안되고, 연애가 안되고, 사는 것이 힘들어 죽겠다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혹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걱정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작가가 조용히 전하는 따뜻한 메시지가 열십자(十) 한복판에 선 서른의 청춘들에게 분명 힘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