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에 슬픔의 바다에서 허우적 거리면서도
2015년이 설렜던 건 7월 14일
여사님의 소설이 출간된다는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예약주문으로 미국 초판 발행본 2권과 동시 출간된 번역본도 구매했지요
하지만 저는 한 동안 책을 펼칠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어 번역을 맡은 분의 인터뷰를 접하고 두려웠습니다
믿을 수 없었습니다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애티커스 핀치는 10년 넘게 저의 이상형으로 굳어진 인간형이었습니다
내 남편이, 내 아이의 아버지가 애티커스 같은 사람이길 바랐습니다
공정함의 대명사였던 그가 인종차별주의자였다니요
저보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란 말입니까?
그 사실을 인정하느니 차라리 <파수꾼>을 잊어버리고
<앵무새 죽이기>만 기억하며 살고싶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어떻게 성장했을지 너무도 궁금한 나머지
저는 <파수꾼>을 읽어버리고야 말았습니다

여사님은 제게 치명적인 강펀치를 세 차례 날리셨습니다
극 초반 제레미 핀치 사건으로 한 번
우려했던 애티커스 핀치에 대한 배신감으로 한번
그리고 제가 철저하게 진 루이즈가 되어있었다는 사실에 한 번
저는 진 루이즈와 똑같은 마음으로
아버지 애티커스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앵무새 죽이기>를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과 같습니다
저는 어린 진루이즈로서 애티커스에 감동했고
성인이 된 진 루이즈로서 아버지는 그래선 안 된다며
악을 쓰고 있었던 겁니다
<앵무새 죽이기>가 없었다면 저는 <파수꾼>에서의
진루이즈처럼 분개하진 못했을 겁니다
오 세상에~ 여사님 그것까지 계산에 넣으신건지 모르겠지만
독자를 화자와 동일시하게 만드는 힘에

저는 다시 여사님께 열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쓴 <파수꾼>이 아닌 그로인해 파생된 <앵무새 죽이기>가
먼저 출간된 것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파수꾼>을 읽고 진루이즈의 어린 시절과 애티커스에 집중해
다시 쓰도록 권고한 모리 크레인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사님이 책을 쓸 수 있도록 1년치 생활비를 선물한
브라운 부부께도 감사드립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제게 감동 뿐 아니라 엄청난 영감을 주는 작품입니다
오래 전 C사의 뮤쉐에서 저는
<왜 부 래들리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가>란 곡으로 도토리부자가 되어
친구들에게 도토리를 마구 선물하던 때가 있었죠
그리고 L사의 <내 인생 최고의 책>이란 서평 이벤트에
<앵무새 죽이기>를 소개해 책 선물도 받을 수 있었고,
이번엔 I사의 책선물 이벤트에서도 <파수꾼>을 받게 된 겁니다

그리고 <앵무새 죽이기>를 읽은 후
제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처음으로 사람 주인공의 동화를
써보고 싶다는 자극을 받았습니다
동물 주인공의 동화를 쓰고 싶은 저에게 E.B.화이트님과
진크레이그 헤드 조지님은 제게 우상과도 같은 작가이고
조안 K 롤링, 루이스 새카 와 같은 재기발랄한 작가님께
마구 설렌 것도 사실입니다만
그래도 제 마음 속 최고의 작가는 바로 하퍼 리 여사님입니다

진 루이즈와 젬이 얼마나 훈훈하게 성장했을지
부 래들리는 진 루이즈 덕분에 집 밖으로 나오게 되는지
무척 궁금해하면서 후속 편을 기다렸습니다만
첫 작품의 대 성공과 사람들의 관심에 부담을 느낀 여사님이 이후
부 래들리처럼 꼭꼭 문을 닫고 더이상의 작품을 쓰지 않으셨다기에
이 편지 또한 여사님께는 보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파수꾼>은 전혀 기대하지 않은 내용의 속편 격이었지만
그래도 여사님의 새 소설을 제 생애 다시 만날 수 있음에
무척 행복합니다
그리고 <파수꾼>을 제게 보내주신 이유는
오랜 시간 저를 지배해온 강력한 이상형 애티커스 핀치를
떠나보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애티커스 핀치에 밀려 존재감이 없었던
잭 핀치의 재발견으로 그나마 위안이 좀 됩니다
언젠가 저만의 <앵무새 죽이기> 속편을 써 볼 수 있기를
그리고 여사님이 건강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