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서, 나는 자기계발서나 에세이를 싫어한다. 어쩌면 지금껏 훌륭한 도서를 읽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남의 얘기를 듣기만 하는건 내 취향도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나 요즘같은 시절에 홍수처럼 쏟아지는 비소설 책들을 보고 있자면



'너나 잘하세요.'



혹은



'남의 얘기 관심도 재미도 없는데?'



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기도 한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특히 여행 에세이는 거의 읽지 않는다. 내가 아는 사람 얘기도 아니고 내가 가는 여행이 좋지 남의 여행 얘기는 봐서 뭐하나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은,



나는 문학을 사랑하고 여행을 즐긴다.







작년 설날이었는지 추석이었는지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명절 파일럿 프로그램에 여행작가가 나온 걸 봤다. 여행을 좋아하니까 눈이 호강할까 싶어 봤는데 무전여행이라 그런지 여행작가는 너무 꼼꼼한거 같기도 하고 섬세한거 같기도 하고 무척이나 계획적인거 같기도 한 모습에 일말의 관심이 구멍난 풍선에서 퓌융~하고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나에게는 막역한 친구같은 아는 동생이 있다.  격하게 아끼는 그 동생은 세상에서 제일 가는 길치였는데 작년 말쯤에 남미를 다녀왔다. 남미 가기전 세계테마기행 볼리비아편을 보고 출발했는데 그때 나왔던 꽤 유명한 여행작가를 그날 남미 가는 비행기 안에서 봤다고 했다. 참으로 반가운 인연이라 생각했다. 단지 그 뿐이었다.



역시 여행은 즐겁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고 동생은 서울에서 우연히 또 그 여행작가를 봤다고 했다. 의외의 장소에서 두번의 우연한 만남이 너무 신기해서 그제서야 그 여행작가의 이름을 물었다.



" 그 작가 이름이 뭐야?"



"태원준이예요."







어? 



잠깐만 잠깐만.



나 그 사람 아는데. 



그러니까.....



그 사람이 이 사람이었고, 이 사람이 그 사람이었다는건데. 이거 뭔가 오만과 편견이다.



뭔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언제가 책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반성했다.







그러던 어느날,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집 근처 문화센터에서 태원준 작가의 강연이 있다고 했다. 시간도 적절하고 강연 주제도 좋고 직접 듣는 것도 색다르겠다 싶어 흔쾌히 함께 하기로 했다. 이왕 강연 듣기로 한거 책부터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구입했다.







편견이 있었으므로 책을 읽기전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단지 강연을 듣기전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



그래, 재미?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감동? 가아암도옹? 진짜 감동, 정말 감동이 있다.



눈물이 차오르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기도 하고 가슴이 뭉클하기도 하고.



여행에세이를 읽고 감동을 받다니, 나에겐 실로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여행에세이를 읽고나면 마냥 부럽거나 혹은 갑자기 배가 아프거나 한적은 있어도 누군갈 이토록, 진심으로, 응원 한적은 없었던 것 같다. 작가의 누나라도 된듯 건강하게 여행하는 모자에게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







중간중간 짧막한 엄마의 노트를 보면서 그렇게 기분 좋을 수 없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큰 감동과 자극을 받았다.



작가의 엄마가 작가의 나이때부터 여행을 다녔다면 작가와는 비교도 안되게 엄청난 경험으로 크나큰 감동의 책을 썼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엄마와 제주도 게스트 하우스 도미토리룸에서 숙박 한 경험이 있었다.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기도 했고 하루 그곳에 머물며 놓쳐버린 청춘 하나쯤 지금이라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취지는 (스스로) 너무 기특했지만 막상 그 날이 되니 나이가 있는데 사람 많은 곳, 그것도 좁은 공간, 좁은 이층침대에서 잘 엄마를 생각하니 과연 좋은 선택이었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그런 내 걱정은 전혀 터무니없는 기우임이 드러났다. 내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엄마는 소녀감성 폭발하며 넘치는 사교성으로 대화를 주도하며 홀로 다음 날 여행의 일행을 만드셨다.



그곳에서 엄마는 누구보다 여행을 즐기고 계셨다. 







그래서 작가님의 엄마 역시 그럴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읽긴 했지만 둘이 합쳐 100kg도 안되는 몸으로 300일이 넘는 여정을 즐겁게 마친 것도 모자라 한발 더 나아가기까지 하다니 진정 여행가 체질인가 싶다가도 뭐가 됐든 너무  대단하시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처음으로 내일이 막 궁금해진다는 엄마 말에 작가의 마음속에 얼마나 뜨거운 뭉클함이 일었을까 싶어 내 눈동자가 뜨거워졌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나이를 무시 할 수 없는 이유는 열정이 아니라 체력 때문이다.







역시나 그들에게 체력적으로 몇번의 고비가 찾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라시아를 횡단하고 말았다.







궁금함에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방정맞게도 다급해진다. 







올 여름 처음으로 혼자 부모님을 모시고 방콕을 다녀왔다. 올해 당장 떠난다는 것, 혼자 모시고 간다는 것, 거기에 경비까지 여러가지로 무리한 여행이었지만 조금이라도 부모님의 젊은 날 좀 더 멀리 여행시켜 드리고 싶었다.



체력적으로도 내년보다 젊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일이 불확실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년에 가자고 해서 내년에 갈 수 있다는 보장이야말로 누가 해줄까 싶어 강행했다.



여행을 기다리면서 설렐수있고 다음 여행을 꿈꾸며 웃을 수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다.







여기서 함정은 부모님과의 여행이라는건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표면적으로도 내면적으로도 컨셉이 결국에는 효도라는거였다.



동생과 함께 다녔을땐 부담감이 그렇게 크지 않았는데 모든걸 혼자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그 부담감은 몇십배로 부풀려져 있었다. 



그동안 나에게 여행은 지치고 빡빡하기만 한 일상에 쉼표를 찍는 일이었고 휴식이었다. 그래서 여유를 만드는 일이었는데 이 여행을 계획하고 나니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스트에 부풀려진 빵처럼 커다란 부담감이 내 마음 속에서 부풀어 올랐다.







읽다가 작가님에게 격하게 공감한 부분이 있었는데, 겉으로 보기엔 우아할지 몰라도 물속에서 쉴새없이 발을 움직이는 백조라고 표현한 부분이었다.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두번이나 갔었지만 여행 전  책을 보거나 여행을 계획 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심지어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향하던 날도 옆에 앉은 런던 아주머니와 말을 하다가 뭐 이런 애들이 있나하고 관광지를 알려줘서 정보를 얻었다. 둘 다 계획하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기도 했고 설령 좀 헤매면 어떤가. 그것 또한 값진 여행인데라는 생각만 하고 살았던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랐던 청춘이었다.



그런데 방콕 가기전엔 1초의 멈칫거림도 없도록 찾아보고 또 찾아봤고 1분 1초까지도 계획하고 또 계획했다. 결심하는데 망설였지만 여행하길 잘했다고 생각하시길 바랐다. 행복한 결말을 위해서.



그래서 작가님이 처음 여객터미널로 향했을때 당황했던 작은 에피소드가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모른다. 여행을 준비하는 내내 어떤 마음이었는지, 얼마나 준비하고 준비 했을지 알 것 같으니까. 



행복하기만 한 여행은 있을 수 없다.



특히나 혼자가 아닐땐, 갈등 없는 여행 역시 있을 수 없다.



작가님의 어머니가 내가 행복한지 안행복한지 어떻게 아냐고 소리쳤을 때 그렇게 안타까울 수 없었다. 그 순간 작가님이 받았을 충격 속에 미세한 억울함도 있을거라 생각했다. 여행이 중단 될 위기 속에서 서로 대화를 통해서 여행의 자세를 단단하게 정비하는 모습을 봤을때 기뻐 손뼉을 치고 싶었다. 그 날 그렇게 회의하지 않았더라면 솔직하지 못했더라면 이 책을 볼 수 없었을테니까.







그 당시 작가님 역시 나는 슈퍼맨이 아니라고 말하는 부분을 보니 지난 여행이 또 한번 떠올랐다.



우리 부모님 역시 나를 세계에서 제일 똑똑하고 기품있는 딸로 알고 있는게 분명했다. 나의 영어회화엔 깊이가 1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말도 막힘없이 한다고 느꼈는지 엄마는 점점 나에게 고난도의 통역을 부탁했다.







가령, 공항에서 컵라면을 샀을때 직원에게 



물 끓자 마자 주는거 싫다고 해라.



물을 아주 팔팔 끓여 달라고 해라. 







마사지를 받을 때면



머리를 덮은 수건은 치우라고 해라. 



폐쇄공포증 때문에 숨이 막힌다고 해라.







꽤 난감했지만 최상의 여행으로 보다 넓은 세계를 경험하게 하고 싶었던 나는 페이스랭귀지에 간단한 단어를 겨우 생각해서 내뱉었다. 내 입장에선 꽤 애를 먹었지만 엄마는 말하는 대로 모든게 척척 해결되니 나를 통역사라고 생각하는듯 했다.



몰라, 나도 모르는데.







유럽을 다녀와서도 시차라는 걸 못느끼고 돌아다녔던 내가 부모님 모시고 고작 3박 5일 방콕을 다녀와서 이틀 내내 잠에 취해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아마 친구들과 갔다면 적당히 하고 말았을 일들을 긴장감과 불안감 속에 몸이 혹사되는지도 모르고 머리와 몸을 어지간히도 굴렸었나보다.







300여일이라는 그 긴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어떻게 함께 앞으로 나아갔을까.



어떻게 해피엔딩으로 끝났을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얼마나 배려하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느껴졌다.







부모님과의 여행이 나에게는 그렇게나 힘들었는데  부모님은 이번 여행 최고였다며 인생에서 제일 환한 미소로 엄지를 치켜 들었다. 여행을 갈 수 없다고 말하던 부모님이였기에 설득하는데도 여러날이 걸렸는데 이제는 다음 여행을 기다리시는 눈치였다.



어쩌면 마지막 일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언제 또 가겠냐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 했던 여행이었는데 여행 후 완전히 바뀐 두 분을 보니 조금 당황했지만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여행을 한번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어도 한번만 한 사람은 없다고 하더니, 남미까지 나아가신 작가님의 어머니 얼굴 위로 우리 부모님 얼굴이 오버랩 됐다.







아마도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책보다도 감동이 일었던 것 같다.







참을 수 없다, <엄마 결국엔 해피엔딩이야>를 보러 가야지.







그 긴 여행이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고 내일을 꿈 꿀 수 있게 된 배경이 너무나도 궁금하다.







그리고 2년 뒤에 있을 엄마 환갑에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생각이 들어 조용하지만 음흉하게 미소 짓는다.



언제든지 시작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준 책,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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