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와야 하는데...하늘에서는 비를 보내 준다.춥다 싶어 이제는 눈이 오려나 하면,그건 니맘이지 아직은 아니야 하고 으름장을 놓듯 밤마다 촉촉히 비가 내려 밤을 젖혀 준다.겨울이라는 계절이 주는 즐거움이란 오직 눈이 내리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 아침이면,두꺼운 책장을 넘겨 책의 마지막 부분을 들쳐보듯 가까스로 몸을 뒤척여가며 창가로 가서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하루라는 책장을 넘겨 보게 된다.

 

그런 나에게 "당신도 그림처럼..."살아 보아요.또는 살고 있나요.아님 살았었나요.살았던 적이 있던가요?라며 내 기억 속에서 조차 남아 있지 않았던 추억의 그림들을 찾아보게 한다.

나에게 그림은 어렸을 적에 꿈꾸던 선망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아픔이고,아는 것이 없는 무식쟁이임을 바로 드러나게 하는 하나의 도구로 전락한 오래된 유물이 되었다.이주은 그녀는 서울대학교 언어학교를 졸업하고,미국 덴버 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이화여자 대학교에서 현대미술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어디 그런 학위 받은 사람들이 한 둘이겠느냐마는 어디 그런 학위를 받고 책 쓰는 사람이 한 둘이겠냐마는 그녀의 책은 그녀만이 맛을 낼 수 있는 이 주은표 청국장맛이 난다.

 

저녁이면 실크 잠옷을 입고,럭셔리하게 고상한 취미 생활을 하며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녀는 취미란 종일 뒹굴며 tv를 보거나 허리가 아프도록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나와 다름없는 일상은 그녀가 들려 주는 그림 속 그림이야기와 그녀가 만나 그녀와 많은 시간을 함께 나누었을 책들과의 교감을 통해 그리고,그녀가 살아온 과거와 살고 있는 현제 그리고 미래 속에서 살게 될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이웃을 만나면서 그림처럼 살고 있을 그림처럼 살아갈 그리고 그림처럼 살았던 그녀를 만나고 있는 행복을 느끼게 해 준다.

 

봄,여름,가을,겨울은 해마다 매 번 쉬지 않고 나에게 달려 온다.어렸을 적엔 느린 걸음으로 걸어오는 계절은 숨막히게 깝깝하게 느껴지곤 한다.마흔이 된 저자는"생애전환기"에 접어 들어 이제 내려가는 법을 배워 두라는 심리학자 칼 융의 말을 들려 주면서 앙탈을 부리지만,가는 세월 막을 수 없음을 한 탄하기 보다는 명화처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하루라는 그림이 얼마나 소중하고,지나간 일들이 무의미하기 보다는 추억으로,지우고 싶은 과거이기 보다는 현제를 살아가는 엔진이 되기를 희망하며 나 답게 살아가자며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내밀듯 그림을 내 보인다.어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물어보면,사연없는 사람이 있을까? 누군들 만나보고 이야기해 보면 좋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어떤 책인들 어떤 그림인들 들려주고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책이 있었을까? 하지만 그녀가 아니였으면 만나보지 못하였을 그림들을,그녀가 아니였으면 오늘이 아닌 또 언제 만날지 기약할 수 없었던 사연들을 만나게 되어 나의 겨울은 어제와는 다른 나의 겨울이 되어 그림처럼 기억될 것 같다.

카스파르 디피드 프리드리히[뤼겐의 백악 절벽]1818년경

이 그림을 추천한 이유는 작가 알랭 드 보통이 무한한 공간 앞에 서서 자신을 개미처럼 작게 만드는 것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 좋은 경험이라고 권했기 때문이다....P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