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하는 기대로 책을 잡았지만 역시나 하는 실망과 한숨으로 마지막 장을 덮게 만드는 책이에요, 혹여 기억력 증진에 도움이 되는 구절이 일언 반구라도 있을까, 기억력 감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라도 담겨 있을까, 내게 도움이 될만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기대로 책장을 넘겼지만, 결국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에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네요. 내게 생소한 분야 이야기이고, 번역도 그리 매끄럽지 않은탓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제법 실망스러운 책임에 틀림없어요.

 

  열 일곱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어요, 이름 기억하기, 망각, 운동과 기억력, 유년의 기억, 섬광기억, 기억상실증, 기억의 속임수, 뇌 성형 등과 같은 꼭지로 구성되어 있구요, 각각의 코너는 어디에선가 한 번쯤은 들어봄직한 이야기들이고, 한번쯤은 생각해 봤을 주제에 관한 것들이에요, 그리고 책을 꿰뚫고 있는 결론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기억력 감퇴에는 답이 없다. 누구나 겪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지금의 과학 기술로는 막을 수도 늦출 수도 없다. 그리고 저자의 입장에서는, 과연 그것에 저항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바람직한 건지도 모르겠다' 에요, 이건 뭐...

  그저 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 기억의 구성은 공감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버전 업을 하는 것처럼 같은 양피지에 계속 덮어쓰는 형태를 취하고 있고, 그런 탓에 기억들이 얽히게 되고.. 또 기억을 다시 불러올 때마다 그건 내 머릿속과 마음속에서 재창조된 이야기이지, 처음의 오롯한 기억과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둥, 기억력 증진 보조제와 건강식품들은 시판되고 있지만 효과가 입증된 것은 없다는 둥,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이 대다수에요, 그리고 그런 탓에, 기억력에 관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읽고 나서 남는 건 없지 싶어요, 지식이나 정보의 경우에는 이미 많이 들어본 이야기에 그치고 있고, 그렇다고 이렇다할 해결책이나 실천 방법을 제시하지도 않고 있구요, 망각에 대해서, 기억의 상실과 재구성에 대해 그럴듯한 가설과 이론들을 펼쳐놓은 부분은 흥미롭지만,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의도가 그게 아니잖아요? 그렇게까지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내용이 궁금했더라면 보다 무거운 책을 잡았을테고, 이렇게 가벼운 책을 잡았을때는- 일언 반구라도 내 기억력에 도움이 될만한, 증명되지는 않았더라도 흥미를 끌 수 있고, 기억력 증진에 도움이 될 지도 모르는 - 하다못해 플라시보라도 그런 기분이 들 수 있는 - 그런 방법을 알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어요, (물론 연상 기억법이니 하는 것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건 '특정 사건'을 더 잘 기억하는 방법이지, 전체적인 기억력을 증진시키는 방법은 아니잖아요) 그저 '남들도 다 그러는 거니까 너무 과민반응 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라'가 전부에요, 제목이 전부인 그런 책이라고 할까요!

  열 일곱 챕터나 되는 구성도 한 몫 하는 것 같아요, 각 챕터가 독립성을 가지고 있고, 그리 많지 않은 분량으로 이루어진 탓에 읽기에는 수월하지만, 그 챕터를 하나로 연결할만한 핵심 키워드도 없고, 그저 막연한 테두리 안에서 제멋대로 뛰쳐나가는 주제들은, 더없이 산만하게만 느껴져요, 차라리 이 중에서 흥미로울만한 대여섯개의 챕터를 잡아 지금보다 두 배 세 배의 깊이로 풀어냈더라면 훨씬 더 흥미로운 책이 될 수 있었지 싶은 정도니까요,

 

  전혀 큰 기대 없이, 지하철 타고 오가는 중간에 한 챕터씩 읽기에나 괜찮은 책이지 싶네요, 나와는 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